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연주하는 봄의 소리 - 김석년목사(겨자씨)희망을 연주하는 봄의 소리 - 김석년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2.23 11:5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깨어 있는 사람은 언제든 계절의 소리를 듣습니다. 스치는 바람에서, 산천에서, 햇볕에서, 작은 나뭇가지 하나에서도 계절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한 시인은 다가오는 봄을 향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어린 시절 어머니의 말씀/항상 봄처럼 새로워라//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솟는 대지의 눈//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한반도의 겨울은 몹시도 춥습니다. 매서운 날씨도 날씨려니와 지난겨울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사회적 한파로 인해 우리의 가슴도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사회에 불어 닥친 삭풍에 국민 모두가 불안과 허탈, 분노에 쌓여 있습니다. 그야말로 앙상한 가지만 남은 늦겨울처럼 황폐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생명의 봄이 찾아옵니다. 봄이 오면 지금은 다 죽은 듯 보이던 잿빛 생명도 다시 푸르른 희망의 잎을 틔워 냅니다. 그러니 아직 절망하지 마십시오. 끝이라 말하지 마십시오. 다시 생명의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희망의 봄은 달아나지 않고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실패 속에서도 아직 희망으로 통하는 길은 남아 있다.”(웨날크)  


김석년 서울 서초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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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룸메이트 - 박성규목사(겨자씨)최고의 룸메이트 - 박성규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2.21 10:4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최근 손봉호 박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손 박사님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2년 미국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유학했습니다. 
 
기숙사를 배정 받았는데 2명이 사용하는 방이었다고 합니다. 캐나다에서 온 친구가 룸메이트였습니다. 방에는 책상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창문 쪽의 밝은 책상이고 하나는 구석 쪽의 어두운 책상이었습니다. 누구나 밝은 책상을 원하겠지요. 
 
하지만 먼저 온 캐나다 친구는 어두운 곳에 있는 책상에 자신의 책을 꽂아놓았답니다. 그리고 손 박사님보다 키가 훨씬 크지만 이층침대 위 칸에 자신의 짐을 올려놨더랍니다. 덩치가 큰 서양인에게 아무래도 위쪽 침대는 불편한데도 말입니다. 손 박사님은 미안한 마음에 “책상이나 침대 중 하나는 불편한 것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 친구는 “내가 먼저 왔으니 나에게 선택권을 달라”면서 한사코 반대했답니다. 이후 두 사람은 학교에서 가장 사이좋은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먼저 양보하는 자세로 살아가니 사이가 좋을 수밖에요.  


55년 전 일입니다. 아직도 노(老)학자의 마음에는 그때의 감동이 남아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삶이 아닐까요. 양보하고 손해 보는 삶, 그래서 최고의 룸메이트가 돼주는 삶 말입니다. 그것이 소금과 빛으로 살라는 주님의 뜻이겠지요.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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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입맞춤 - 겨자씨하나님의 입맞춤 - 겨자씨

Posted at 2017.02.18 09:3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브레넌 매닝의 ‘부랑아 복음’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한 외과 의사가 젊은 여인의 뺨에 난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환자의 얼굴 곡선을 살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입 근육으로 이어지는 작은 신경 줄기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입이 마비돼 뒤틀리고 말았습니다.
 
환자가 힘겹게 입을 움직여 물었답니다. “제 입이 앞으로도 계속 이럴까요?” “네, 그럴 겁니다. 신경을 잘라냈거든요.” 의사는 죄인이 죄를 고백하듯 맥없이 대답했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돌린 채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젊은 남편이 가만히 미소를 짓고는 “난 좋아. 귀여워” 하며 부인에게 입을 맞췄습니다. 그 순간 의사는 거룩한 임재 앞에 선 듯 감동과 충격으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답니다. 남편이 다정하게 몸을 굽혀 입을 맞추는데, 아내의 뒤틀린 입에 입맞춤을 하기 위해 자기의 온전한 입술까지 비트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입맞춤이 아닐까요. 죄로 인해 뒤틀려 흉하게 변해버린 이 세상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입술을 비트시면서까지 다가오신 하나님의 입맞춤. 누구라도 어떤 죄라도 예외가 되지 않는 이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최효석 무지개언약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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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어른의 차이 - 겨자씨노인과 어른의 차이 - 겨자씨

