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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564

잊을 수 없는 금요일 - 안성국목사(겨자씨)

새해 달력을 받아든 우리는 빨간 펜을 들고 1년 365일 중에서 기념의 날들을 체크합니다. 명절과 결혼기념일을 비롯해 국경일과 가족생일 등. 이 중 한국 사람이라면 빠뜨리지 않는 날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죽음의 날(忌日)’ 아닐까요. 예수 믿는 우리는 죽음을 단순한 상실과 절망이 아닌 새로운 출발과 희망의 통과의례라고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의 날을 소홀히 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제사 대신 정성스럽게 예배를 준비합니다. 시냇가에 무덤을 쓴 청개구리는 비오는 날마다 죽은 어미를 떠올리며 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강우일이 대략 100일 내외라고 하니 최소 4일에 한 번씩은 어미를 위해 우는 것입니다. 청개구리는 어미의 죽음 이후에 대단한 효자가 된 것이 틀림없겠지요. 9일 종..

선택하고 집중하라 - 곽주환목사(겨자씨)

속도가 많이 빨라졌습니다. 속도가 경쟁력이요 능력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속도는 아예 생존방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빨라졌으면 일상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빨라진 만큼 여유가 생겼을 텐데 왜 우리는 이렇게 점점 더 분주한가. 그것은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했습니다. 라면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고, 화장품 종류도 단순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엔 모든 게 복잡해졌습니다. 김밥 집에 가도 무슨 김밥을 먹나 고민하게 됩니다. 커피는 말할 것도 없고요. 속도는 빨라졌지만 복잡해졌으니 우리 생활은 점점 더 바빠지게 된 것입니..

봄에는 사뿐 사뿐 걸어라 - 한재욱목사(겨자씨)

인디언들은 봄이 되면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모두들 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라. 땅 밑에 이제 막 봄의 씨앗들이 올라오니 그걸 짓밟지 말라.” 우리의 옛 조상들은 더 따뜻했습니다. 보통 때엔 씨줄 열 개를 나란히 해서 촘촘하게 엮은 십합혜(十合鞋)라는 짚신을 신었습니다. 그런데 봄이 되면 십합혜의 반(半)인 씨줄 다섯 개에 날줄을 듬성듬성 엮은 오합혜를 신었습니다. 이 짚신은 실용적이지 못했습니다. 보기에도 팔푼이처럼 엉성하고 빨리 닳기도 하고 급하게 뛰어가다 보면 훌떡 벗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봄이 되면 오합혜를 신은 이유가 있습니다. 봄은 모든 벌레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때. 느슨하게 삼은 오합혜를 신고 다니면 알에서 막 깨어난 벌레들이 밟혀 죽는 일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갈치’ 의 원말..

인생은 십자가로부터 - 김석년목사(겨자씨)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위기는 곧 ‘십자가 신앙의 위기’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기독교의 진리도 생명도 능력도 복음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생명도 능력도 없는 껍데기 신앙일 뿐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통찰력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인생은 사십부터가 아니다. 이십부터도, 육십부터도 아니다. 인생은 십자가로부터다!” 1945년 10월 히틀러 치하에서 억압 받던 독일교회는 세속화된 신앙을 재정비하고자 십자가 앞에 모여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선언문’입니다. 슈투트가르트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더욱 용감하게 신앙고백하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둘째, 더 진실하게 기도하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셋째, 더 감사와 기쁨에 넘쳐 살지..

