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 - 겨자씨징크스 - 겨자씨

Posted at 2017.09.19 08:3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징크스라는 말은 불행을 가져오는 것을 뜻합니다. 징크스는 20세기 초 미국 야구계에서 처음 사용되면서 널리 퍼진 단어입니다. 

서양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징크스는 ‘13일의 금요일’입니다. 미국인 가운데 2000만명 이상이 13일의 금요일을 두려워한다는 통계도 있답니다. 아직도 영국 해군은 비상사태가 아니면 13일의 금요일에는 군함을 출항시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던 날이 13일의 금요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징크스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중세 십자군 전쟁 때 성지 순례자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템플 기사단이 전부 죽음을 당했는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13일의 금요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일의 금요일 징크스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두려움과 불행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패배 같지만 승리입니다. 우리의 죗값을 치름으로 우리 죄를 해결하신 승리였습니다.

당신에게 징크스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글=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8689&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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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벅차오르는 신앙 - 겨자씨희망으로 벅차오르는 신앙 - 겨자씨

Posted at 2017.09.18 09:3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가끔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의 희망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견디다 보면 희망의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날이 오길 견디고 기다리라 말하고 어떻게든 버티라고 합니다. 참다보면 기어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내와 오래 참음은 될지라도 희망이나 소망은 아닙니다. 희망의 색깔은 이와 전적으로 다르거든요. 

야곱이 형을 피해 외갓집에 갔을 때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라헬이 참 예뻤나 봅니다. 마침 라반이 야곱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맡기며 보수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 묻습니다. 야곱은 이때다 하며 말을 꺼내지요. 

“외삼촌,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라헬과 혼인시켜 주세요. 그러면 그 대가로 제가 외삼촌을 위해 7년 동안을 품삯을 받지 않고 일하겠습니다.” 


우리나라 30대 남자 1년 평균 연봉이 4500만원 정도이니, 7년을 약속한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3억1500만원을 포기한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무려 7년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야곱은 7년을 힘겹게 견디며 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라헬을 아내로 얻을 생각에 너무나 신이 나서 7년이 금세 지나가 버리죠. 

이것이 희망의 힘입니다. 하루하루 열려지는 기묘하고 신비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그것이 주님이 오늘 그대에게 주시는 희망 아니겠습니까?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7941&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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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의 마지막 훈수 - 겨자씨마술사의 마지막 훈수 - 겨자씨

Posted at 2017.09.15 11:5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느 청년 엿장수가 있었습니다. 최상의 엿장수가 되기 위해선 뭔가 튀는 실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마술사를 찾아갔습니다. 모진 훈련 끝에 마술을 전수받았습니다. 모든 과정을 마친 날, 마술사 스승은 제자 엿장수를 앉혀 놓고 결정적인 마지막 훈수를 해줬습니다. “네가 즐겁지 않으면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다!”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타오르지 않는 한, 남을 타오르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영혼을 싣지 않는 일에 이웃은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거울은 먼저 웃어주질 않습니다. 내가 먼저 웃어야 합니다. 가장 감동적인 시는 그 시를 쓴 시인이 먼저 감동 속에서 시를 써야 가능합니다. 가장 능력 있는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먼저 하나님 말씀을 받은 확신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은 냉랭하면서도 남을 불태우려 한다면 그것은 거짓과 위선입니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을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렘 37:17)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6772&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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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음의 행복 ‘거룩’ - 겨자씨예수 믿음의 행복 ‘거룩’ - 겨자씨

Posted at 2017.09.14 10:2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칠십 년 전 사람들은 이 숲길을 폐쇄했다네/ 그 후 비바람이 그 길을 다시 망쳐놓아/ 이제는 아무도 모른다네/ 숲 속에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러디어드 키플링)

오늘 우리 크리스천이 잃어버린 중요한 유산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받은 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구원의 표시입니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우리는 거룩의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마치 폐쇄돼 잊혀진 것처럼 세상의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가 거룩한 자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을 통해 믿음의 참된 행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할 때, 내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관계적으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으로부터 존중과 칭찬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일찍이 수도자 에바그리우스(345∼399)는 우리의 거룩을 방해하는 죄로 여덟 가지를 지목했습니다. 탐식 음욕 물욕 불만 분노 절망 허영 교만입니다. 이 가운데 나는 무엇에 자주 넘어지는지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다시 거룩의 길로 행하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5899&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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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서 만나는 생명의 예수님 - 겨자씨절벽에서 만나는 생명의 예수님 - 겨자씨

