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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564

기독교 신앙의 믿음 - 이일성 군산 풍원교회 목사

모든 종교에 공통으로 쓰이는 언어가 바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에게 ‘믿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바로 설 수 있는 근거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를 말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리스도’라는 인격을 향해 하나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앞에 나를 드러내는 행위이며, 그리스도 앞에 내 자신을 숨김없이 개방하는 결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내어 놓고 그리스도와 내가 인격적 친교를 가질 수 있는 거룩한 결단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앙이란 무엇입..

터널을 지나야 별이 보인다 - 정학진 포천 일동감리교회 목사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터널을 만납니다. 깊은 터널 속에선 라디오도 들을 수 없고 내비게이션도 작동이 안 됩니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듭니다. 터널을 지날 땐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유리창을 닫아야 합니다. 터널 속은 차량 매연으로 오염돼 더러운 곳입니다. 콧속이 시커멓게 되거나, 와이셔츠가 더러워집니다. 세상 터널을 통과할 땐 오염된 문을 닫고 하나님께만 신경을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 라이트를 켜야 합니다. 터널 입구에 ‘라이트를 켜시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 같은 세상을 지날 땐 빛 되신 그리스도의 불을 밝혀야 합니다. 셋째, 갓길 운행은 금지입니다. 추월도 금지입니다. 터널 안 차선에는 점선이 없습니다. 모두 추월금지인 ‘실선’입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푯대..

웨이터의 법칙 -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미국의 경영 및 인사관리에 진리처럼 퍼져 있는 ‘웨이터의 법칙’입니다. 2006년 웨이터의 법칙을 소개한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가까운 사람에겐 친절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거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 파트너가 되면 결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 파트너로 삼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식당 종업원과 버스 기사 등은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그들이 엑스트라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가족이고 영웅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누구인지..

감사로 살아가는 행복 - 이인선 열림교회 목사

작가 이석원의 산문집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 (중략) 어제는 한 5∼6년 전의 일기 2년 치를 읽었다. 읽다 보니 그 2년 동안 내게 수많은 크고 작은 행운과 불행이 있었는데 불행이 단지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뜻밖의 즐거움과 행운을 가져다준 경우가 있었다.” 우리교회는 해마다 맥추감사주일부터 추수감사주일까지 ‘감사로 살아가는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전교인들이 감사 일기를 씁니다. 일반적인 일기를 통해 삶을 회고할 때도 인생의 불행과 고통이라고 여겨졌던 시간들이 그저 불행과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데, 특별히 감사 일기를 쓰는 분들은 모든 것을 감사의 렌즈로 보게 되면서 우리의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일기를 쓰면서 하나님..

몇 점일 것 같습니까 - 고경환 순복음원당교회 목사

얼마 전 한 사람에게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본인이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꿈속에 누군가 나타나 그에게 성적표를 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향해 평가한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낸 것이었습니다. 성적표를 펼쳐보기 전 최소한 90점 이상은 나올 것이라 짐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펼쳐보니 70점이 약간 넘었답니다. 꿈이었지만 자신이 그 정도 점수밖에 받지 못해 너무나 마음 아프고,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생겼답니다. 꿈에서 깬 후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모습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순종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고 세상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함이라는 것을요. 그는 제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1년 52주 주일마다 우리 자녀들은 교회당에 모입니다. 일주일 168시간 중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 교회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게다가 고3이 되면 중직자 자녀들도 교회가 아니라 학원으로 갑니다. 제가 어린 시절 다녔던 주일학교 오후예배와 어린이 수요예배는 어느덧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1주일 1시간 신앙교육으로 자녀들이 건강한 기독교인으로 자라기를 기대하는 건 뿌리지도 않고 거두려는 과한 욕심일 것입니다. 예전엔 대학에 가면 교회를 떠난다고 했는데, 요즘은 중학교에 가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현재 중·고교 복음화율이 3% 내외라고 합니다. 이는 선교학적으로 볼 때 선교사가 파송돼야 하는 ‘미전도종족’에 해당됩니다. 제가 사는 안양시 관내 16개 고등학교의 찬..

삶의 방향 전환 - 이일성 군산 풍원교회 목사

우리는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먹는 것뿐 아니라 주거환경과 문화생활까지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현대의 세련된 문화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풍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살까보다는 더 안일하고 편리하게, 더 즐겁게, 더 문화적으로 고상한 취미를 가지는 것을 자부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화와 삶에 취하다보니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현세와 육신에 만족하고 문화에 만족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삶은 ‘죽어서 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책임적인 존재 - 정학진 포천 일동감리교회 목사

기독교윤리 신학자인 리처드 니버는 ‘책임적인 자아’라는 책에서 3가지 유형의 인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목적론적 윤리, 즉 목적지향적인 사람입니다. 자신의 꿈과 이기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웃은 타자이며 수단입니다. 마키아벨리즘입니다. 둘째는 의무론적 윤리, 즉 규칙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규범을 만들어놓고 철저히 지켜나가는, 요즘말로 지성인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손해를 보지도 않습니다. 경우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서는 인간적인 매력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조주의적, 위선적인 인간입니다. 끝으로 응답적 윤리, 즉 책임적인 존재입니다. 이타적이며 타인에게 책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공동체의 괴로움은 내 ..

기도하는 순간 불행은 불행이 아닙니다 -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이성복 시인의 산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의 한 구절입니다. 시인은 불행에 대해 이야기해야 행복이 핀다고 했습니다. 혼자 불행을 짊어지기보다 고통을 털어놓으며 그 불행과 거리를 둘 때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꽃을 그리려면 꽃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불행에 대해 토로할 때 잠시나마 속이 시원해지고 고통을 객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된 아픔은 거리두기가 된 것입니다. 작게나마 행복이 설 자리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그치면 다시 불행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불행은 하나님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탄식은 성령의 탄식과 만나..

쉼이란 - 이인선 열림교회 목사

‘쉼표’라는 주제로 진행된 청년부 수련회에서 ‘쉼이란 무엇인가’ ‘쉼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쉼에 대한 정의는 유사한 것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쉼을 방해하는 요인으로는 많은 청년들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청년들은 그것으로 인해 지치고 피곤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리새적 율법 준수에 매인 유대인들에 대해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멍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을 의식한 경건의 모양이었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우월감으로 하나님에 대해 눈멀었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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