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복음 - 겨자씨예수의 복음 - 겨자씨

Posted at 2017.11.20 09:1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세기 유대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그들을 구해주시기를, 그들의 원수를 무찌르시며 자신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영원히 다시 세워주시길 간절히 기대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온 것은 예수님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출애굽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일이 반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의 강력한 통치자를 이기셨고, 그분의 백성을 해방시키셨으며, 시내산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직접 인도하셨다. 그들은 하루빨리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온 것은 예수님이었다. 그들은 공의와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기대했다. 늑대와 양이 함께 누우며, 산에는 달콤한 포도주가 흐르고, 물이 바다에 넘침같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온 것은 예수님이었다.”(톰 라이트의 ‘이것이 복음이다’ 중) 예수님의 행동은 심판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심입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려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다.’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십니다. 절름발이를 고쳐서 걷게 하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던지십니다. 자신을 죽여 우리를 살리십니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메시아의 나라는 어떤 세상입니까.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5174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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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가 흔들립니다 - 겨자씨기초가 흔들립니다 - 겨자씨

Posted at 2017.11.18 07:1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국민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건물에 금이 가고 달려있던 간판은 휘어지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담장이 무너지고 상점에 진열된 상품들도 쏟아졌습니다. 지진은 땅의 근본이 흔들리는 재난입니다. 이처럼 근본이 흔들리면 막대한 피해를 낳습니다. 이를 두고 일찍이 신학자 폴 틸리히는 ‘흔들리는 터전’이라는 문구로 이 시대 상황을 표현한 적 있습니다. 지진은 근본이 흔들리는 두려운 일입니다. 그 피해 결과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땅이 흔들리듯 우리 인생도 터전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뜻하지 않은 위기를 당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원하던 바가 이뤄지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의 기초가 흔들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든든한 기초가 필요합니다. 현세를 흔들리는 터전으로 규정했던 폴 틸리히는 하나님을 ‘존재의 근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생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 찾아올 때도 여전히 우리 주 예수는 ‘굳건한 반석’이 되십니다. 예수는 우리 인생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되어주십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찬송가 488장)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5124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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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새 아침 - 조수아(나를 살리는 찬송 송태근목사)광야의 새 아침 - 조수아(나를 살리는 찬송 송태근목사)

Posted at 2017.11.17 10:1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나를 살리는 찬송 34회) 사연 : 송태근 목사 노래 : 조수아(찬양사역자) 찬송 : 광야의 새 아침





(나를 살리는 찬송) 사연 : 송태근 목사 노래 : 조수아(찬양사역자) 찬송 : 광야의 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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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타오른다 - 겨자씨버려야 타오른다 - 겨자씨

Posted at 2017.11.17 10:1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시인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생의 고통은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버리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많은 것을 얻은 자가 아니라 의미 없는 것을 버린 자입니다. 어리석은 새는 반짝이는 건 무엇이든 주워 모으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주워온 쇳조각들로 둥지가 엉망이 돼도 말입니다. 아무리 수려한 샹들리에로 집을 꾸며도 그 샹들리에 위에 쓰레기가 얹혀 있다면 쓰레기집이 됩니다. 빛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버려야 할 쓰레기를 걸치고 품고 다니면 쓰레기 인생이 됩니다. 버리면 자유와 여백이 생깁니다. 쫓기는 이유는 버리지 못해서입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사람은 탐욕을 버려야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것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50638&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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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영성으로 - 겨자씨순교의 영성으로 - 겨자씨

Posted at 2017.11.16 11:4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교회라는 나무는 세 가지 액체를 먹고 자란다. 수고의 땀, 기도의 눈물, 순교의 피다.” 초대교회 교부이자 신학자였던 터툴리안이 남긴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교회는 언제나 순교자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세워져 왔습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땀과 눈물과 피를 아끼지 않았던 순교의 영성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교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임자진리교회 이판일 장로님의 일화입니다. 1950년 10월 5일, 수요예배 도중 공산주의자들이 교회를 덮쳐 장로와 성도 등 48명이 살해당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전쟁 직후, 가해자들은 모조리 체포돼 사형당하게 되었지요. 당시 외지에 살고 있던 장로님의 아들이 그 처형을 주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에게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들아,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 너도 용서하여라.” 결국 그는 아버지의 뜻대로 그들을 용서했고, 그 아들은 훗날 목사가 되어 사랑으로 그들을 목양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순교의 영성만큼은 이어가야 합니다. 날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와 함께(갈 2:20) 말입니다. 무엇에든지 참되게, 누구에게든지 겸손하게, 어떤 상황에든지 기도하며 십자가 사랑을 실천합시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9831&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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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맛과 멋의 예배 - 겨자씨참과 맛과 멋의 예배 - 겨자씨

