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철부어의 사랑 - 겨자씨학철부어의 사랑 - 겨자씨

Posted at 2017.06.28 09: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학철부어(芭扱K魚).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 안에 놓인 붕어란 뜻입니다. 장자의 외물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매우 다급하고 곤궁한 상황을 말합니다. 장자가 생활이 너무 곤궁해 위나라 문후를 찾아갔습니다. 장자의 사연을 듣고 문후는 “좋소, 얼마 후 봉토에서 수확물이 올라오면 금 삼백을 빌려주겠소”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장자가 비유로 말했습니다.
 
“어제 오는 길에서 누가 부르기에 주위를 살펴보니 수레바퀴 자리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붕어가 하는 말이 ‘내 신세가 다급하니 한 됫박의 물이라도 부어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좀 기다리면 서강의 강물을 끌어다주겠소’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붕어가 화를 내며 ‘지금 당장 숨이 막힐 지경인데, 나중에 강물을 끌어다주겠다니 차라리 나를 건어물전에서 찾으시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살길을 열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선뜻 취직을 시켜주거나 거할 집을 마련해줄 순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갑자기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거나 119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을 베풀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41).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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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2분의 1 말하기 - 겨자씨진실의 2분의 1 말하기 - 겨자씨

Posted at 2017.06.26 10:3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QT나눔



청년부를 지도했을 때 일입니다. 아끼는 자매 둘이 심하게 다퉜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놈들이 더 위해주고 사랑하기는커녕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워?’ 단단히 혼찌검을 내줄 요량으로 단번에 한 놈씩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혼을 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녀석은 서러운 울음을 터뜨려버립니다. 사전에 준비해간 멘트는 순간 다 사라지고 ‘많이 속상하지’하며 위로모드로 급전환합니다. ‘전도사님, 글쎄 그 친구가 그럴 줄 몰랐어요.…’ 눈물이 마를 때까지 상한 속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사연을 다 들어준 후에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며 마무리합니다. 물론 녀석과 다툰 다른 청년을 찾아가서도 그대로 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가 어찌 안보이겠습니까. ‘너는 이게 문제야. 반드시 고쳐라’는 말처럼 쉬운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 입고 아픈 마음에 진실로 공감하고 동의할 따름입니다. 누구 편을 들 수 없는, 끔찍하게 사랑하는 제자들이니까요. 하지만 스승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무심한 제자는 자꾸 진실의 전부를 요구합니다. ‘제겐 잘못이 없어요. 모두 저 친구 잘못이에요.’

아뿔싸, 목사가 돼보니 어른 성도들도 매 한가지인 거 있죠. 오늘도 저는 절반의 진실만 말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목사의 일상을 살아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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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분노가 큰 화를 부릅니다 - 겨자씨순간의 분노가 큰 화를 부릅니다 - 겨자씨

Posted at 2017.06.24 09:3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경춘고속도로를 운전해서 가다보면 ‘깜빡 졸음-번쩍 저승’이라는 졸음운전 경고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순간의 졸음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순간의 분노가 죽음을 부르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외줄에 매달린 채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 외벽을 도색하고 있던 노동자를 아파트 주민이 시끄럽다며,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옥상으로 올라가 줄을 끊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또 인터넷을 수리하기 위해 들른 기사를 살해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순간의 분노가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졸음운전과 분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깜빡 졸음이 번쩍 저승으로 이어지듯, 순간 분노는 끔찍한 화로 이어집니다. 졸음운전의 위험성 만큼이나 분노의 파괴성 또한 의식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요즘에는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서 살다보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즉시 이뤄지지 않으면 분노를 터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불편함의 연습도 필요하고, 즉시 해결되지 않아도 참아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분노 범죄가 많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빨리 빨리, 즉시즉시 해결하려는 풍토가 가져다 준 결과일 수 있습니다. 불편과 기다림의 훈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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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 - 겨자씨앎 - 겨자씨

Posted at 2017.06.23 08:3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현학적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입니다. 빈틈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중략)…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 
 
EBS지식채널이 만든 책 ‘지식e(북하우스·12∼13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어떤 지식을 가진 ‘소유적 지식’의 사람과 무엇을 진정으로 아는 ‘존재적 지식’의 사람은 다릅니다. 머리의 힘으로 아는 지식이 있고, 마음의 힘으로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머리의 지식에 오만과 이기심이 보태지면 무지함만 못합니다. 