Posted at 2017.02.17 07:3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고령화 시대입니다. 노인이 많으면 사회가 병약해지지만 어른이 많으면 윤택해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과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은 나이를 날려버린 사람이지만 어른은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해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머리만 커진 사람이고, 어른은 마음이 커진 사람입니다.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지만 어른은 어린 사람에게도 배우려 합니다. 노인은 아직도 채우려 하지만 어른은 비우고 나눠 줍니다.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 알지만 어른은 이웃을 배려합니다. 노인은 나를 밟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지만 어른은 나를 밟고 올라서라 합니다. 노인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만 어른은 나다운 아름다움을 찾은 사람입니다. 노인은 겉모습이 늙어가는 것을 슬퍼하지만 어른은 속사람이 충만해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깊이 숙성된 잉크가 좋은 시를 씁니다. 속사람이 주님을 닮은, 향기로운 어른들이 사회를 빛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이런 사람이 어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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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교회는 세상의 희망 - 겨자씨그럼에도 교회는 세상의 희망 - 겨자씨

Posted at 2017.02.16 12:16 | Posted in 영으로기도하자/CCM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 존경받는 사람 중에 고 박종홍 교수가 있습니다. 한 제자는 그를 가리켜 성성성(誠成聖), 곧 지성스럽게 살다가 신앙적인 거룩함을 찾아간 사람이라 평했습니다. 사실 그는 철학도로서 죽을 때까지 진리 탐구를 자기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일평생 진리를 추구하며 살다가 마침내 임종을 앞두고야 기독교 신앙에 입문했습니다. 
 
그러나 병세가 워낙 심한지라 교회에 나갈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바람대로 새문안교회에서 영결식을 치르게 됐는데, 당시 그의 제자들은 전부 의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이 언제 크리스천이 되셨지?” 후일 전후 사정을 듣고는 모두가 이렇게 수긍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교회 외에 딱히 갈 곳이 없으셨으니….”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교회의 변질과 추락을 보며 낙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 외에 어디로 갈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사람이 살아나고 열방이 구원을 얻는 공동체는 교회밖에 없습니다. 루터는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누워계신 말구유다.” 교회가 아무리 구유처럼 볼품이 없어도 그곳에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옳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김석년 서울 서초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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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 마을 사람들의 봇짐 - 겨자씨랑탕 마을 사람들의 봇짐 - 겨자씨

Posted at 2017.02.15 11:4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네팔에서 해발고도 3300m의 랑탕 마을은 티베트 타밍족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험한 트레킹 지역으로 손꼽히는 랑탕 마을은 2015년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마을 주민은 물론 외국인 트레커 수백 명이 변을 당했습니다. 당시 살아남은 랑탕 주민들은 들에서 감자를 캐던 여인들이라고 합니다.
 
랑탕 국립공원의 마지막 마을인 강진곰파는 해발 3730m입니다. 그곳은 빙하가 덮인 고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척박해진 토양이어서 아무 것도 심을 수 없고 키 작은 식물들만 자라납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소박한 먹을거리를 나누기 위해 랑탕 마을 사람들은 봇짐으로 감자를 지고 길을 떠납니다. 비록 간소한 물물교환이지만 감자를 담은 봇짐은 이웃마을 사람들의 생명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생명이 아닌 무익한 것을 지고 험한 산길을 걷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봇짐을 지고 지중해 세계를 누비며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이들이여, 그대들은 무슨 봇짐을 지고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그 봇짐은 과연 생명의 봇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27). 무익한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한상인 광주순복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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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화장실은 -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 겨자씨당신의 화장실은 -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 겨자씨

Posted at 2017.02.14 09:1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청소년사역자 이재욱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평생 꿈이 집 장만이었다고 합니다.

