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귀신과 우화등선 - 겨자씨개미귀신과 우화등선 - 겨자씨

Posted at 2017.04.26 09:1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명주잠자리는 비단날개를 가진 멋진 곤충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잠자리의 유충을 개미귀신이라고 부릅니다. 개미귀신은 모래밭에 고깔 모양으로 된 함정, 이름도 무시무시한 개미지옥을 만들어놓고 먹이를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개미 같은 작은 곤충이 빠지면 큰 턱으로 잡아서 땅 속으로 끌고 들어가 체액을 빨아먹습니다. 자연세계에서는 당연한 행동이겠지만 장려할 만한 삶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미귀신이 성장하면 허물을 벗고 명주잠자리가 됩니다. 벌레가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잠자리로 우화(羽化)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기를 잡아먹는 유익한 곤충으로 탈바꿈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일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땅에서 살던 인생이 하늘의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인간의 꿈이요 동경입니다. 그런 꿈을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전적벽부(前赤壁賦)에서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곤충뿐 아니라 사람도 변화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드리면 하늘의 존재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된다”(고전 15:51)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우화등선이 따로 없습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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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 겨자씨묘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 겨자씨

Posted at 2017.04.25 12: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미국 어느 묘지에 이런 문구가 써 있다고 합니다. “부지런한 내 딸 여기에 잠들다. 부활의 때에도 제일 먼저 일어날 것이다.” 이런 문구도 있다고 합니다. “참 말 많던 아내 드디어 입을 다물다.” “사랑하는 내 아내 여기에 잠들다. 제발 아내를 깨우지 말아다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나드 쇼는 1950년 94세 때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말을 묘비에 새겨달라고 했습니다.  

‘내 오래 살다가 결국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인데,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지나치게 의역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니 “오직 한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는 스터드의 말은 옳습니다. ‘걸레스님’으로 알려진 중광 승려는 “괜히 왔다 간다”며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 소망이 없는 인생은 괜히 왔다 가는 것처럼 허무합니다. 그러나 천국과 부활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땅은 사명의 장소입니다. 어쩌면 돌로 된 비문보다 더 중요한 게 가족과 성도들, 이웃들의 마음에 남는 비문일 것입니다. 그 마음의 비문에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은가요.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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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신토불이(身土不二) - 겨자씨어색한 신토불이(身土不二) - 겨자씨

Posted at 2017.04.24 09:1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숫자를 막 배우던 어린 시절, 퍽 배우기 힘들었던 것이 세 자리마다 찍던 콤마(comma)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1,000’을 만으로 읽고 ‘10,000’을 10만으로 읽는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의 숫자 단위는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조-경입니다. 네 자리 숫자인 만 단위마다 그 이름을 달리합니다. 만이 백 개면 백만, 천개면 천만이지만 만이 만개가 되면 만만이라 하지 않고 새로운 단위 ‘억’이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억이 만개면 만억이 아니라 ‘조’가 되고 조가 만개면 ‘경’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초등학교 시절 십만을 ‘10,0000’으로, 1억을 ‘1,0000,0000’으로 쓰면 편리하겠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왜 누가 말도 안 되게 세자리마다 콤마를 찍은 것일까요. 영어를 배우며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thousand-million-billion, 1,000-1,000,000-1,000,000,000, 눈치 채셨습니까. 서양 숫자는 세 자리 단위로 새로운 단위가 등장합니다. 즉 세 자리 콤마는 우리 숫자 체계와 정확하게 어울리지 않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뿐이겠습니까. 돼지고기는 600g으로, 금은 1.75g으로, 아파트는 3.3㎡로, 집 주소는 ‘000로’로 사용하는 이 어색함. 대한민국 백성들은 참 착합니다. 하지만 서양 것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자긍심을 넘어 자존심마저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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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 겨자씨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 겨자씨

Posted at 2017.04.22 16:2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얼마 전 데스밸리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라는 뜻의 미국 국립공원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두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두 곳은 여러 가지 대조되는 점이 많습니다. 데스밸리는 거의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도 구하기 어렵고 호텔도 몇 개 없고, 여행객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는 모든 것이 풍요롭습니다. 음식도 풍성하고 호텔도 많습니다. 휘황찬란한 카지노와 놀이시설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다양한 박람회도 열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둘 중에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가 더 좋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곳은 하나님께 가까워지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데스밸리는 거의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 삶의 터전은 광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라스베이거스 같은 환경에 있다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요한 것이 모두 준비되었다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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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와 웬수 - 겨자씨원수와 웬수 - 겨자씨

Posted at 2017.04.21 10:2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부부가 한 팀이 돼 단어 맞추기를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시골의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출연했습니다. 출제 단어는 ‘천생연분’. 할아버지가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알아차리지 못하자 답답한 할아버지는 “당신과 나 사이”하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끄떡이며 대답합니다. “웬수.” 황당한 할아버지는 소리칩니다. “네 글자로….” 그러자 할머니 왈, “평생 웬수!” 
 
