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습니다 - 겨자씨아름답습니다 - 겨자씨

Posted at 2017.04.29 12:5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창세기 말씀을 묵상하다가 ‘종류대로’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2) 하나님께서는 종류대로 지어 놓으시고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셨습니다.  

물로 세계를 심판하실 때에도 노아를 통해 창조의 세계를 유지하셨습니다.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창 6:20) ‘종류대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시기에 좋아하셨고 훼손되지 않도록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 개인’이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엄마는 엄마다울 때, 아이는 아이다울 때 아름답습니다. 종류대로 지으신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종류대로 유지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름다움은 내 모습을 지킬 때 생기겠지요.  


세계화가 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면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종류대로 지으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말씀하신 하나님, 그것이 지금도 아름답습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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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봄만 그려라 - 겨자씨그저 봄만 그려라 - 겨자씨

Posted at 2017.04.28 09:5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봄을 그리려 함에 버드나무나 복숭아꽃이나 살구꽃을 그리지 말지니. 그저 봄만 그려라.” 일본의 전통적 단시(短詩) 하이쿠 시인들 사이에서 명제 같은 글귀입니다.  

봄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고 가정해 봅시다. ‘봄’ 하면 떠오르는 것이 개나리 진달래 철쭉 등 봄꽃이나 나무 등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짝만 자유로이 생각하면 어머니와 그리움이 떠오를 수도 있고 엉뚱하게 딸기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그리라는 것입니다. 뻔한 지엽을 그리지 말고 근본을 그리라는 말이고 자신의 심상을 자유로이 그리라는 것입니다. 

상상은 현실보다 강합니다. 상상이 모든 발명의 시작입니다. 지금의 이기(利器)들은 과거에 그것을 상상했던 사람들의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물 하나로 비와 구름과 안개와 시냇물과 바다와 얼음과 눈(雪)을 만드신 하나님은 모든 상상력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상상력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창세기의 벌판에서 유쾌하게 날고 뛰고 있는 것들에 이름을 지어 주는 시인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시인이셨기에 그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도 시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느 때도 시를 짓는 기쁨의 영성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 2:19)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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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넘치는 풍성한 인생 - 겨자씨차고 넘치는 풍성한 인생 - 겨자씨

Posted at 2017.04.27 08:5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인생을 사는 이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곧 쥐어짜는 사람과 흘러넘치는 사람입니다. 
 
쥐어짜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마치 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마른 행주를 쥐어짜듯 힘겹게 살아갑니다. 제힘으로 살아보려니 하루하루 쥐어짜듯 허덕이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흘러넘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내면에 하나님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언제나 평안과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은혜가 흘러넘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당시 교회개혁의 지난함을 걱정하던 동역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언제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상황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이 가장 큰 문제다.” 


오늘 우리가 쥐어짜듯 힘겹게 살아가는 것은 상황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문제가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돌파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풍성함을 맛볼 때 삶 또한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나의 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면 얼마든지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의 생애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흘러넘치는 풍성한 인생이 되게 하소서!”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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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귀신과 우화등선 - 겨자씨개미귀신과 우화등선 - 겨자씨

Posted at 2017.04.26 09:1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명주잠자리는 비단날개를 가진 멋진 곤충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잠자리의 유충을 개미귀신이라고 부릅니다. 개미귀신은 모래밭에 고깔 모양으로 된 함정, 이름도 무시무시한 개미지옥을 만들어놓고 먹이를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개미 같은 작은 곤충이 빠지면 큰 턱으로 잡아서 땅 속으로 끌고 들어가 체액을 빨아먹습니다. 자연세계에서는 당연한 행동이겠지만 장려할 만한 삶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미귀신이 성장하면 허물을 벗고 명주잠자리가 됩니다. 벌레가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잠자리로 우화(羽化)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기를 잡아먹는 유익한 곤충으로 탈바꿈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일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땅에서 살던 인생이 하늘의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인간의 꿈이요 동경입니다. 그런 꿈을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전적벽부(前赤壁賦)에서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곤충뿐 아니라 사람도 변화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드리면 하늘의 존재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된다”(고전 15:51)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우화등선이 따로 없습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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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 겨자씨묘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 겨자씨

Posted at 2017.04.25 12: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미국 어느 묘지에 이런 문구가 써 있다고 합니다. “부지런한 내 딸 여기에 잠들다. 부활의 때에도 제일 먼저 일어날 것이다.” 이런 문구도 있다고 합니다. “참 말 많던 아내 드디어 입을 다물다.” “사랑하는 내 아내 여기에 잠들다. 제발 아내를 깨우지 말아다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나드 쇼는 1950년 94세 때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말을 묘비에 새겨달라고 했습니다.  