하나님께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했다고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이때의 지식은 체험적 지식, 존재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마치 부부가 살아가면서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것 같은 지식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서 눈물과 사랑과 희생이 없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 없는 신학은 메마르기 그지없고, 희생 없는 신앙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앎’이 없는 사람 같아 부끄럽습니다.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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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지닌 믿음의 힘 - 겨자씨한 사람이 지닌 믿음의 힘 - 겨자씨

Posted at 2017.06.22 08:2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크리스천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곧 예수 대속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구원받은 믿음’, 또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임마누엘 믿음’ 그리고 시련과 환난 중에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경험하는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대표적인 한 사람을 들자면 얀 후스(1372∼1415)가 있습니다. 그는 체코에서 칼뱅이나 루터보다 100년 먼저 종교개혁을 시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체코대학 교수요 학장이었던 그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를 지적하다가 교황에 의해 파문당했고 콘스탄츠공의회로부터 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혁의 동지들과 교회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모든 이들이여, 진리로 담대하라!” 

이런 후스의 믿음은 한 알의 밀알이 돼 모라비안 공동체를 탄생시켰고 100년 뒤 루터가 일떠선 종교개혁의 토대가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존 웨슬리에게도 영향을 미쳐 전 세계로 복음이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믿음의 힘으로 이렇게 큰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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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감 있는 역사인식 - 겨자씨균형감 있는 역사인식 - 겨자씨

Posted at 2017.06.20 09:4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950년 6·25전쟁 때 아군의 최후 보루였던 낙동강전선 다부동 전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백선엽 장군이 현장에 도착하니 대대장이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너무 굶고 지쳤습니다. 물도 없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때 백 장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잘 싸웠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부산 앞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후퇴하면 나를 쏴라.” 

그러고는 앉아있던 병사들을 뚫고 달려갔습니다. 그의 뒤에서 함성이 들렸습니다. “사단장님, 이제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렇게 국군은 전략적 요충지를 지켜냈습니다.


대구를 지키던 유재흥 장군은 ‘대구를 포기하고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연합군의 말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관, 내가 대구 이남으로 내려갈 때에는 지프차를 준비하지 말고 관을 준비하라.” 

이처럼 목숨을 건 장병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당시 후방에선 부산초량교회와 부산중앙교회에서 목사와 장로들이 통곡하며 이 민족을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숭고한 헌신을 바로 보는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던 신앙선배처럼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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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의 사랑법 - 겨자씨길냥이의 사랑법 - 겨자씨

Posted at 2017.06.19 10:30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침마다 우리 부부는 맘 착한 노부부를 마주칩니다. 예쁜 사발에 정성스레 버무려진 밥을 담아 배고픈 ‘길냥이’들을 먹입니다. 혹여 길냥이 천국이 될까 걱정이 됐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딱 3마리뿐입니다. 아마도 자기들 밥그릇 빼앗길까봐 다른 고양이들에게 소문을 내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 아내는 본래 고양이를 싫어했습니다. 요물 같다는 둥, 털이 많이 빠진다는 둥 얼마나 싫어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새벽마다 노부부의 발자국 소리만 들으면 ‘냐옹∼’하며 반갑게 달려오는 길냥이들이 신기했나봅니다. 어느 날인가 아내는 고양이를 우연히 불러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냐옹?’하며 반응을 보인 겁니다. 아내가 더 친근하게 불렀더니 아니 이 녀석이 아내 곁에 다가와 아양을 떠는 것이 아닙니까. 머리를 연신 비비기도 하고, 때론 벌러덩 누워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립니다.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밥 주는 할머니와 헷갈리는 거 아냐? 녀석,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구먼.’ 

이젠 아파트를 드나들 때면 아내는 어김없이 길냥이를 부릅니다. 한 녀석이 ‘냐옹∼’하고 반갑게 달려 나옵니다. 사랑 받을만한 고양이입니다. 사랑해줄만 합니다. 아무렴요. 세상에 이유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글=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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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 겨자씨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 겨자씨

Posted at 2017.06.17 10:5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비행기를 타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게 무거운 물체가 하늘 위로 날아가는 것이 신비롭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비행기에도 좌우의 분명한 균형이 있습니다. 비행기와 물고기의 모양은 정말 비슷합니다. 물고기가 바다 속을 헤엄치는 것이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이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물고기도, 비행기도 균형이 확실하게 잡혔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우리 얼굴을 보십시오. 두 개가 있는 것은 양쪽으로 분명한 균형이 잡혀져 있고, 하나만 있는 것은 가운데로 모여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는 분명한 균형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거기에도 균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주변엔 균형이 깨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보 아니면 보수로 서로 대적하고, 분배 아니면 성장으로 자기 주장만 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따져보고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일상에서도 반드시 균형이 필요합니다. 집중과 휴식의 균형이 필요하고, 엄격함과 온유함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나의 생활과 생각 속에 균형을 잃지 않는 마음의 태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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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돌이와 갑순이의 죄 - 겨자씨갑돌이와 갑순이의 죄 - 겨자씨