Posted at 2017.09.13 12:1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유대 왕 헤롯은 사해 근처 마사다에 궁전을 지었습니다. 그중 한 건물은 삼면이 낭떠러진데 한쪽 끝이 절벽에 걸려 있습니다. 헤롯은 왜 그런 전율의 자리를 만들었을까요. 사람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무엇보다 강한 삶의 의욕과 애착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절벽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문입니다.
 
청년 시절 부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큰 부자인 청년 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돈과 권력, 젊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는 영생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영원토록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삶의 무기력증에 걸려 있었을까요. 그는 예수님께 달려 나와 무릎을 꿇고 영생의 길을 묻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재물을 다 팔아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청천벽력 같은 말씀입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께 나왔는데 갑자기 벼랑 끝에 서게 됐습니다. 재물을 모두 나눠주라는 말씀은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라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두려워서 뒷걸음치며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사람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가 후회하고 다시 돌아와 예수님을 따랐기를 꿈꿔봅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5192&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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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스크립투라 - 겨자씨솔라 스크립투라 - 겨자씨

Posted at 2017.09.12 10: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20세기 분석·언어철학의 최고봉은 비트겐슈타인입니다. 그는 인간 언어의 참과 거짓이 말 속에 있지 않고 듣는 사람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저것이 아름답다’라고 말할 때, 다른 사람은 ‘내가 볼 때는 추한데’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는 말한 사람의 진짜 본질을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플라톤 철학이 지배하던 서구사회에서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플라톤 철학에서 ‘의미’는 항상 하나의 개념에 고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그 의미가 삶의 흐름 속에서 계속 바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자동차의 가속페달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됐습니다. 인류의 모든 사상과 문화,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급속하게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적일 수 있지만, 창조주이시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이 시대의 비극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적 언어로 바꾼 데서 시작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 즉 말씀의 절대성을 믿고 삶으로 고백하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글=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448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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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 - 겨자씨영원한 현재 - 겨자씨

Posted at 2017.09.11 10:3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세월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생각해보면 지나가는 게 ‘세월’인가요. 흘러가는 게 ‘시간’인가요. 그렇다면 과거와 미래는 무엇일까요. 잡을 수 없으니 실재가 아니고 보이지 않으니 현실도 아니겠지요.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현실과 실재로서 ‘오늘’을 삽니다. 
 
시간에 대해 탁월하게 이해한 신학자가 있었으니 곧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시간은 영혼의 활동인 기억과 주목, 기대의 상호일치를 통해 영혼 안에서 파악됩니다. 그런데 이 기억과 주목, 기대는 모두 현재 일어나는 영혼의 활동인 것이죠. 과거는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만 존재합니다. 미래는 지금 내가 기대하는 것으로만 존재합니다. 과거와 미래는 과거의 형태와 미래의 형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 자랑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지나간 그림자에 불과하니까요. 또한 오늘의 열정을 미래로 미루는 것은 유익하지 않습니다. 막연한 기대나 낭만적인 낙관론은 접어두고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합니다. ‘내일은 웃을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행복해지겠지.’ 하지 마시고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내십시오. 우리가 사는 것은 단연코 ‘오늘’이니까요.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381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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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이 없을 때 - 겨자씨남은 것이 없을 때 - 겨자씨

Posted at 2017.09.09 06:4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미국 텍사스 주의 허리케인 피해가 엄청납니다. 이재민들의 뉴스 인터뷰를 봤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우리 집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위기에 처하면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남은 것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사르밧 과부는 남은 한 줌의 가루와 병에 남은 기름으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남은 것으로 먹을 걸 만들어 오라고 요청합니다.  