집을 갖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오랜 고생 끝에 입주하고 몇 년이 흘렀을까요.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이 마당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머니는 또다시 악착같이 일해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새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자 또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목표는 화장실이 2개 있는 집이었습니다. 또 수년을 고생한 끝에 화장실이 2개인 집에 들어갑니다. ‘이만하면 됐다’ 하고 뿌듯해 하던 아주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말기 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아주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뒤돌아보니 자기 인생이 딱 세 글자로 표현되더랍니다. “화장실.” 

우리는 늙고 약해져 결국 죽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문득 죽음을 코앞에 두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인생이 허망해지고 심지어 ‘내 인생이 그저 화장실을 위해 존재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결국 화장실 수를 늘려 가는 동안 죽음이 자신의 인생을 가져가고 있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의 ‘화장실’은 무엇입니까.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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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꽃으로 만드는 나비처럼 - 겨자씨바위를 꽃으로 만드는 나비처럼 - 겨자씨

Posted at 2017.02.13 10:4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말씀테마



‘여기 나비 한 마리가 보여주는 본보기가 있네. 거칠고 단단한 바위 위에도 행복하게 앉아 있는 나비. 내 침상이 지금 딱딱하더라도 나 또한 개의치 않으리. 나도 이 작은 나비처럼 내 기쁨을 만들어가리. 나비의 행복한 마음은 바위를 꽃으로 만드는 힘이 있으니.’  
 
윌리엄 데이비스의 시 ‘본보기’입니다. 이번 달 우리 마을의 사랑방인문학당 모임에서는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의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평범한 주부가 ‘플라스틱 행성’이라는 영화를 보고 한 달간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도전한 삶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지속되며 신선한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이 담긴 책입니다. 우리는 지금 화학물질의 바다에 살고 있지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생명을 위협하는지요.

인문학당 모임에 참여한 분들이 ‘집에서 플라스틱을 하나씩 없애겠다’ ‘샴푸를 사용하지 않겠다’ ‘금주를 하고 새 옷을 사지 않겠다’ 등 자신의 다짐을 내놓았습니다.

바위를 꽃으로 만드는 나비의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세상을 생명의 세상으로, 평화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촛불을 밝힙니다. 옳고 바른 것을 위해 묵묵히 빛의 길을 가며 제 몫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만드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백영기 청주 쌍샘자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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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발견하는 즐거움 - 겨자씨하나님을 발견하는 즐거움 - 겨자씨

Posted at 2017.02.11 08:1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다 수풀 속으로 들어가 뱀에 물리고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한답니다. 관공서 학교 교회 가리지 않고 캐릭터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재미의 차원은 다르지만 비슷한 게임(?)을 오래 전부터 즐겨 왔습니다. ‘성 브렌던의 여행’이라는 중세 전설이 있습니다. 브렌던은 성인들이 살고 있다는 약속의 땅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7년 동안 그곳을 찾지 못한 채 바다를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면의 눈을 뜹니다. 비로소 그는 약속의 땅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주위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 땅 바로 아래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야곱도 들판에서 환상을 보고 일어나 외쳤습니다. “나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여기 계신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 천국으로 가는 입구였구나.” 


믿음의 눈을 뜨면 전 세계가 하나님의 집이요, 거룩한 터전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일터와 가정, 홀로 있는 방과 병상, 길 위, 고난 실패 슬픔의 때에 함께하십니다. 우리에겐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넘칩니다. 

최효석 무지개언약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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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와 프로 - 겨자씨포로와 프로 - 겨자씨

Posted at 2017.02.07 08:2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점 하나에 많은 차이가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남’에서 점 하나를 빼면 내가 존중하는 ‘님’이 됩니다. 이렇게 점 하나에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또 하나의 단어가 바로 ‘포로’와 ‘프로’입니다. 포로는 무엇인가에 매여 있고 부자유한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프로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쾌락, 세상적 성취의 포로가 돼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소유, 즐거움, 성취를 위해 열심히 뛰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을 포로삼아 지배합니다. 마침내 자아를 망가뜨립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프로가 됐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 리더로 멋지게 쓰임 받았습니다.  