‘원수와 웬수의 차이점’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원수는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고, 웬수는 같이 살아야 되는 사람이랍니다. 원수는 어느 기간 동안 버티면 되니까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웬수는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라 더 힘들다는 겁니다. 

사람은 원수와 웬수로 인해 겸손해지고 성숙하게 됩니다. 가시 같은 원수 때문에 기도하게 됩니다. 가시가 많을수록 많이 기도하고 가시가 깊을수록 깊게 기도합니다. 웬수 때문에 겸손해집니다. 흔히들 자식을 웬수라고 합니다. 자식은 피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이 골목에서 우리는 진짜를 배우게 됩니다. 자식을 보며 자신을 보고 자식을 키우며 자아를 죽이며 성숙해 집니다. 이것이 원수와 웬수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선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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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살아계시니 - 겨자씨주님은 살아계시니 - 겨자씨

Posted at 2017.04.20 10:3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부활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을 봅니다. 보지 못한 것은 전부 다 믿을 수 없다는 무지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부활은 단지 역사적 사건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나의 사건 나의 경험으로, 곧 매일의 일상에서 임마누엘 주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 방황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그는 로마 교외의 한 빈민촌에 머물며 아침마다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모두 다 피곤한 얼굴, 잿빛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만은 일터로 나가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 희망찬 모습에 감동한 브라우닝은 ‘피파의 노래(Pippa’s Song)’라는 유명한 시를 지어 사람들에게 그 희망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한 해는 봄으로 시작한다/ 하루는 아침으로부터/ 아침은 7시로부터/ 언덕의 이슬은 진주처럼 빛나고…/주님은 살아계시니/오늘도 모든 일은 잘되리라.” 

만일 당신에게도 힘든 일이 있다면,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이렇게 노래해보십시오. 부활 주님은 살아계시니 오늘도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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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학아세(曲學阿世) - 겨자씨곡학아세(曲學阿世) - 겨자씨

Posted at 2017.04.19 10:5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곡학아세’란 중국의 역사서 ‘사기’의 유림열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원고생은 제나라 사람으로 시경에 정통해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노자의 글을 좋아하던 태후가 그를 불러 노자의 글에 대해 물었습니다. 원고생은 태후 앞이어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노자의 말은 하인들의 말에 불과합니다.” 원고생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원고생과 공손홍이 함께 황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공손홍은 나이가 많은 원고생을 권력욕이 많다고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원고생이 점잖게 공손홍에게 말했습니다. 
 
“공손자여, 힘써 학문을 바르게 하여 세상에 옳은 말을 하고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여기에서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하는 곡학아세가 유래됐다고 합니다. 


오늘날은 3심 재판의 시대입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3심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사람이 형벌을 가볍게 하고 정의를 뒤집으려고 곡학아세하는 무리들을 모아 3심 제도를 악용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 자는 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사 5:20)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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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께 순종하는 삶 - 겨자씨주인께 순종하는 삶 - 겨자씨

Posted at 2017.04.18 08:3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가운데 하버드대학 교수로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자문역을 했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박사가 있습니다. ‘대공황’ ‘불확실성의 시대’ ‘미국의 자본주의’ 등 명저를 저술한 그는 자서전에서 평생 자신을 도왔던 에밀리라는 여성 비서를 소개했습니다.
 
한번은 갤브레이스 교수가 너무 피곤해 깊은 낮잠에 들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그때 직접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여기 백악관인데 갤브레이스 교수 좀 바꿔 주게나.” 이때 에밀리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은 너무 피곤해서 잠시 쉬고 계시는데요. 전화를 바꿔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 “나 대통령일세. 린든 존슨이네.” 