어떻게 보면 엘리야는 참으로 예의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않는 기적이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없을 때 할 일은 하나님을 위해 심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식구들을 위해 남은 것을 먹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음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심으면 거두게 하십니다. 보릿고개는 양식이 거의 없는 계절입니다. 그렇다고 파종할 알곡을 먹으면 마지막 음식이 되고 맙니다. 남겨뒀다가 봄에 심어야 합니다. 없을 때에 심고 거두는 진리를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3268&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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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하도다 - 겨자씨불쌍하도다 - 겨자씨

Posted at 2017.09.08 12:0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시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정현종의 시 ‘불쌍하도다’입니다. 시인은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더군다나 세속적 욕망을 좇고 있으면서도 안 그런 척, 고상한 척하며 자신의 욕망을 숨기려는 위선적 자아를 더욱 부끄러워합니다. 
 
앞뒤가 전부 못난 사람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앞뒤의 편차가 큰 사람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며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한결같이 앞뒤가 다 못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똑같이 못났으면서도 자신은 고상한 척하며 위선에 차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우리는 모두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이 보이는 존재들입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예쁜 죄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주께 아뢰고 긍휼을 구하는 자이고, ‘미운 죄인’은 자신이 의인인 양 목이 곧은 사람입니다. 가난한 옷자락이 다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7) 

글=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2591&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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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음의 행복 ‘사명’ - 겨자씨예수 믿음의 행복 ‘사명’ - 겨자씨

Posted at 2017.09.07 09:3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세 나무의 꿈’이란 동화를 아시나요? 세 그루의 나무가 저마다 꿈을 꾸고 좌절하며 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보석함을 꿈꾸던 나무는 구유가 되었고, 큰 범선을 꿈꾸던 나무는 작은 어선이 되었고, 거목을 꿈꾸던 나무는 밑동이 잘리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망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시는 구유로, 조각배로, 십자가로 쓰임 받으며 그들은 자신만의 사명을 발견했고 행복해했습니다. 
 
이처럼 사는 것이 어렵고, 고달프더라도 살아갈 이유가 분명하다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필생의 사명으로 인하여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명의 행복을 좇았던 한 사람을 꼽자면 시인 윤동주를 들 수 있습니다. 


“행복했던 사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운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그는 대한의 젊은이요 예수 신앙인으로서 민족해방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살았습니다. 십자가의 예수처럼 피를 흘리며 죽는 한이 있더라도 조국만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칼 힐티)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197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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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지식 - 겨자씨신앙과 지식 - 겨자씨

Posted at 2017.09.06 12:1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한국 인삼은 세계적인 인기 상품입니다. 수십 년 전 한국에서 인삼을 선물 받은 미국인 의사가 인삼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그는 별다른 의학적 효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삼이 대단한 효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을 미신에 사로잡혔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당시 지식의 한계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깊은 연구가 진행돼 인삼은 자양강장제로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홍삼은 암에 대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무지는 신의 저주이며, 지식은 천상에 이르는 날개”라고 했습니다. 현대 지식의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식으로 여전히 밝히지 못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것을 단순히 미신이라 비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신앙과 지식은 모두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영으로 찬송하고 마음으로 찬송한다고 말했습니다.(고전 14:15) 바울은 영적 신앙과 이성적 지식을 모두 활용해 기도하고 찬양한 것입니다. 신앙은 맹목적이지 않고 이성적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지식만으로 파악되지 않는 영이며 신비입니다.  


글=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1100&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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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 어머니 - 겨자씨아들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 어머니 - 겨자씨

Posted at 2017.09.05 11:2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안중근 의사의 노모가 뤼순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너는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는 항소하지 마라. 나라를 위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딴마음 먹지 말아라.”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자식의 안위보다 조국의 독립이 소중했던 것입니다.  

조국의 안위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국민이 많으면 국가는 위태로워집니다. 북한이 위협 수위를 계속 높여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도발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한반도의 적화통일입니다. 