Posted at 2017.11.15 08:2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남미대륙 니카라과에서 태어난 에르네스토 카르데날은 사제이며 시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 항상 내 앞에 계시매/ 이 몸의 모든 세포가 기뻐 날뛰나이다/ 밤새 잠에 취해 있을 때도/ 무의식 속에서도/ 나는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카르데날은 하나님 앞에서 온몸의 세포가 기뻐 날뛴다고 합니다. 참으로 감동적이며 큰 도전을 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성적으로 알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뜨거워야 하고, 의지적으로 결단해서 믿어야 합니다. 찬양할 때도 흥에 겨워 어깨가 들썩이고, 눈물이 나며, 목이 메는 찬양을 해야 합니다. 예배 중에 한국인이 작곡한 찬송을 부를 때 회중 속에서 그런 감동이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 크리스천에게는 한국어로 진리를 전할 때 지성을 넘어 영혼에 전달되는 ‘참’을 깨닫습니다. 전통가락에 맞춰 찬양을 부를 땐 찬양의 ‘맛’을 느끼고 온 세포가 격동합니다. 얼마 전 독일로 보낸 한복을 입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그림처럼 한국 고유의 삶에 들어오신 ‘멋진’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한국 크리스천은 한국인답게 참과 맛과 멋을 다해 믿어야 합니다. 그때 온몸이 전율하는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야 기독교가 모든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9058&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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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월남에 간 이유 - 겨자씨그가 월남에 간 이유 - 겨자씨

Posted at 2017.11.14 07:4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불교도였던 어느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늘 절에서 공부하고, 절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군에 입대했는데, 부대 인근 시골교회에서 꼭 와달라는 한 권사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교회가 어떤 곳이길래 그렇게 와보라는 걸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나.’ 그런 그가 예배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마음에 소원을 품었습니다. 교회에는 사과 상자로 만든 초라한 강대상이 있었습니다. 그걸 바꿔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저 강대상을 바꿔드릴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을 만들어 주세요.’ 그때가 월남전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그는 월남전 참전을 결정했습니다. 강대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월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월남전에서 무사히 돌아온 그는 성구사로 달려가 제일 좋은 강대상을 구입해 봉헌했습니다.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한 그에게 그날 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앞으로 목회할 때 교회 성물에 대해서는 절대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책임지겠다.” 그 후 여러 번의 교회건축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구원과 수많은 은혜를 기억하며 보답하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830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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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의 딜레마 - 겨자씨말과 행동의 딜레마 - 겨자씨

Posted at 2017.11.13 08:1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그리스에 프로타고라스라는 변론술을 가르치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율라투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가난해서 수업료를 지불할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스승은 제자에게 변론술을 다 배운 후 소송을 맡아 승소하면 즉시 수업료를 지불하라고 하고 수업료를 면제해 줬습니다. 그런데 율라투스는 다 배운 뒤에도 좀처럼 변론을 맡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참다못한 프로타고라스가 제자 율라투스를 상대로 수업료 소송을 걸었습니다. 프로타고라스가 주장하기를, “자네는 반드시 수업료를 내야하네. 내가 이 재판에서 이기면 자네는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내야하고 자네가 이긴다면 소송에 이긴 것이므로 나와의 약속에 따라 수업료를 내야 한다네.” 율라투스가 거울처럼 말을 반사합니다. “스승님, 저는 이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수업료를 안내도 됩니다. 이 재판을 스승님이 이긴다면 저는 아직 소송에서 이기지 못했으므로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제가 이긴다면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말이 중요하겠지만 말이 다가 아니지요. 우리의 믿음은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으로 증명되니까요. 말은 최대한 아끼셔도 괜찮습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삼상 2:3)”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764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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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가 필요합니다 - 겨자씨인내가 필요합니다 - 겨자씨