Posted at 2017.06.16 08:0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QT나눔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이 가사에 나오는 갑돌이와 갑순이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서로가 사랑의 마음을 묻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음음음…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그래서 갑순이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고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가고는 달보고 울었다는 겁니다.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도 묻지 않은 죄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마귀가 선악과를 먹으라는 유혹을 던졌을 때, 하나님께 한번만이라도 진지하게 물었으면 그런 죄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삶, 자기가 왕이 돼 사는 삶이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묻지 않은 죄, 묻지 않는 교만은 운명을 좌우합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대상 10:13,14)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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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선물 - 겨자씨하나님이 주신 선물 - 겨자씨

Posted at 2017.06.15 10:20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째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의 뜻을 알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입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입니다. 그분의 성령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임마누엘 동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 임마누엘을 알면서도 일상이 분주해 늘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설교와 기도, 찬양 중에 ‘아멘’ 하면서도 예배당 문만 나서면 그 사실을 금세 까먹고 마는 것이지요. 언젠가 책에서 ‘약속’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너는 불가능한 것을 스스로 가능하게 할 필요가 없다/ 네 가능성을 넘어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못 살았다고 속상해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하라/ 너 혼자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홀로 인생길을 가지 않습니다. 언제나 임마누엘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자주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가.’ 이렇게 끊임없이 주님과의 동행을 일깨우는 질문을 통해 임마누엘을 되새겨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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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창조적 소수 - 겨자씨성령의 창조적 소수 - 겨자씨

Posted at 2017.06.14 09:3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이훈범의 책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에는 ‘날라리 벌’ 얘기가 나옵니다. 봄 여름 많은 꽃이 필 때 꿀벌들이 함께 행동하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벌들은 집단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 지역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읍니다. 하지만 일부 날라리 벌은 집단을 이탈해 따로 꽃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얼핏 보면 집단의 방해꾼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평소 꿀 채집방식이 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은 벌집단에게 새로운 살길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새 물이 들어와야 물이 살아납니다. 사회공동체에 새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새 물을 성경에선 창조적 소수라고 합니다.

노아시대 대부분의 백성들이 성적 타락과 폭력의 죄악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은 인류를 보존하는 창조적 소수가 됐습니다. 유다 백성이 우상숭배와 불신앙에 빠졌을 때 이사야는 거룩한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창조적 소수가 되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고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했습니다. 


오늘날 위장전입과 동성애, 각종 부도덕한 일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이처럼 집단지성이 혼탁한 시대에 창조적 소수의 지성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성령께서 새롭게 하시는 창조적 소수가 가정과 민족과 교회를 살립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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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 통일관 - 겨자씨복음적 통일관 - 겨자씨

Posted at 2017.06.13 07:5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라는 학자는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대신 6·25 전에도 남과 북이 여러차례 교전을 하는 등 훨씬 더 복잡한 정세 속에서 전면전이 발생했다는 수정주의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이 주장을 듣고 한국교회 안에도 남침설 대신 북침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을 단번에 무너뜨린 일이 1994년에 있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서류 상자를 전달했습니다. 거기에는 김일성의 남침계획 등 6·25전쟁 전후 문서 300여종이 있었습니다. 극비 문서에는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남침계획을 승인받고 남침시기를 긴밀히 협의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문서를 통해 일부 사람들이 주장해온 북침설이 허구였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굶주린 북한주민을 돕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감상적 대북관도, 통일비용만 따지는 계산적 통일관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북한동포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적 통일관을 가져야 합니다. 감상적 관점에서 벗어나 북한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하루라도 빨리 북한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복음적 통일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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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어불성설 - 겨자씨빛과 어둠의 어불성설 - 겨자씨

Posted at 2017.06.12 11:3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물과 불이 싸웁니다. 창과 방패가 싸웁니다. 누가 이길까요. 더 힘센 쪽이 이기겠지요. 물은 불을 끄는 힘이 있고 방패는 창을 막아낼 힘이 있겠지만 힘센 불은 물을 말려버리지요. 힘센 창은 방패를 뚫어버립니다. 사람들은 같은 방식으로 빛과 어둠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빛의 힘으로 어둠의 힘을 이기고자 합니다.
 