럭비공과 희망 - 한상인목사

옛날 럭비공은 돼지 방광에 가죽 네 조각을 덧씌운 뒤 꿰매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고무공으로 대체됐고 럭비풋볼유니온(RFU)은 1892년 타원형의 공을 공식 럭비공으로 규정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럭비공은 지금과 같이 점점 길쭉해졌다. 럭비공은 원주의 길이가 짧은 쪽이 28∼30㎝, 긴 쪽이 58∼62㎝이다. 럭비공은 원형의 공보다 훨씬 더 불규칙하게 반동한다. 그런데 이게 매력이다. 만일 정해진 대로 감으로써 희망이 없고 패배할 게 분명하다면 사람들은 정해진 대로 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흙수저’인 사람들은 럭비공 같은 사회를 선택한다. 기존의 정해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럭비공 같은 스타 지도자가 갈채를 받는다. 이는 살기 위한, 희망을 갖기 위..

왕따를 왕자로 만드는 교회 - 박성규목사(겨자씨)

세상엔 상대가 뭔가 부족하거나 뛰어나면 따돌리는 문화가 있습니다. 보통 ‘왕따’라고 하지요. 안타까운 건 교회 안에도 왕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뜻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따들의 친구가 되셨고, 왕따를 왕자로 만드신 분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는 왕따의 대상이었습니다. 삭개오는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너무나 신났습니다. 그래서 뽕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뭇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왕따의 친구가 되어주시자 놀라운 일이..

나르시스 - 안성국목사(겨자씨)

모 방송사에서 실제로 실험한 내용입니다. 청춘남녀들을 한 명씩 방에 들여보냅니다. 거기에는 제법 많은 사진들이 걸려있는데 모두 다른 이성(異性)의 얼굴들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호감 가는 1명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형제건, 자매건 이상하게도 들어가자마자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단 한 개의 사진을 순식간에 찾아냅니다. 그들은 그 사진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남자(여자)가 제일 맘에 드네요. 너무 끌리고, 매력이 있어 보여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요.” 진행자는 그에게 사진의 뒷면을 확인해보라고 말합니다. 모두들 사진의 뒷면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거기에는 바로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그 사진은 자신의 모습 몇 부분만을 고쳐 만들어낸 가상의 사진이었습니다. 실험..

당신의 배터리·와이파이는 안녕하십니까 - 곽주환목사(겨자씨)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삶의 방식을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컴퓨터를 처음 사용할 때보다 더 큰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처음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책상에 앉아서 사용해야 하는 제한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항상 휴대하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배터리가 점점 줄면 우리 마음에 불안함이 밀려오는 듯합니다. 또 하나는 와이파이 연결 문제입니다. 어디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배터리는 얼마나 남아있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배터리가 줄어드는 건 불안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

모든 소리를 이기는 소리 - 한재욱목사(겨자씨)

“이 순간/ 소리가 없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네(此時無聲勝有聲).”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비파행’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배경이 없으면 꽃이 풍경으로 피어나지 못하듯 말 또한 침묵의 배경이 없으면 깊이와 향기가 없습니다. 가장 깊은 진실, 푸른 창조는 침묵 속에 존재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파직당한 뒤 원균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해 궤멸합니다. 선조 임금은 대안이 없자 이순신을 다시 복권시킵니다. 연전연승하던 자신을 고문하고 명예를 짓밟아 놓았지만 다시 전쟁터로 나가라고 합니다. 이순신도 사람인데, 증오와 적개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침묵합니다. 그의 난중일기에는 군관 병사와 마을의 노인, 심지어 한경 돌쇠 해돌 자모종 등 노복들의 이..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 김석년목사(겨자씨)

우리는 흔히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과연 누가 그분을 못 박았습니까. 성경은 그 범인들을 낱낱이 열거합니다. 먼저 십자가 처형을 언도한 빌라도입니다. 처형을 요구한 제사장들과 집행한 로마병들도 있습니다. 예수를 넘겨준 가룟 유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공범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행 4:27) 초대교회 교부였던 아타나시우스가 언젠가 깜빡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꿈속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어떤 사람이 그 십자가에 올라가 다시 ‘쾅 쾅’ 망치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놈이냐!” 분개하며 달려가 범인의 얼굴을 확인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는 다름 아닌 아타나시우스 자신이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잠에서 깨어 통곡하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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