어떻게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 프로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든 제약을 이겨냈습니다. 둘째, 그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라이벌들이 그를 제거하려고 흠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셋째, 그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전문성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영성 도덕성 전문성을 갖춘다면 어떤 ‘포로’의 상황일지라도 ‘프로’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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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사유화와 정치화 - 겨자씨신앙의 사유화와 정치화 - 겨자씨

Posted at 2017.02.04 07:4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삶 전체의 주님이십니다’란 고백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소명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합니다. 동시에 기독교신앙을 두 종류의 바벨론 포로가 될 위험에 노출시킵니다. 하나는 기독교신앙이 제도적 교회 안에 갇힌 종교로 전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 정치 흐름에 완전히 빠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 기독교 변증가인 오스 기니스는 앞의 경우를 사유화(privatization), 뒤의 경우를 정치화(politicization)라고 부르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사유화는 기독교신앙의 총체성을 부인하게 되고, 정치화는 좌파든 우파든 정치 운동과 동일시되어 비판적 긴장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런 위험을 넘어가려면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소명의 재발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으로 살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거하고자 할 때 비로소 현대 사회에 온전하고 효과적으로 침투해 세상을 변혁시키는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뒤숭숭한 때에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자칫 신앙의 사유화 혹은 정치화의 수렁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 오직 바른 소명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효석 무지개언약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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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편에 서라 - 겨자씨하나님 편에 서라 - 겨자씨

Posted at 2017.02.03 08:1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유럽에 가면 도시마다 중세 성주들이 살던 웅장한 성이 있습니다. 그 성의 중심에 하나님을 예배하던 채플이 있습니다. 당시 성주들은 세력을 확장하느라 자주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럴 때면 먼저 성직자를 모셔 승리를 기원하는 예배부터 드렸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선 누구 편을 들어주실까요. 강자 편일까요, 약자 편일까요. 아니면 기도를 많이 한 편일까요, 적게 한 편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 편도 안 들어주십니다. 욕심으로 인해 다투는 것이니 너희 마음대로 하라며 내버려 두십니다. 이것을 ‘폐기적 심판’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사 서로 욕되게 하시는 것”(롬 1)입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오래 많이 합심해서 기도할지라도 욕심 때문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누구 편이 되실까요. 바로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그 뜻대로 사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내 소원이나 욕심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그 뜻을 따라 나를 변화시켜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나에게도) 이루어지이다.”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김석년 서울 서초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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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겨자씨자유 - 겨자씨

Posted at 2017.02.02 21:4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러시아 혁명 후 영국에 망명해 옥스퍼드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1958년 교수로 취임 했을 때 강연한 원고 ‘자유의 두 개념’은 20세기 내내 자유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입니다. 소극적인 자유는 어떤 간섭이나 억압,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유의 개념입니다.  
 
적극적 자유는 무엇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버리는 것입니다. 벌린은 여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고 합니다. 억압된 그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만 가지고는 온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 즉 더 큰 자유를 위해 작은 자유를 내어 놓을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自由)’라는 단어를 자세히 보십시오. 스스로(自) 말미암은(由) 길을 걸어가는 것이 자유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자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됐습니다. 자신의 작은 자유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큰 자유인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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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나이 - 겨자씨다섯 가지 나이 - 겨자씨

Posted at 2017.01.31 08:0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설을 지내고 우리는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이렇게 해가 지날수록 쌓이는 나이에는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달력의 나이입니다. 달력이 넘어간 수대로 먹는 나이입니다. 둘째는 생물학적 나이입니다. 건강의 나이인데 달력 나이가 70세라도 몸 관리를 잘하면 생물학적 나이는 40세일 수 있습니다. 셋째는 정신적 나이입니다. 달력의 나이보다 이 나이가 적으면 철이 없다 하고 반대인 경우는 애늙은이라고 합니다. 넷째는 사회적 나이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나이인데 몇 살에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는 등의 나이입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다섯째는 자각의 나이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이입니다. 달력의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젊다고 생각하면 젊은 것입니다. 젊어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는 늙은 것입니다.