Posted at 2017.11.11 10:40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슈퍼마켓에 가면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실감합니다. 밥과 국 같은 음식이 다양한 종류로 먹기 쉽게 만들어져서 나와 있습니다.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면 몇 분 만에 손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면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떤 냉면은 40초 만에 조리할 수 있다는 표시가 돼 있기도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편리해졌습니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없는 골목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인은 속도에 민감합니다. 속도가 경쟁력이라고도 합니다. ‘빨리빨리’는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한국말이 됐습니다. 이렇게 속도를 강조하며 살다 보니 인내하거나 참아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 뿌리 내렸습니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즉시 풀리지 않으면 분노하고,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벌어집니다. 하지만 자연은 원하는 대로 즉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일정기간 인내하고 기다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우리에게는 참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편한 것, 빠른 것만을 좋아하는 이 시대에 스스로 참아내는 훈련을 하면 어떨까요.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709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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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 - 겨자씨타인의 불행 - 겨자씨

Posted at 2017.11.10 10:4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낚시꾼들이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언제인지 아는가?(중략)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낚시꾼이 큰 고기를 잡았다가 놓쳐버릴 때’라고 한다.” 하우석 저(著) ‘진심은 넘어지지 않는다’(리더스북, 36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머리 아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불량한 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구입니다. 내가 힘써 이룬 “앗싸!”도 좋지만, 남이 넘어질 때 느끼는 “고소하다!”도 통쾌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우리는 분명 불량자들입니다. ‘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 책’에는 이 유명한 가문이 지켜 온 가훈이 나옵니다.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 싼값에 내놓은 논밭을 사서 이웃을 원통케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불행을 내 발전의 디딤돌로 삼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오바댜서에는 하나님이 에돔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나옵니다. 형제인 유다가 망하는 날 방관했고, 되레 기뻐했으며, 즐거운 환호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불행에 눈감은 자에게는 하나님도 눈감으시나 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5:14)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643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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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의 변화 - 겨자씨생명으로의 변화 - 겨자씨

Posted at 2017.11.09 09:3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삶이란 곧 변화입니다. 변화는 언제나 두 방향, 죽음과 생명으로 나타나지요. 우리의 육신은 날마다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속상하고 분노하고 피곤하고 아프고 늙고 병들고 절망하다 마침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우리는 변질, 쇠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종 생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육신은 늙어가지만 속사람은 생명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묵상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니 날마다 새날입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개혁, 갱신이라 부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변화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18세기 개혁자 존 웨슬리는 81세 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난 일에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초부터 주말까지, 혹은 연초부터 연말까지 난 피곤을 모르며 지내고 있다. 나는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거나 여행을 해도 피곤을 모른다. 오늘도 그렇다. 나는 내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쇠할 대로 쇠한 노인이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날마다 생명의 변화를 시도하여 속사람이 강건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당신도 생명으로의 변화를 시도할 때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와 강건을 누리는 새날을 살게 될 것입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569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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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영성 - 겨자씨광야의 영성 - 겨자씨

Posted at 2017.11.08 10:0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고대 중국 은나라의 충신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수양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충절을 지키고자 한 행동입니다. 일제 강점기, 매하 양태승은 속리산으로 온 가족을 이끌고 들어갔습니다. 당시 북에는 오산고보, 남에는 고창고보가 있어서 ‘북오산 남고창’이라 했습니다. 일제는 위안부와 학병 동원에 교사와 지식인을 앞장세웠습니다. 해직당하지 않으려면 창씨개명을 하라고 핍박했습니다. 많은 지식인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고창고보를 세운 양태승 선생은 “굶어죽을지언정 창씨개명은 못한다”며 속리산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10여년 전 ‘매하 양태승 평전’이 출간되고, 201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된 일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 치하에서 세속과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순수한 믿음을 유지하고 보존하려던 열성파들이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이른바 광야의 영성, 사막의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입니다. 광야에서 심신의 고통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하나님께 몰두했습니다. 그들은 고행을 자초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하나님만이 최고의 관심사였으며,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것들로 믿음생활이 혼탁해졌습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491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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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이 살아야 합니다 - 겨자씨모판이 살아야 합니다 - 겨자씨