그러자 에밀리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각하시군요.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를 고용하신 저의 주인은 각하가 아니라 교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주인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존슨 대통령은 그녀의 충성스러운 태도에 감동을 받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나중에 갤브레이스 교수와 통화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넨 정말 훌륭한 비서를 뒀더군. 백악관으로 보낼 수 없겠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정말 우리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그의 부르심, 그의 헌신의 요구에 기쁘게 순종하고 복종합시다.  

글=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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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닮은 vs 포크 닮은 - 겨자씨젓가락 닮은 vs 포크 닮은 - 겨자씨

Posted at 2017.04.17 12:0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초등학생 어린 아들의 젓가락질이 영 서툽니다. “아들아. 젓가락질 잘해야 어른들에게 예쁨 받는단다. 이렇게 해봐. 중지 위에 잘 올려놓고 엄지로 부드럽게 눌러주렴. 검지는 힘을 빼고 재치 있게 움직여야 돼.” 언젠가는 보란 듯이 성공할 것인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가만 보니 젓가락질은 참 어렵습니다. 젓가락 두 짝, 서로의 높이를 맞추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높은 녀석은 자랑질 그만두고 키를 낮춰야겠지요. 작은 녀석은 수줍음 그만 떨고 분발해야겠지요. 이 두 선수를 위해 무려 30여개 관절과 64개 근육이 함께 응원합니다. 그야말로 협력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행위예술입니다. 

반면 포크질은 마냥 쉽습니다. 그저 빠르고 편리합니다. 그냥 힘주어 찌르면 성공입니다. 대충대충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포크는 만나는 존재마다 상처를 냅니다. 상처를 내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없는 것이 포크입니다. 결정적으로 포크는 혼자서 일합니다. 손발을 맞출 파트너가 필요 없습니다. 다른 이와 함께하는 것을 거추장스럽게 여길 뿐입니다. 혹 그대는 젓가락을 닮았습니까. 아니면 포크를 닮았습니까.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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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의 씨 속에 담긴 비밀 - 곽주환목사(겨자씨)과일의 씨 속에 담긴 비밀 - 곽주환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15 11:2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어느 날 과일을 먹으면서 씨를 발라내기가 불편했습니다. ‘씨가 없으면 더 편리하게 먹을 수 있을텐데’라면서 과일을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씨 없는 수박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불편하다고 씨가 없으면 우리는 더 이상 그 과일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생명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일의 씨는 먹기에 불편하지만 생명의 압축이고, 내년에 그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고통도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의 과정을 피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 역시 과일 안에 있는 씨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 없는 세상, 고통 없는 인생, 고통 없는 과정을 모두가 원합니다. 과일의 씨 속에 생명의 약속이 담겨있는 것처럼, 고통의 과정 속에 생명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이러한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도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과일 속의 씨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을 강조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씨앗 속에 담긴 생명의 약속, 고통 속에 담긴 생명의 약속, 그리고 십자가에 담긴 생명의 약속이 곧 예수의 부활입니다. 씨 없는 수박, 편리하지만 ‘글쎄요’ 입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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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키스 - 한재욱목사(겨자씨)치명적인 키스 - 한재욱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14 10:0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바다는 갈매기가 자신에게 하루에도 수백 번씩 키스를 한다고 믿는다. 키스의 황홀함에 취해 물고기를 도둑맞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정철이 지은 ‘내 머리 사용법(리더스북, 67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치명적인 독을 품은 것일수록 아름답게 보입니다. 

몸에 좋은 송이버섯은 볼품없지만 독버섯은 얼마나 예쁩니까. 마귀는 마귀스럽지 않습니다. 한술 더 떠 자신을 빛의 천사처럼 보이게 가장합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마귀가 우리 영혼을 도둑질하기 위해 독을 품고 던지는 것이 있는데, 인간은 전혀 마귀스럽지 않다고 느낍니다. 바로 ‘생각’입니다. 마귀는 대부분 ‘생각’을 통해 역사합니다.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 하나를 불어 넣음으로 마귀의 역사는 시작됐습니다. 아름다웠던 천지만물이 온통 죄로 물들기 전에 아담과 하와의 생각 하나가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귀가 하루에도 수백번 ‘생각으로 키스’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키스의 황홀함에 취해 영혼이 도둑맞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신실한 예배와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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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낭비 - 겨자씨사랑의 낭비 - 겨자씨

Posted at 2017.04.13 08:5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십자가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의 낭비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성부 하나님의 낭비요, 한없이 비천한 자들을 위해 송두리 채 자신을 바친 성자 예수님의 낭비입니다. 
 
