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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564

소통과 고통 - 겨자씨

충청도 사람들은 말을 줄여서 잘 합니다. ‘가셨습니다’를 ‘갓슈’, ‘괜찮습니다’를 ‘됐슈’, ‘보신탕을 드시겠습니까?’를 ‘개 혀?’로 줄여서 말합니다. 어느 날 충청도 시골 이발소에 미국인이 들어왔습니다. 이발소 주인아저씨는 그 미국인에게 이렇게 인사했다고 합니다. “왔슈?” 충청도 말로 ‘오셔서 반갑습니다’라는 뜻이었는데 미국인은 그 말을 ‘What see you?(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로 들었습니다. 조동사 ‘do’가 빠졌지만 시골 아저씨 영어 치고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발소의 큰 거울이 보였습니다. 그 미국인은 문장이 길면 못 알아 들을까봐 짧게 한 단어만 했답니다. “미러(mirror).” 거울을 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가 앉자마자 이..

생명을 업은 사람 - 겨자씨

티벳의 성자 선다 싱(S Singh·1889∼1929)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 길, 한 사람이 눈 속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지 않았으니 데려가자고 하는데 옆에 있던 사람은 우리도 힘들고 위험하다며 혼자 가버립니다. 선다 싱은 쓰러진 그를 외면하지 못해 업고 갑니다. 가다보니 홀로 앞서 간 사람이 길바닥에 쓰러져 얼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등에 업힌 사람과 선다 싱은 서로의 체온으로 몸이 덥혀졌고 추운 줄 모른 채 마을까지 오게 됩니다. 갈수록 춥고 외롭고 막막한 세상입니다. 저 혼자 살기도 벅차고 불안하다며 주변을 외면하고 욕심을 부립니다. 한눈팔지 말고 엉뚱한 것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독하게 제 자신을 챙기라고 말합니다. 그게 똑똑하고 잘사는 것이라고 세상은 말..

하나님 앞에 겸손한 지도자 = 겨자씨

오스 기니스의 ‘소명’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합스부르크 가의 황제들은 죽은 후 비엔나 카푸친 수도원의 지하 납골소에 안장되었습니다. 프란츠 요셉 황제가 죽었을 때 거대한 장례행렬이 굳게 닫힌 수도원의 정문에 도착했고 의전관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때 문 너머에서 수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분은 누구요?” “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의 왕 프란츠 요셉이오”라고 의전관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오. 당신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말해 보시오.” “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 보헤미아,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달마시아의 왕이며, 트란실바니아의 대공작이자, 모라비아의 후작이며 스티리아와 코린티아의 공작인 프란츠 요셉이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아직 모르겠소. 당..

고물과 보물은 위치의 문제 - 겨자씨

“브라운관 TV가 고물상에 있으면 고물, 백남준에게 있으면 보물. 마이클 조던은 야구계에 있을 땐 고물, 농구계에 있을 땐 보물. 고물과 보물은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은 어디에 있을 때 보물인가.” 이창현 작가의 도서 ‘내 마음속의 울림’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본질’의 문제가 아닌 ‘위치’의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다만 본질이 죄인인 사람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삶이 좌우됩니다. 몸과 귀가 정욕의 자리에 가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예배의 자리에 있습니까. 시편 1편을 보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복된 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

당신은 과연 하나님 편인가 - 겨자씨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에도 어려운 상황 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전세가 불리하자 참모 한 명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토로합니다. “각하, 어려울 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자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일세.” 사람들은 항상 편을 가릅니다. 나를 긍정하면 내 편이요, 나를 반대하면 적이라 여깁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여서 누구나 하나님이 내 편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편이신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

명의 편작과 십자가 - 겨자씨

동양에서 전설적인 명의는 편작입니다. 그런데 편작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고, 이들 삼형제 모두 뛰어난 의술을 가졌습니다. 한 번은 위나라 문공이 편작에게 삼형제 중에서 가장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누군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편작은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다음은 작은형이며, 맨 끝이 자기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큰형은 얼굴빛만 보아도 병이 생길 것을 알고 미리 조치해주는 의술을 가졌습니다. 작은형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치료해줍니다. 저는 환자의 병세가 깊어 고통을 호소할 때 치료해주기 때문에 제일 실력이 낮은 하수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극도로 아파할 때 고쳐주기 때문에 크게 감사하며 명의라고 칭찬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미리 선지자들을 보내어 죄를 경고하고 증세를 가..

짐이 아닌 힘입니다 - 겨자씨

지난여름 아내와 속리산에 올랐습니다. 평소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가볍게 가고자 했지만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갔습니다. 땀이 나고 옷이 젖으니 가방이 미워집니다. ‘이것만 없어도 힘이 덜 들고 편할 텐데….’ 속으로 투덜대며 갔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쉴 때마다 맛있는 간식을 꺼내 먹고 정상에서는 싸온 밥도 꺼내 먹었습니다. 배낭은 짐이 아니라 힘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는 나에게 힘을 주고 지치지 않도록 보살펴 준 고마운 배낭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이다.’(창 50:19∼20) 우리는 ‘∼때문..

소명감으로 일하는 사람 - 겨자씨

새뮤얼 스미스의 ‘생각혁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목수가 도지사의 의자를 수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꼼꼼하고 세밀해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까닭을 물어봤습니다. 목수는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 내가 이 의자에 앉게 될 날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만들어 놓으려는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후일 그 목수가 도지사가 돼 그 의자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사이어의 ‘지식건축법’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유서 깊은 대학 중 하나인 윌리엄 앤 매리 대학은 남북전쟁 내내 문을 닫았기에 다시는 문이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 늙은 수위는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마치 학교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텅 ..

희망 - 겨자씨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격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해 싸우다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독방에 갇힌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큰아들마저 사고로 죽었지만 장례식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감옥생활 14년 째, 큰 딸이 자식을 낳아 이름을 지어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만델라는 빙그레 웃으며 쪽지를 건네줬습니다. 그 쪽지엔 이런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즈위(희망)!’ 단테의 ‘신곡’을 보면 지옥의 입구에 이런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일체의 희망을 버려라.” 지옥을 정확하게 정의한 표현입니다. 사람은 음식이 없어도 40일을 살 수 있고 물이 없어도 4일을 살 수 있고 공기가 없어도 4분을 살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면 4초밖에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희망은 사람을 살도록 해주는 원동력입..

지금은 희망을 노래할 때입니다 - 겨자씨

오래전에 보았던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내용인즉, 나치 독일의 지배 아래 프랑스 젊은이들이 거사를 계획하다 그만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한 젊은이가 절규합니다. “동지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소. 우리 자폭합시다.” 그때 다른 젊은이가 막아서며 말합니다. “아니오, 아직 끝이 아니요. 우리가 꿈을 잃어버릴 때 그때 비로소 끝이 온 것이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 하나 예외 없이 참담한 소식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암울할지라도 꿈만 잃지 않는다면 아직 끝이 아닙니다. 아니, 새 시대를 향해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꿈이 있다면 그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은 언제나 모든 희망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간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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