Posted at 2017.11.07 09:0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모판은 그해 농사의 ‘바로미터’입니다. 모판이 건강하면 그해 농사가 잘됩니다. 신학교는 영어로 세미너리(seminary)라고 합니다. 세미너리는 라틴어 ‘세미나리움(seminarium)’에서 비롯됐는데, 모판(seedbed)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신학교는 다음세대 교회의 모판과 같습니다. 거기서 목회자와 신학자를 양성하는 교육이 실패하면 미래 교회는 어둡습니다. 신학교를 이끄는 리더들은 영성과 전문성, 도덕성을 겸비해야 합니다. 과거 한국의 신학교 총장과 이사장들 중에는 영성, 전문성, 도덕성으로 존경받는 분이 많았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존경스럽고 그분의 제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총장님들이 계셨습니다. 또 자신의 재산을 바쳐가며 신학교를 섬겼던 장로님들이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오늘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배출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신학교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영성과 전문성, 도덕성을 갖추지도 못한 이들이 모판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역사 앞에 죄 짓는 일입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모판만은 병들지 말아야 합니다.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이면서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마르틴 루터는 영성과 전문성, 도덕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신학교마다 건강한 모판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글=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4102&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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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말 유희(遊戱) - 겨자씨반대말 유희(遊戱) - 겨자씨

Posted at 2017.11.06 12:0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젊은 시절 한때 재미있게 읽었던 노자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곡즉전(曲則全) 왕즉직(枉則直) 와즉영(窪則盈) 폐즉신(弊則新) 소즉득(少則得) 다즉혹(多則惑) 시이성인포일위천하식(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입니다. 이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굽으니 온전하고, 구부리니 곧다. 우묵하니 채울 수 있고, 낡았으니 새로워질 것이다. 적으니 얻을 수 있겠으나 많으면 혼란스럽게 된다. 이러므로 성인은 이 모두를 하나로 품어 천하의 법으로 삼는다.’(도덕경 22장)

곧은 것만이 능사일까요? 때론 숙여야 할 때가 있지요. 웅덩이처럼 흠이 있고 파였으니 거기에 담을 수 있는 것이지요. 헐어내야 새롭게 세울 수 있고, 비워내야 채울 수 있겠지요. 주워 담은 것이 많아서 가득 차 있다면 그저 어지러울 따름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살펴봅시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느니라.”(전도서 3장) 


주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이제껏 웃고 춤추고 사랑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슬픔도 울음도 미움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리 삶의 일부였습니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3412&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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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 - 겨자씨감사하는 마음 - 겨자씨

Posted at 2017.11.04 08:40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생활이 매우 편해졌습니다.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일을 처리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웬만한 일은 즉시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나치게 편리한 생활을 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즉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견디지 못하는 습성을 갖게 됐습니다.
 
현대인의 편리한 삶에 젖어 들면서 우리에게는 감사보다 불평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불평하고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일삼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새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팽배한 사회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메시지 성경에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생활방식입니다.” 그는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라고 표현합니다.


11월은 추수 감사의 계절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품고, 감사의 표현을 자주 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회복하면 어떨까요. 행복은 소유보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선물이라는 점을 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289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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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이 말(馬)보다 많구나 - 겨자씨말(言)이 말(馬)보다 많구나 - 겨자씨

Posted at 2017.11.03 10:1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전하, 지금 성안에는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김훈 저(著) ‘남한산성’(학고재)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병자호란! 병자년에 청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말(言)이었습니다. 힘도 없으면서 명에 대한 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청나라를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진족이 정묘년에 쳐들어 왔을 때도 조선은 별 대항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적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言)은 다시 기세등등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워 다시 쳐들어 왔습니다. 그래도 말(言)이 많았습니다. 성안의 말(言)들이 성 밖 청나라 말(馬)들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이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꾸짖으셨습니다. 행함이 없는 말, 식언(食言)하는 말, 믿음 없는 말, 사랑 없는 말. 이런 허무한 이파리만 가득한 인생인가 부끄럽습니다.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21:19)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2188&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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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사랑으로 - 겨자씨모든 것을 사랑으로 - 겨자씨

Posted at 2017.11.02 10:3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크리스천이라면 놓쳐선 안 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는 제도나 조직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조금 다르더라도 한 교회 가족으로서 서로 포용하며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신앙이요 참된 교회입니다.  
 