‘내 오래 살다가 결국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인데,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지나치게 의역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니 “오직 한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는 스터드의 말은 옳습니다. ‘걸레스님’으로 알려진 중광 승려는 “괜히 왔다 간다”며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 소망이 없는 인생은 괜히 왔다 가는 것처럼 허무합니다. 그러나 천국과 부활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땅은 사명의 장소입니다. 어쩌면 돌로 된 비문보다 더 중요한 게 가족과 성도들, 이웃들의 마음에 남는 비문일 것입니다. 그 마음의 비문에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은가요.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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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신토불이(身土不二) - 겨자씨어색한 신토불이(身土不二) - 겨자씨

Posted at 2017.04.24 09: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숫자를 막 배우던 어린 시절, 퍽 배우기 힘들었던 것이 세 자리마다 찍던 콤마(comma)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1,000’을 만으로 읽고 ‘10,000’을 10만으로 읽는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의 숫자 단위는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조-경입니다. 네 자리 숫자인 만 단위마다 그 이름을 달리합니다. 만이 백 개면 백만, 천개면 천만이지만 만이 만개가 되면 만만이라 하지 않고 새로운 단위 ‘억’이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억이 만개면 만억이 아니라 ‘조’가 되고 조가 만개면 ‘경’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초등학교 시절 십만을 ‘10,0000’으로, 1억을 ‘1,0000,0000’으로 쓰면 편리하겠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왜 누가 말도 안 되게 세자리마다 콤마를 찍은 것일까요. 영어를 배우며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thousand-million-billion, 1,000-1,000,000-1,000,000,000, 눈치 채셨습니까. 서양 숫자는 세 자리 단위로 새로운 단위가 등장합니다. 즉 세 자리 콤마는 우리 숫자 체계와 정확하게 어울리지 않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뿐이겠습니까. 돼지고기는 600g으로, 금은 1.75g으로, 아파트는 3.3㎡로, 집 주소는 ‘000로’로 사용하는 이 어색함. 대한민국 백성들은 참 착합니다. 하지만 서양 것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자긍심을 넘어 자존심마저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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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 겨자씨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 겨자씨

Posted at 2017.04.22 16:2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얼마 전 데스밸리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라는 뜻의 미국 국립공원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두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두 곳은 여러 가지 대조되는 점이 많습니다. 데스밸리는 거의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도 구하기 어렵고 호텔도 몇 개 없고, 여행객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는 모든 것이 풍요롭습니다. 음식도 풍성하고 호텔도 많습니다. 휘황찬란한 카지노와 놀이시설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다양한 박람회도 열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둘 중에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가 더 좋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곳은 하나님께 가까워지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데스밸리는 거의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 삶의 터전은 광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라스베이거스 같은 환경에 있다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요한 것이 모두 준비되었다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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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와 웬수 - 겨자씨원수와 웬수 - 겨자씨

Posted at 2017.04.21 10:2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부부가 한 팀이 돼 단어 맞추기를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시골의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출연했습니다. 출제 단어는 ‘천생연분’. 할아버지가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알아차리지 못하자 답답한 할아버지는 “당신과 나 사이”하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끄떡이며 대답합니다. “웬수.” 황당한 할아버지는 소리칩니다. “네 글자로….” 그러자 할머니 왈, “평생 웬수!” 
 
‘원수와 웬수의 차이점’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원수는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고, 웬수는 같이 살아야 되는 사람이랍니다. 원수는 어느 기간 동안 버티면 되니까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웬수는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라 더 힘들다는 겁니다. 