1956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명문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과 그 동료들이 남미의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몰살당한 것입니다. 당시 한 언론은 이렇게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무슨 낭비인가.” 그도 그럴 것이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너무도 허망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엇의 아내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남편의 일기장을 보여주며 반박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짐 엘리엇) 

기독교 역사는 십자가 은혜에 가슴 겨워 이렇듯 사랑의 낭비를 하는 사람들이 면면히 이어온 역사입니다. 그 사랑의 낭비가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 것입니다. 아, 이 십자가와 부활의 계절에 유난히 사랑의 낭비를 하는 그 사람이 보고 싶습니다. 아니,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내는 뜨거운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석년 목사(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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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포기 - 박성규목사권리 포기 - 박성규목사

Posted at 2017.04.11 08:5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102명의 청교도가 보스턴 남쪽에 상륙해 삶의 터전을 형성한 것이 뉴잉글랜드의 기원입니다. 당시 뉴잉글랜드는 철저한 청교도 사회였습니다. 그런 청교도 마을에 어느 처녀가 임신을 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그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 추궁을 했습니다. 임신한 처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기의 아빠는 늘 검은 옷을 입고 마을의 궂은일을 도와주는 수도사입니다.”
 
수도사는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와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사는 곧바로 체포되었습니다. 수도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발로 차고 때린 뒤 추운 겨울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수도사는 결국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죗값으로 죽은 것입니다.  

장례를 치를 때 마을사람들은 수도사가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수도사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처녀를 살리기 위해 죄를 대신 뒤집어썼습니다. 이것이 바로 권리 포기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한 존귀와 영광을 누리지 않고 사람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바로 권리 포기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권리 포기입니다. 이 고난주간 가정 교회 사회에서 권리 포기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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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금요일 - 안성국목사(겨자씨)잊을 수 없는 금요일 - 안성국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10 11:4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새해 달력을 받아든 우리는 빨간 펜을 들고 1년 365일 중에서 기념의 날들을 체크합니다. 명절과 결혼기념일을 비롯해 국경일과 가족생일 등. 이 중 한국 사람이라면 빠뜨리지 않는 날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죽음의 날(忌日)’ 아닐까요. 예수 믿는 우리는 죽음을 단순한 상실과 절망이 아닌 새로운 출발과 희망의 통과의례라고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의 날을 소홀히 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제사 대신 정성스럽게 예배를 준비합니다. 
 
시냇가에 무덤을 쓴 청개구리는 비오는 날마다 죽은 어미를 떠올리며 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강우일이 대략 100일 내외라고 하니 최소 4일에 한 번씩은 어미를 위해 우는 것입니다. 청개구리는 어미의 죽음 이후에 대단한 효자가 된 것이 틀림없겠지요.  

9일 종려주일을 기점으로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회상하는 날들입니다. 그 경건한 날들의 절정에 ‘예수님의 죽음의 날’ 곧 성금요일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날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나를 다시 살리고자 처절한 고통 가운데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을까요. 어찌 그날을 맘 편히 보낼 수가 있을까요. 십자가가 걸려있는 예배당을 찾아 넋 놓아 울어도 될 날입니다. 



안성국 익산 평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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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고 집중하라 - 곽주환목사(겨자씨)선택하고 집중하라 - 곽주환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08 10:1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속도가 많이 빨라졌습니다. 속도가 경쟁력이요 능력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속도는 아예 생존방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빨라졌으면 일상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빨라진 만큼 여유가 생겼을 텐데 왜 우리는 이렇게 점점 더 분주한가.
 
그것은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했습니다. 라면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고, 화장품 종류도 단순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엔 모든 게 복잡해졌습니다. 김밥 집에 가도 무슨 김밥을 먹나 고민하게 됩니다. 커피는 말할 것도 없고요. 속도는 빨라졌지만 복잡해졌으니 우리 생활은 점점 더 바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 


분주함의 반대는 여유가 아닙니다. 분주함 반대는 올바른 선택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바른 선택과 집중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곽주환 서울 베다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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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사뿐 사뿐 걸어라 - 한재욱목사(겨자씨)봄에는 사뿐 사뿐 걸어라 - 한재욱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07 09:3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인디언들은 봄이 되면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모두들 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라. 땅 밑에 이제 막 봄의 씨앗들이 올라오니 그걸 짓밟지 말라.”
 