빛은 빛나는 어떤 것이 ‘있음’(有)을 전제합니다. 빛은 존재의 결과입니다. 반면 어둠은 빛나는 어떤 것이 ‘없음’(無)을 전제합니다. 어둠은 부재의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은 특별한 힘이나 존재가 아닙니다. 빛의 부재를 가리키는 상태와 현상일 따름입니다. 때문에 빛이 비취면 어둠은 자연히 사라집니다. 그러기에 빛과 어둠은 절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둠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빛과 어둠의 싸움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오늘 이 시대에 어둠이 횡행하는 것인가요. 어떻게 캄캄한 어둠이 자꾸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일까요. 괜스레 어둠의 세력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빛의 부재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을 내는 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빛을 내는 데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빛을 내기 위한 수고와 희생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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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찾는 감사 - 겨자씨일상에서 찾는 감사 - 겨자씨

Posted at 2017.06.10 11:5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성공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절반은 칭찬이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절반은 감사라고 합니다. 감사는 행복한 생활과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감사의 조건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감사는 평소와 달리 특별하고 좋은 일에 대해 표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뭔가 대박이 터지는 경우에만 감사한다면 감사할 언어는 많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감사를 찾아 느끼고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사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만나의 시작은 기적이었습니다. 만나는 밤이슬과 함께 내렸습니다. 모양은 깟씨와 진주 같았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습니다(출 16:31).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나를 보고 “이게 뭐야” 하고 말했는데 이 표현이 곧 만나의 뜻이 됐습니다. 그러나 만나가 매일 반복 되다보니 백성들은 감사를 잊고 오히려 불평했습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는 그만큼 숨겨진 하나님의 기적으로 가득하다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기적을 발견해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 한 잔을 마셔도,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어도 기적입니다. 오늘도 감춰진 기적을 찾아보세요.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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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 겨자씨그리움 - 겨자씨

Posted at 2017.06.09 09:5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 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이성복의 시 ‘오늘 아침 새소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조년 시인은 “다정(多情)이 병(病)”이라 했습니다. 아픔과 그리움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머니도 그리움이고 사랑도 그리움이고 그림도 그리움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시인의 임무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을 일깨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움 때문에 병이 나는 게 아니라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게 병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움 대신 차지한 것들이 있습니다. 성공 욕심 시기. 어느덧 그리움은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리움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아픔도 눈물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의(義)와 기득권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낮고 낮은 땅으로 오셔서 우리의 아픔을 보듬으셨습니다. 그리움은 마음에 고인 하늘의 눈물. 내 마음속에 깃든 그리움의 무게는 왜 그리 새털같이 가볍기만 한지요. 주님, 저를 도우소서.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4∼35)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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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 해답을 가질 때 - 겨자씨신앙적 해답을 가질 때 - 겨자씨

Posted at 2017.06.08 09:40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살다보면 종종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습니다. 이때 상황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실존적인 위기입니다. 곧 자신에 대한 절망, 인생에 대한 허무, 신앙에 대한 회의 등입니다. 우리가 실존적 문제의 해답을 갖고 산다면 어려운 상황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외아들이 중병에 걸리자 선교사를 찾아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아들이 낫는다면 소중히 여기는 보석 반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도 했지요. 얼마 후 그녀는 선교사를 다시 찾아와 반지를 내밀었습니다. 선교사는 반가운 마음에 아들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교사는 의아해하며 그럼 왜 반지를 가져왔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큰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아들은 방탕해서 제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그런데 병이 들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회개해 새사람이 됐습니다. 결국 하나님 자녀로 세상을 떠났지요. 이에 감사드리며 반지를 바칩니다.” 


분명 한 어머니에게 엄청난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해답을 갖고 있으니 오히려 그 위기가 평안이 되고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됐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께서도 오늘의 고난을 은혜로 해석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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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의 배신자와 구원자 - 겨자씨경계선의 배신자와 구원자 - 겨자씨

Posted at 2017.06.07 08:5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새들과 짐승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박쥐는 짐승들이 이길 때는 쥐처럼 기어 다니며 짐승 편에 섰습니다. 그러다가 새들이 이길 때는 날갯짓을 하며 새의 편이 됐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을 때 박쥐는 양쪽에서 배신자로 손가락질 당하게 됐습니다.

오늘날 극단적인 사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극단의 편에 서면 흥하거나 망할 위험이 있지만 마음은 편하고 갈등이 없습니다.  