사람은 원수와 웬수로 인해 겸손해지고 성숙하게 됩니다. 가시 같은 원수 때문에 기도하게 됩니다. 가시가 많을수록 많이 기도하고 가시가 깊을수록 깊게 기도합니다. 웬수 때문에 겸손해집니다. 흔히들 자식을 웬수라고 합니다. 자식은 피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이 골목에서 우리는 진짜를 배우게 됩니다. 자식을 보며 자신을 보고 자식을 키우며 자아를 죽이며 성숙해 집니다. 이것이 원수와 웬수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선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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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살아계시니 - 겨자씨주님은 살아계시니 - 겨자씨

Posted at 2017.04.20 10:3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부활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을 봅니다. 보지 못한 것은 전부 다 믿을 수 없다는 무지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부활은 단지 역사적 사건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나의 사건 나의 경험으로, 곧 매일의 일상에서 임마누엘 주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 방황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그는 로마 교외의 한 빈민촌에 머물며 아침마다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모두 다 피곤한 얼굴, 잿빛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만은 일터로 나가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 희망찬 모습에 감동한 브라우닝은 ‘피파의 노래(Pippa’s Song)’라는 유명한 시를 지어 사람들에게 그 희망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한 해는 봄으로 시작한다/ 하루는 아침으로부터/ 아침은 7시로부터/ 언덕의 이슬은 진주처럼 빛나고…/주님은 살아계시니/오늘도 모든 일은 잘되리라.” 

만일 당신에게도 힘든 일이 있다면,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이렇게 노래해보십시오. 부활 주님은 살아계시니 오늘도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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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학아세(曲學阿世) - 겨자씨곡학아세(曲學阿世) - 겨자씨

Posted at 2017.04.19 10:5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곡학아세’란 중국의 역사서 ‘사기’의 유림열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원고생은 제나라 사람으로 시경에 정통해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노자의 글을 좋아하던 태후가 그를 불러 노자의 글에 대해 물었습니다. 원고생은 태후 앞이어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노자의 말은 하인들의 말에 불과합니다.” 원고생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원고생과 공손홍이 함께 황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공손홍은 나이가 많은 원고생을 권력욕이 많다고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원고생이 점잖게 공손홍에게 말했습니다. 
 
“공손자여, 힘써 학문을 바르게 하여 세상에 옳은 말을 하고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여기에서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하는 곡학아세가 유래됐다고 합니다. 


오늘날은 3심 재판의 시대입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3심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사람이 형벌을 가볍게 하고 정의를 뒤집으려고 곡학아세하는 무리들을 모아 3심 제도를 악용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 자는 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사 5:20)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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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께 순종하는 삶 - 겨자씨주인께 순종하는 삶 - 겨자씨

Posted at 2017.04.18 08:3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가운데 하버드대학 교수로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자문역을 했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박사가 있습니다. ‘대공황’ ‘불확실성의 시대’ ‘미국의 자본주의’ 등 명저를 저술한 그는 자서전에서 평생 자신을 도왔던 에밀리라는 여성 비서를 소개했습니다.
 
한번은 갤브레이스 교수가 너무 피곤해 깊은 낮잠에 들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그때 직접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여기 백악관인데 갤브레이스 교수 좀 바꿔 주게나.” 이때 에밀리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은 너무 피곤해서 잠시 쉬고 계시는데요. 전화를 바꿔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 “나 대통령일세. 린든 존슨이네.” 

그러자 에밀리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각하시군요.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를 고용하신 저의 주인은 각하가 아니라 교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주인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존슨 대통령은 그녀의 충성스러운 태도에 감동을 받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나중에 갤브레이스 교수와 통화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넨 정말 훌륭한 비서를 뒀더군. 백악관으로 보낼 수 없겠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정말 우리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그의 부르심, 그의 헌신의 요구에 기쁘게 순종하고 복종합시다.  

글=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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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낭비 - 겨자씨사랑의 낭비 - 겨자씨

Posted at 2017.04.13 08:5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십자가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의 낭비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성부 하나님의 낭비요, 한없이 비천한 자들을 위해 송두리 채 자신을 바친 성자 예수님의 낭비입니다. 
 
1956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명문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과 그 동료들이 남미의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몰살당한 것입니다. 당시 한 언론은 이렇게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무슨 낭비인가.” 그도 그럴 것이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너무도 허망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엇의 아내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남편의 일기장을 보여주며 반박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짐 엘리엇) 

기독교 역사는 십자가 은혜에 가슴 겨워 이렇듯 사랑의 낭비를 하는 사람들이 면면히 이어온 역사입니다. 그 사랑의 낭비가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 것입니다. 아, 이 십자가와 부활의 계절에 유난히 사랑의 낭비를 하는 그 사람이 보고 싶습니다. 아니,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내는 뜨거운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석년 목사(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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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고 집중하라 - 곽주환목사(겨자씨)선택하고 집중하라 - 곽주환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08 10:1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속도가 많이 빨라졌습니다. 속도가 경쟁력이요 능력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속도는 아예 생존방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빨라졌으면 일상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빨라진 만큼 여유가 생겼을 텐데 왜 우리는 이렇게 점점 더 분주한가.
 