가나안 정탐꾼 중 한 명이었던 갈렙은 85세에도 40세의 건강과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크고 견고한 헤브론도 점령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달력 나이는 85세였지만, 생물학적 나이와 자각의 나이는 40세였던 것입니다. 설날을 보내면서 한 살 더 먹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생물학적 나이와 자각의 나이를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한 청춘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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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더 보태겠는가 - 겨자씨무얼 더 보태겠는가 - 겨자씨

Posted at 2017.01.27 08:3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눈. 목욕. 찌개 한 냄비. 더운 밥 한 그릇. 그렇게 하루가 저물다. 누가 여기 무얼 더 보태겠다시는가?” 판화가 이철수의 책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중의 한 구절입니다.  

펑펑 함박눈이 왔습니다. 마당과 골목길에 있는 눈을 치우고 목욕을 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방 안엔 따끈한 밥 한 그릇이 있고, 찌개 한 냄비가 밥상에서 아직도 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함이 없는 삶에 무얼 더 보탤 일이 있는가.” 이런 이야기입니다.  

자족하는 삶은 남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달팽이는 빨리 달리는 노루를 부러워하지 않고, 바다에서 느긋하게 유영하는 해파리는 하늘에서 빠르게 비상하는 종달새의 날갯짓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자족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의 정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항의 몸짓입니다.


한 성도가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수도사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해서 기도를 하려 합니다.”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네, 그것들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런데 이 수도원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것 없이도 사는 법입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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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목수의 도구 - 겨자씨나사렛 목수의 도구 - 겨자씨

Posted at 2017.01.25 07:2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어느 날 목수의 도구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 주제는 목수의 도구로서 자격과 품위가 현저히 떨어지는 망치 형제를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소명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망치가 말했습니다. 
 
“제가 좀 시끄러운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망치가 시끄럽지 않으면 어떻게 못을 박겠습니까. 또 어긋난 틀을 두들기지 않으면 어떻게 바로 잡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싫다면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못 형제와 같이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망치가 없는 못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잠시 장내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좌장으로 있던 대패가 “조용히 하라”고 말한 뒤 “못이 원한다면 망치를 따라가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사못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못이 나간다면 사촌인 나사못도 따라가겠습니다.” 다시 여기저기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나사렛 목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대패를 들고 나무를 다듬고, 망치를 들어 못질을 하고, 끌로 깎아서 아름다운 강대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대패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사렛 목수께서 우리 모두를 사용하고 사랑하시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도 버릴 수 없으며, 버려서도 안 됩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나사렛 목수의 도구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한상인 광주순복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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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고통 - 겨자씨소통과 고통 - 겨자씨

Posted at 2017.01.24 08:1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충청도 사람들은 말을 줄여서 잘 합니다. ‘가셨습니다’를 ‘갓슈’, ‘괜찮습니다’를 ‘됐슈’, ‘보신탕을 드시겠습니까?’를 ‘개 혀?’로 줄여서 말합니다.

어느 날 충청도 시골 이발소에 미국인이 들어왔습니다. 이발소 주인아저씨는 그 미국인에게 이렇게 인사했다고 합니다. “왔슈?” 충청도 말로 ‘오셔서 반갑습니다’라는 뜻이었는데 미국인은 그 말을 ‘What see you?(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로 들었습니다. 