내수동교회 박희천 원로목사님은 평양상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가장 좋은 직장인 평양 식산은행에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열리는 독보회가 주일 성수를 방해했기 때문에 직장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독보회는 공산치하에서 시사문제를 발표하면 그것을 공산주의 시각으로 비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독보회는 기독교에 대한 실질적인 탄압이었다고 합니다. 주일 성수를 막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일제 강점기보다 6·25전쟁과 그 이후 공산군 손에 순교한 목회자와 성도가 훨씬 많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조국의 안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입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048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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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을 찾아서 - 겨자씨슈가맨을 찾아서 - 겨자씨

Posted at 2017.09.04 08:3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940년대 초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가정에서 여섯째로 태어난 식스토 로드리게스(Sixto Rodriguez). 6번째 아이였기에 붙여진 이름 ‘식스토(sixto)’에서 그의 밋밋한 인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립대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졸업 후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근근이 술집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름 노래실력을 인정받아 1970년쯤 앨범 2장을 냈지만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노래는 어떤 여성이 남자친구를 만나러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던 길에 앨범을 들고 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텁텁한 땅의 젊은이들에게 그의 노래는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졌습니다. 로드리게스는 그의 1집 대표곡인 ‘슈가맨(sugar man)’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은 슈가맨의 노래로부터 불의한 세상에 저항할 힘을 얻었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키워갔습니다.

‘시장은 범죄율을 숨기고, 국회의원은 망설이고,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정작 투표일을 잊어버리고, 정치인들은 사람들을 이용해먹고, 오염된 강물처럼 마피아는 커져만 가고, 당신은 이게 현실이라 말하네.’(1집 Cold fact 중) 그의 노래에 심장이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장 24절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989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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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장 친한 열다섯명은? - 겨자씨나와 가장 친한 열다섯명은? - 겨자씨

Posted at 2017.09.02 12:0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사람은 보통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5명 정도 둔다고 합니다. 대개 직계가족, 부부 혹은 가까운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그다음은 15명, 50명, 150명으로 증가합니다. 전문가 연구에 의하면 인생의 행복이나 기쁨, 만족은 15명 안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15명의 관계가 좋으면 그 인생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가장 가까운 15명의 관계가 불편하면 그 인생은 불행하고 버겁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의를 잘 지키지도 않고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가거나 약속을 갑자기 변경해도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5명은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관계라는 점에서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서로 사이가 좋으려면 자신만 좋다고 관계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중간, 즉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잘난 척하거나 자기주장이 강하면 사이가 좋을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인간을 칭할 때 ‘인(人)’ 자만 씁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인간(人間)이라 합니다. ‘인생세간(人生世間)’, 즉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사라는 말이 바뀐 거라고 합니다. 행복은 관계의 평안함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가까운 15명의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915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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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음의 행복 ‘풍성’ - 겨자씨예수 믿음의 행복 ‘풍성’ - 겨자씨

Posted at 2017.08.31 10:2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사람은 누구나 무한대 갈망의 존재입니다. 소유를 구하고, 관계를 구하고, 성공을 구하고, 그밖에 수많은 것을 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세상 무엇으로도 우리 영혼은 채워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있을 때에만 우리는 풍성을 누립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죽게 된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꿈에 그리던 가나안을 바라본 후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모세야 슬프냐?” “아닙니다.” “괴로우냐?” “아닙니다.” “분하냐?” “아닙니다.”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그럼 왜 엎드려 있느냐?” 

모세가 대답합니다. “무척 행복해서입니다.” “행복하다니?” “어느 누가 주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을 먹으며, 어느 누가 주께서 주신 반석의 샘물을 마셔보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했던 광야가 제게는 가나안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현실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하나님만 함께하시면 그 인생은 만족이고 풍성입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가졌나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무슨 일이든 예수와 함께할 때, 당신도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그분을 떠난 우리는 빈털터리에 불과하다.”(장 칼뱅)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779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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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오작교 - 겨자씨십자가와 오작교 - 겨자씨

Posted at 2017.08.30 11:30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엊그제가 칠월 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직녀는 베를 짜는 처녀였고, 견우는 소를 키우는 목동이었습니다. 둘은 자라서 결혼했는데, 그때부터 놀기만 해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사는 벌을 받았습니다. 둘이 헤어져 살면서 흘린 눈물로 땅에는 홍수가 일어나 큰 피해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까치와 까마귀가 자신들의 몸으로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줬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오작교(烏鵲橋)를 밟고 지나가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침묵’이라는 소설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새긴 성화(후미에)를 밟는 신자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화를 밟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성화 속 예수님이 ‘밟아도 좋다’고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화를 밟는 신자들은 배교자가 아니라 숨긴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감동적인 소설입니다만, 혹자는 그것을 일본식 기독교의 궤변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의 죄악으로 하나님과 떨어져 살게 된 인간은 고통이 가득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만들어주신 십자가의 다리를 밟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686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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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별이 되어 - 겨자씨상처가 별이 되어 - 겨자씨