그것은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했습니다. 라면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고, 화장품 종류도 단순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엔 모든 게 복잡해졌습니다. 김밥 집에 가도 무슨 김밥을 먹나 고민하게 됩니다. 커피는 말할 것도 없고요. 속도는 빨라졌지만 복잡해졌으니 우리 생활은 점점 더 바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 


분주함의 반대는 여유가 아닙니다. 분주함 반대는 올바른 선택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바른 선택과 집중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곽주환 서울 베다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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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 안성국목사(겨자씨)나르시스 - 안성국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03 11:2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모 방송사에서 실제로 실험한 내용입니다. 

청춘남녀들을 한 명씩 방에 들여보냅니다. 거기에는 제법 많은 사진들이 걸려있는데 모두 다른 이성(異性)의 얼굴들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호감 가는 1명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형제건, 자매건 이상하게도 들어가자마자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단 한 개의 사진을 순식간에 찾아냅니다.  

그들은 그 사진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남자(여자)가 제일 맘에 드네요. 너무 끌리고, 매력이 있어 보여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요.” 

진행자는 그에게 사진의 뒷면을 확인해보라고 말합니다. 모두들 사진의 뒷면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거기에는 바로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그 사진은 자신의 모습 몇 부분만을 고쳐 만들어낸 가상의 사진이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모든 남성들이 자신을 닮은 여성에게 끌렸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모든 여성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합성해 만든 남성을 선택한 것이죠.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지요.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모든 하나님의 법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안성국 익산 평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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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리를 이기는 소리 - 한재욱목사(겨자씨)모든 소리를 이기는 소리 - 한재욱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3.31 08: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이 순간/ 소리가 없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네(此時無聲勝有聲).”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비파행’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배경이 없으면 꽃이 풍경으로 피어나지 못하듯 말 또한 침묵의 배경이 없으면 깊이와 향기가 없습니다. 가장 깊은 진실, 푸른 창조는 침묵 속에 존재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파직당한 뒤 원균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해 궤멸합니다. 선조 임금은 대안이 없자 이순신을 다시 복권시킵니다. 연전연승하던 자신을 고문하고 명예를 짓밟아 놓았지만 다시 전쟁터로 나가라고 합니다. 이순신도 사람인데, 증오와 적개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침묵합니다. 그의 난중일기에는 군관 병사와 마을의 노인, 심지어 한경 돌쇠 해돌 자모종 등 노복들의 이름들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억울함은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오히려 조국을 사랑하는 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 침묵을 바탕으로 명량에서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가장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서도 잠잠한 양처럼 침묵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의 말없는 비우심,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는 예수님의 침묵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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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도 중요하다 - 박성규목사(겨자씨)작은 것도 중요하다 - 박성규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3.28 08:1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986년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후 몇 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최첨단 기술의 총합인 유인우주선의 폭발은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사고 원인은 아주 작은 것에 있었습니다. 직경 1㎝도 되지 않는 오링(O-ring)이란 부품의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2001년 2월 12일 F-5E 전투기의 공대공 미사일이 오발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왼쪽 날개에 장착된 부품에서 빠져나온 8㎜의 나사못이 회로 납땜 부분과 접촉돼 합선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작은 부품이었지만 그 가치는 절대 작은 게 아니었습니다. 정밀해야만 하는 우주선과 전투기와 미사일에는 아무리 작은 것도 작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도 작은 것 같지만 작지 않은 게 있습니다. 주일에 한 번쯤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봄이 되면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가고 결혼식이 많다보니 주일을 가볍게 여기고 빠집니다. 그러나 주일성수 신앙이 사라지면 신앙 본질도 잃게 됩니다. 주일은 시간의 지성소이며 주일성수가 지성소의 은혜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가정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도 많습니다. 가정에서 남편 아내 부모 자녀의 역할을 무시하면 인생에 결정적인 결함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절대로 작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을 지키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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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계 - 겨자씨미친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계 - 겨자씨