조동사 ‘do’가 빠졌지만 시골 아저씨 영어 치고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발소의 큰 거울이 보였습니다. 그 미국인은 문장이 길면 못 알아 들을까봐 짧게 한 단어만 했답니다. “미러(mirror).” 거울을 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가 앉자마자 이발소 아저씨는 커트용 전동식 기계를 갖고 그 미국인의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발소 주인에게는 ‘미러’가 ‘머리를 밀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이 유머에는 이런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삶에 소통이 없으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지요. 명절이 다가옵니다. 가족들 간에 소통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명절 이후 가족 간의 더 따스한 사랑이 훈훈하게 우리 사회를 감싸기 바랍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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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업은 사람 - 겨자씨생명을 업은 사람 - 겨자씨

Posted at 2017.01.23 07:5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티벳의 성자 선다 싱(S Singh·1889∼1929)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 길, 한 사람이 눈 속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지 않았으니 데려가자고 하는데 옆에 있던 사람은 우리도 힘들고 위험하다며 혼자 가버립니다. 선다 싱은 쓰러진 그를 외면하지 못해 업고 갑니다. 가다보니 홀로 앞서 간 사람이 길바닥에 쓰러져 얼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등에 업힌 사람과 선다 싱은 서로의 체온으로 몸이 덥혀졌고 추운 줄 모른 채 마을까지 오게 됩니다.
 
갈수록 춥고 외롭고 막막한 세상입니다. 저 혼자 살기도 벅차고 불안하다며 주변을 외면하고 욕심을 부립니다. 한눈팔지 말고 엉뚱한 것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독하게 제 자신을 챙기라고 말합니다. 그게 똑똑하고 잘사는 것이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눅 10:33)와 ‘네 이웃이 네 몸’(막 12:31)이라는 말씀을 통해 이웃과 삶을 새롭게 정의하셨습니다. 부끄럽게도 세상의 사랑은 잘못되었습니다. 사랑은 넘쳐나고 화려하지만 모두 이기적입니다. 죽음을 거부하고 어둠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이타적인 사랑뿐입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진리를 주님은 십자가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생명을 업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백영기 청주 쌍샘자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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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겸손한 지도자 = 겨자씨하나님 앞에 겸손한 지도자 = 겨자씨

Posted at 2017.01.21 07:3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오스 기니스의 ‘소명’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합스부르크 가의 황제들은 죽은 후 비엔나 카푸친 수도원의 지하 납골소에 안장되었습니다. 프란츠 요셉 황제가 죽었을 때 거대한 장례행렬이 굳게 닫힌 수도원의 정문에 도착했고 의전관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때 문 너머에서 수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분은 누구요?” “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의 왕 프란츠 요셉이오”라고 의전관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오. 당신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말해 보시오.” “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 보헤미아,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달마시아의 왕이며, 트란실바니아의 대공작이자, 모라비아의 후작이며 스티리아와 코린티아의 공작인 프란츠 요셉이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아직 모르겠소.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라는 서늘한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때서야 의전관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비를 겸손히 구하는 불쌍한 죄인 프란츠 요셉입니다.” “그대는 이제 들어오시오”라고 수도원장이 말했고 대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성경과 링컨 대통령이 1861년 취임식에서 사용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함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에게도 동일한 도전을 던지고 싶어집니다. 



최효석 무지개언약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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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과 보물은 위치의 문제 - 겨자씨고물과 보물은 위치의 문제 - 겨자씨

Posted at 2017.01.20 07:0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브라운관 TV가 고물상에 있으면 고물, 백남준에게 있으면 보물. 마이클 조던은 야구계에 있을 땐 고물, 농구계에 있을 땐 보물. 고물과 보물은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은 어디에 있을 때 보물인가.”

이창현 작가의 도서 ‘내 마음속의 울림’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본질’의 문제가 아닌 ‘위치’의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다만 본질이 죄인인 사람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삶이 좌우됩니다. 몸과 귀가 정욕의 자리에 가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예배의 자리에 있습니까. 


시편 1편을 보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복된 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이 말씀에 나온 것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이유는 그 나무가 시냇가에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나무가 사막에 심어졌다면 메말라 버렸을 것입니다. 나무라는 본질은 같지만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보물이 될 수도, 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말씀이 솟아나는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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