Posted at 2017.08.29 08:3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오드리 헵번(1929∼1993)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수려한 외모와 매너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전쟁입니다. 히틀러가 고향 마을을 점령했을 때 우울증과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인생에 반전이 찾아온 건 1950년입니다. 마리오 덴비 감독의 눈에 띄어 단역으로 데뷔한 뒤 최정상 배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인기 절정기에 그는 세상 명예와 쾌락에 빠지지 않고 어린이 구호에 앞장섰습니다. 
 
87년 헵번은 유니세프의 특별대사로 지명되자 영화배우보다 구호 활동이 더 행복하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그는 전쟁터의 아이들을 돌봤는데,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아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눠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네가 결코 혼자 걷지 않음을 명심하며 걸으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회복돼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 

헵번에게 부모의 이혼과 전쟁은 상처였지만 다른 사람의 어둠을 밝히는 별이 됐습니다. 우리의 상처(scar)도 별(star)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631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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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 겨자씨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 겨자씨

Posted at 2017.08.28 10:2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시험하는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진리의 사람입니다”라는 거짓 칭찬을 양념으로 치며 묻기를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맞습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 주님은 그 간계를 훤히 꿰뚫어 보시고 데나리온 하나를 내보이라 하십니다. “뭐가 보이느냐.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가이사의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줘버려라.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의 현답(賢答)에 외식하는 무리는 아무 반론을 찾지 못하고 그저 침묵하며 되돌아갔습니다. 

누가 묻습니다. “목사님들이 세금을 내는 것이 맞습니까, 내지 않아도 됩니까.” 예수님 말씀을 흉내 내봅니다. “우리가 쓰는 돈에 뭐가 보입니까.” “이순신, 퇴계 이황, 율곡 이이, 그리고 신사임당이 보입니다.” “거기 잘 보면 한국은행이라고 쓰여 있지요, 한국은행 것은 한국은행에 줘버리면 되지요.” 물론 세금이야 국세청에 내야겠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종교인 과세 논쟁이 한창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우리가 그깟 땅의 재물 때문에 휘둘려서야 되겠습니까. 언제 우리가 가이사의 것으로 살았습니까. 교회를 시험하는 저 무리에게 보란 듯이 침묵하게 할 예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5411&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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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길이 아니라 사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 겨자씨빠른 길이 아니라 사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 겨자씨

Posted at 2017.08.26 08:3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성경에 보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해 설명하는 말씀이 많습니다. 양은 길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다 합니다. 그래서 목자의 인도 없이는 방황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양이 사는 길은 목자를 떠나지 않고 선한 목자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빠른 길이 아니라 사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 가나안을 향할 때 빠른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출 13:17).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원칙입니다.

이 시대는 빠른 길을 원합니다. 한국인들은 속도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택시도 ‘총알택시’라 부르고 택배도 ‘로켓’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 빠른 길을 원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길이며 우리 소원을 성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빠른 길은 실족하기 쉬운 길이라는 것을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삶에서 빠른 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빠른 길이 아니라 사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477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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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의 비극 - 겨자씨짜라투스트라의 비극 - 겨자씨

Posted at 2017.08.25 09:5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짜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아직도 살아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어디에? 어째서?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F W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홍신문화사·145∼146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C S 루이스는 현세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존재의 깊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관심하다. 오직 어떻게 해야 성공할 것인지 고민할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인생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인생이고, 둘째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서 답을 찾으며 헤매는 인생입니다. 니체는 영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어디에, 어째서 사는지 모른다면 살아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 해답을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초인의 힘’으로 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초인도 거인도 없습니다. 죄성이 가득한 괴물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구원할 만한 초인의 가능성조차도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영원의 삶에 다다를 수 있을 뿐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4100&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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