Posted at 2017.03.24 11: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러시아의 소설가 에밀 아자르의 도서 ‘자기 앞의 생’의 한 구절입니다. 몸을 구부려야 보이는 세계가 있듯이 깊이 미쳐야 볼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승리자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열정입니다. 이는 ‘집중’ ‘몰입’ ‘미쳤다’는 말과 같습니다. 일에 미쳐서 열심히 하는 것을 영어로 ‘엔수시에이즘’(enthusiasm)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엔테오스(entheos)라는 희랍어에서 왔습니다. ‘엔’은 들어간다, ‘테오스’는 신이란 뜻입니다. 미친다는 것은 어떤 일에 신들려서 영감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미쳤다는 것은 ‘깊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깊이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입니다. 도박에 미친 사람이 도박에 대해 아무리 깊이 있게 말해도 그것은 악의 깊이일 뿐입니다. 올바른 방향, 죽도록 미쳐도 후회가 없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위해 미치도록 달려간 사람이 가장 행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에 미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심문하던 총독 베스도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행 26:24)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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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구도와 하나님의 부르심 - 겨자씨계명구도와 하나님의 부르심 - 겨자씨

Posted at 2017.03.22 11:5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계명구도(鷄鳴狗盜)란 닭 울음소리와 개 도둑질과 같은 하잘것없는 재주를 말합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탁월한 인물 중 한 명인 제나라의 맹상군은 출신과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이 있으면 누구라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개 도둑 출신과 닭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도 수하에 들어왔습니다.
 
한 번은 맹상군이 강대국인 진나라에 거의 구금되다시피 했습니다. 맹상군은 탈출하기 위해 왕의 후궁에게 부탁했습니다. 후궁은 ‘호백구(여우 겨드랑이 털로 만든 옷)’를 가져오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맹상군이 난처해 할 때 개 도둑 출신인 그의 식객이 나가서 호백구를 훔쳐왔습니다. 겨우 궁궐을 벗어나 국경에 도달했을 때 아직 새벽이어서 성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때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이 ‘꼬끼오’ 하자 모든 닭들이 울기 시작했고 성문이 열려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용모가 건장하면 학식이 없고 학식이 출중하면 재물이 없습니다. 출신과 배경을 따지면 쓸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변화시켜서 적재적소에서 사용하시고 탁월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한상인 광주순복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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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같은 리더가 그립다 - 박성규목사(겨자씨)다윗 같은 리더가 그립다 - 박성규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3.21 09:3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골리앗의 등장은 이스라엘 군대를 전쟁 공포증으로 몰고 갔습니다. 거인 골리앗의 위협적 기세는 왕부터 이등병까지 벌벌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누구도 해결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대안적 리더가 부상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사울이나 이스라엘 현역군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비난하기보다 적을 막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아갑니다. ‘영어순해’라는 책을 보면 다윗과 이스라엘 군대의 차이를 이렇게 기술합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그를 죽일 수 없다(He is so big, we can never kill him)’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내가 못 맞출 리 없다(He is so big, I can’t miss it)’고 봤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골리앗은 거인이 아니라 거대한 표적으로 보입니다. 비난은 하지만 대안이 없는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는 희망의 등불이 꺼집니다. 오늘 이 시대는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에 다윗 같은 대안적 리더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리더가 되길 바랍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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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범이라는 힘 - 박성규목사(겨자씨)삶의 모범이라는 힘 - 박성규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3.14 08:5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초대교회는 주후 110년 쯤 로마제국 전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고신대 교회사 이상규 교수님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첫째, 세계가 로마제국으로 통일돼 여행이 편리했습니다. 둘째, 도로가 좋았습니다. 셋째, 언어가 통일돼 복음전파에 도움이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네 번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노예와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평등을 실천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자비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생명력을 부여했고 복음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원천이 됐습니다. 로마사회에서 노예 인구의 비율은 20∼30%였습니다. 그러나 성도 중 노예의 비율은 50%였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 안에 노예가 많았을까요. 크리스천 주인들이 노예를 인격적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노예들은 크리스천 주인의 사랑과 배려에 감동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중 오네시모 같은 사람은 훗날 에베소의 감독이 될 만큼 교회는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110년 만에 로마제국 전 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구호만 외치지 말고 성도 각자의 삶만 개혁해도 교회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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