그래서 극단적 근본주의자들은 용맹스럽습니다. 하지만 상생의 길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상생의 길은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 만듭니다. 


박쥐가 배신자가 된 것은 경계선에서 양쪽을 조화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기만 살려고 양쪽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는 양극단에 처해 있습니다. 함께 사는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전염병이 돌아서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론이 향로에 향을 피워서 산 자와 죽은 자, 불평하는 자와 믿는 자의 사이에 섰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향로를 든 아론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론은 경계선에 선 구원자입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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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慾)씨네 삼형제 - 겨자씨욕(慾)씨네 삼형제 - 겨자씨

Posted at 2017.06.05 08:5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욕씨네 가문에는 외모는 비슷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삼형제가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욕구(慾求)입니다. 본질적으로 꼭 필요한 존재이지요. 자타가 공인하는 나름 유익한 존재입니다. 수면욕이나 식욕, 성욕 등이 욕구네 식구들입니다.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없지요. 잠을 자지 않는다면 과로로 죽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성욕도 사실은 종족 보존과 번성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위해 태어난 녀석이지요. 
 
둘째 아들은 욕심(慾心)입니다. 큰 아들과 달리 욕심이는 필요와 필수의 선을 넘어선 녀석입니다. 욕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욕심은 없어도 되는 존재입니다. 욕심이네 식구들에는 음식 욕심이라 불리는 식탐, 과도한 수면에 이르게 하는 게으름, 쾌락의 친구 색욕 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가장 명성을 떨치는 소유욕이 바로 욕심이네 식구임에 틀림없습니다. 

욕씨네 천둥벌거숭이 막둥이는 욕망(慾望)입니다. 욕구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욕심이는 없어도 되는 존재라면 욕망이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불타오르게 합니다. 우리를 유혹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늪으로 인도합니다. 이 못된 집 식구들로는 명예욕 권력욕 탐욕 사치욕 등이 있습니다. 요즘 당신은 이 세 아들 중 누구와 벗하며 살고 계십니까.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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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기쁨, 작지만 큰 아픔 - 겨자씨작지만 큰 기쁨, 작지만 큰 아픔 - 겨자씨

Posted at 2017.06.03 10:4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아내는 순대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끔 순대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러면 아내는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작지만 큰 기쁨을 나누는 기회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일을 통해 큰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기적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작지만 크게 기뻐하는 순간에서 옵니다. 
 
아픔도 그렇습니다. 며칠 전에 서류 정리를 하다가 손톱 밑을 다쳤습니다. 살짝 스쳤는데 칼에 베인 듯 많이 아팠습니다. 세수할 때도 불편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도 불편했습니다. 작지만 큰 아픔이었습니다.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내 몸을 괴롭힐 수 있다니요. 

작지만 큰 기쁨이 있는가 하면 작지만 큰 아픔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지만 큰 기쁨이 행복을 준다면, 작지만 큰 아픔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염두에 두고 배려하며 사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작은 말 한 마디가 상대편에게 큰 아픔이 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했던 작은 자랑이 주변 사람들에겐 큰 아픔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작지만 큰 기쁨이 있는가 하면 작지만 큰 아픔이 있습니다. 작지만 큰 기쁨을 발견하며 사는 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 작지만 큰 아픔을 줄 수도 있다는 삶의 태도가 남에 대한 배려의 시작입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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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을 경계하십시오 - 겨자씨‘약간’을 경계하십시오 - 겨자씨

Posted at 2017.06.02 09:1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큰 기쁨을 방해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약간의 기쁨이다. 큰 만족을 방해하는 것은 불만족이 아니라 약간의 만족이다. 큰 성공을 방해하는 것은 실패가 아닌 약간의 성공이며, 진짜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미움이 아닌 미지근한 사랑이다.”
 
김은주 저 ‘1㎝+(허밍버드·26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100%를 추구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6∼38).

99% 사랑한다고 하면 “나를 99%나 사랑한다니”하면서 감격하는 게 아니라 “나머지 1%는 누구를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인가” 하면서 나머지 1% 때문에 미쳐버리는 게 사랑의 속성입니다. ‘약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약간’ 남겨 놓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구약의 제사 중에 ‘번제(燔祭)’라는 게 있습니다. 제물을 하나님 앞에 남김없이 다 태워 예배하는 것입니다. 다 태우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물질의 법칙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일조로서 10분의 1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법칙은 10분의 1이 아니라 100%를 말씀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100% 속에서 ‘약간’ 남은 것이 고통이 됩니다.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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