이런 신앙가족애를 잘 보여준 분 중에 고 이문영 장로님이 계십니다. 장로님은 고려대 교수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옥고까지 치르며 나라를 위해 애쓰셨던 분입니다.
 
중앙성결교회에 시무했던 장로님은 당시 교회를 담임하셨던 고 이만신 목사님과 신앙 노선이나 철학에서 큰 차이를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주일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리고 목사님과 교회의 대의에 순종하셨습니다. 


또한 목사님도 그런 장로님을 존중하고 성심껏 목양하셨습니다. 비록 생각이 다를지라도 신앙 안에서 서로 포용하고 이해한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에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한 교회 가족이 되었기에 나이, 성별, 출신, 소유, 능력, 사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해하고, 더 자유하고, 더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1482&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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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후츠파 - 겨자씨야곱과 후츠파 - 겨자씨

Posted at 2017.11.01 12:2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광주극동방송국을 통해 만난 이스라엘 대사로부터 ‘후츠파로 일어서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의 저서입니다. 
 
후츠파(chutzpah)란 히브리어로 ‘뻔뻔함이나 당돌함, 무례함’이란 부정적인 뜻도 있지만, ‘담대함과 저돌성, 도전정신’이란 뜻도 갖고 있습니다. ‘7가지 처방에 담긴 유대인의 창조정신’이란 책의 부제처럼 후츠파는 ‘형식의 파괴, 질문의 권리, 상상력과 섞임, 위험의 감수’ 등의 의미로 이해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론 뻔뻔할 정도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교육을 받습니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과학자와 지도자를 양성했다고 여겨집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야말로 후츠파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모태에서부터 장자권에 도전해 형을 앞질러 태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 중 동생으로 태어나자 기필코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외삼촌이며 장인인 라반과의 갈등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대가족을 이루고 큰 부자가 됐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과 더불어 이긴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야곱 같은 위대한 도전정신이 인생을 바꿉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081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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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말, ‘우리’ - 겨자씨아름다운 말, ‘우리’ - 겨자씨

Posted at 2017.10.30 10:4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집사님 한 분이 신앙상담을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요즘 우리 남편이 예배에 소홀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함께 간절히 기도한 뒤 상념에 빠집니다. ‘우리 남편이라니. 아내가 여러 명 되는 것도 아닐 것인데.’ 그렇습니다. ‘우리 남편’이 아니라 ‘내 남편’이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생각해보니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퍽 좋아합니다. ‘우리’의 영어 단어인 ‘W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들이 등장합니다. 인칭대명사 ‘I(나)’의 복수형, 말하고 있는 화자를 포함한 어떤 그룹, 보편적 인간을 가리키는 우리 등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 ‘우리’에는 영어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뜻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부 명사 앞에 쓰여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 그것입니다.  


우리 오빠, 우리 엄마, 우리 아들, 우리 신랑,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 우리나라…. 이 모든 ‘우리’ 대신 ‘내’ 혹은 ‘나의’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친근하고 따스한 느낌 때문에 역시 ‘우리’라는 말을 포기하기 싫어집니다. 여러분 아시죠? 하나님은 누구보다 가까운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가장 친밀한 우리 주님이시랍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39339&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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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맙시다 - 겨자씨종교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맙시다 - 겨자씨

Posted at 2017.10.28 08:2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내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로마가톨릭의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개의 논제를 제시한 날을 기준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가톨릭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공로를 강조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면죄부를 구입하면 그 공로에 힘입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엔 성경의 가르침대로 돌아가려는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신앙으로 개신교는 500년 세월을 건너왔습니다. 문제는 오랜 세월 탓인지 ‘오직 믿음’이 우리 마음에만 머무는 신념처럼 돼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생활과는 관계없이 마음속 종교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만큼 세상에서의 ‘생활신앙’이 중요합니다. 생활신앙은 온전한 믿음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자세야말로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정신을 바로 계승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는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온전한 믿음을 세워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종교개혁이 아닐까요.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3878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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