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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564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 고경환 순복음원당교회 목사

정신분석학자 로렌스 굴드는 “직업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취미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직업을 의무나 수단으로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무거운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자신이 맡은 일을 즐기며 재미를 갖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꿈꾸고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여건과 사정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접고, 당장의 생활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탈출구를 생각합니다. 언젠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만족하고 행복해 할까요. 자신이 현재 하고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안전벨트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자동차를 타면 안전벨트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안전운전이 우선이지만 혹시 사고가 났을 때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믿음을 갖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연약한 사람인지라 안전벨트 같은 장치가 필요합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노예로 지내다 총리가 됐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애굽식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요셉의 아내는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권세와 부를 누렸지만 그곳에서 얻은 두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의미도 중요하지만 히브리식 이름이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인들을 천하게 여기고 노예로 부렸습니다. 애굽 총리 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 이일성 군산 풍원교회 목사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요. 세계 어느 그리스도인들보다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안에서 증언되는 복음에 감동받아 그 위에 신앙을 정립한 데 있지 않을까요. 한국교회는 그러나 양적 성장을 거쳐 질적 성숙 단계로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성경과 유리되는, 즉 ‘성경 따로, 행동 따로’라는 이중적 신앙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요.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닙니다. 살아서 응답하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나와 함께 사시는 분입니다. 인류의 최후 원수인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한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역사..

열려라 참깨, 열려라 생기 - 정학진 포천 일동감리교회 목사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영(靈)’이라는 말 대신에 ‘기(氣)’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화가 난 경우를 노기(怒氣)라 하고 따뜻한 기운을 온기(溫氣)라 했습니다.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용기(勇氣), 타고난 기운을 원기(元氣), 군인들의 사기를 군기(軍氣), 장한 마음을 의기(意氣), 싱싱하고 힘찬 기운을 생기(生氣)라고 불렀습니다. 목사가 피해야 할 혈기(血氣)가 있고 기독교인이 발산해야 하는 향기(香氣)가 있습니다. 이밖에도 객쩍게 부리는 객기(客氣), 다른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는 바람기, 분위기가 좋은 화기애애(和氣靄靄)도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기’를 사용해 왔습니다. 무기력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낄 때는 “음메, 기죽어!”를 소리쳤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때는 “기가 막히다”고..

먼 바다 고등어 값 -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고등어 값은 너무 비쌌답니다. 난 이렇게 말했지요. 왜 고등어 값이 쌌다가 비쌌다가 그러지요? 먼 바다에서 온 고등어장수가 내게 말했답니다. 당신 제일 가까운 곳의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먼 바다 고등어의 값을 어떻게 셈하겠소?” 시인 곽재구의 시 ‘고등어 장수’의 한 구절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을 보듬는 것에도 소홀하면서 먼 바다 고등어의 시세 변동은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모르겠습니다. 신약에 ‘고르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린 예물’ 또는 ‘하나님께 드림’이란 뜻으로 히브리어 ‘코르반’을 음역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그런데 이것의 본질을 왜곡해 ..

자기 몸을 사랑하기 - 이인선 열림교회 목사

제가 사는 홍대 주변은 서울에서 인기가 많은 명소, 소위 핫 플레이스입니다. 소문난 맛집과 아기자기한 가게들, 클럽 등이 즐비합니다.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가 집적돼 있어 다양한 문화와 사람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이 도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감각의 욕구에 따라 사는 것이 ‘자기사랑’인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자기 몸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의 몸이 미와 매력에 대한 현대의 기준에 맞지 않아서, 노쇠하거나 아파서, 통제할 수 없는 식욕이나 정욕 때문에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고대로부터 몸과 영혼의 이분법이나 이원론이 인간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돼 우리의 영성을 훼방했습니다...

비판하기 전에 - 고경환 순복음원당교회 목사

미국 중서부의 한 대학에 천재적인 문학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학비판클럽’을 만들었고, 정기적으로 서로의 작품을 읽으며 비판했습니다. 비판을 통해 상대방의 문학적 재능을 최고로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학에는 여학생들로 구성된 또 다른 성격의 문학클럽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문학토론클럽’이었습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작품을 읽고 비판하기보다는 격려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문학적 시도라도 이 클럽에서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20년이 흐른 뒤 그 대학의 교무과에서 학생들의 경력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문학비판클럽의 천재들은 단 한 사람도 이렇다 할 성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문학토론클럽에 속해 있던 문학도들 중에는 여섯 명의 뛰어난 작가가 탄생했습니다. ..

가족모임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얼마 전 어느 가정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넓은 집이 아닌데 자녀들과 손주들까지 북적거려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릴 때는 금세 조용해져 온 가족이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도 나눴습니다. 요즘은 다들 편리한 것을 추구하느라 가족모임을 해도 식당에서 모이고 식사 후 각자의 집으로 흩어집니다. 하지만 번거로워도 어르신이 계신 집에 모여 같이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고, 식탁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족 됨의 의미를 살려주는 일입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가족의 의미를 새겨주는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예배를 인도하며 나중에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의미 있는 이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면 좋겠노라고 권면했습니다. 네 명의 자녀들은 그 유익..

행복을 느끼는 마음 - 이일성 군산 풍원교회 목사

사람들은 남에게 기쁨을 주기보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보다는 내가 위로 받기를 더 원합니다. 함께 우는 자리보다는 함께 웃는 자리에 가려합니다. 결국 타인을 위한 삶보다는 나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보람되고 자존감 지수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그럴까요? 예수님의 삶의 자리는 우리들과 달랐습니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자리에 계셨습니다. 초상집에선 함께 우셨고, 혼인잔치 집에서는 필요를 채워주시며 함께 기뻐하심으로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보낸 편지를 보면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가고자 한 것은..

궁극적인 목적 - 정학진 포천 일동감리교회 목사

군목 시절 공수특전단에서 마태복음 9장으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병사들에게 물었지요. “여러분은 새 부대입니까. 낡은 부대입니까. 과연 어느 부대입니까.” 그러자 뒤에서 졸고 있던 신병이 갑자기 눈을 뜨고 대답했습니다. “예, 우리는 공수부대입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란 찬양을 많이 불렀습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처음 이 찬양을 들었을 때 소리 내어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소원이 무엇이었던가. 내가 추구해야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오사마 빈 라덴이 TV에 나와서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미국을 공격하고 파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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