우리의 옛 조상들은 더 따뜻했습니다. 보통 때엔 씨줄 열 개를 나란히 해서 촘촘하게 엮은 십합혜(十合鞋)라는 짚신을 신었습니다. 그런데 봄이 되면 십합혜의 반(半)인 씨줄 다섯 개에 날줄을 듬성듬성 엮은 오합혜를 신었습니다. 이 짚신은 실용적이지 못했습니다. 보기에도 팔푼이처럼 엉성하고 빨리 닳기도 하고 급하게 뛰어가다 보면 훌떡 벗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봄이 되면 오합혜를 신은 이유가 있습니다. 봄은 모든 벌레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때. 느슨하게 삼은 오합혜를 신고 다니면 알에서 막 깨어난 벌레들이 밟혀 죽는 일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갈치’ 의 원말은 ‘칼치’입니다. 칼 모양을 닮은 고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새끼를 ‘풀치’라고 합니다. 기다란 풀잎 모양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풀(草)이 자라서 칼(刀)이 되는 셈입니다. 힘없는 여린 풀이라고 해서 함부로 밟으면, 풀은 칼이 돼 내게 비수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녀린 풀을 잘 보듬어줬더니, 풀은 칼이 돼 내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큰일을 할 수 있는 씨앗이 됩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 19:17)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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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십자가로부터 - 김석년목사(겨자씨)인생은 십자가로부터 - 김석년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06 11:5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위기는 곧 ‘십자가 신앙의 위기’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기독교의 진리도 생명도 능력도 복음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생명도 능력도 없는 껍데기 신앙일 뿐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통찰력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인생은 사십부터가 아니다. 이십부터도, 육십부터도 아니다. 인생은 십자가로부터다!” 
 
1945년 10월 히틀러 치하에서 억압 받던 독일교회는 세속화된 신앙을 재정비하고자 십자가 앞에 모여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선언문’입니다. 슈투트가르트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더욱 용감하게 신앙고백하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둘째, 더 진실하게 기도하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셋째, 더 감사와 기쁨에 넘쳐 살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넷째,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용감한 신앙고백도, 진실한 기도도, 감사와 기쁨에 넘치는 삶도, 뜨거운 사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만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김석년 서울 서초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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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공과 희망 - 한상인목사럭비공과 희망 - 한상인목사

Posted at 2017.04.05 07:3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옛날 럭비공은 돼지 방광에 가죽 네 조각을 덧씌운 뒤 꿰매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고무공으로 대체됐고 럭비풋볼유니온(RFU)은 1892년 타원형의 공을 공식 럭비공으로 규정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럭비공은 지금과 같이 점점 길쭉해졌다. 럭비공은 원주의 길이가 짧은 쪽이 28∼30㎝, 긴 쪽이 58∼62㎝이다. 
 
럭비공은 원형의 공보다 훨씬 더 불규칙하게 반동한다. 그런데 이게 매력이다. 만일 정해진 대로 감으로써 희망이 없고 패배할 게 분명하다면 사람들은 정해진 대로 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흙수저’인 사람들은 럭비공 같은 사회를 선택한다. 기존의 정해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럭비공 같은 스타 지도자가 갈채를 받는다. 이는 살기 위한, 희망을 갖기 위한 민초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질서가 무너진 사회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소외된 계층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절대 지도자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영광과 존귀를 받으신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항상 고아와 과부의 편이 돼주시고 객과 나그네의 힘이 돼주시기 때문이다.  

한상인 광주순복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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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를 왕자로 만드는 교회 - 박성규목사(겨자씨)왕따를 왕자로 만드는 교회 - 박성규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04 09:0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세상엔 상대가 뭔가 부족하거나 뛰어나면 따돌리는 문화가 있습니다. 보통 ‘왕따’라고 하지요. 안타까운 건 교회 안에도 왕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뜻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따들의 친구가 되셨고, 왕따를 왕자로 만드신 분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는 왕따의 대상이었습니다. 삭개오는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너무나 신났습니다. 그래서 뽕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뭇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왕따의 친구가 되어주시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돈밖에 모르던 수전노가 회개하고 빼앗은 남의 재산을 4배나 갚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소유의 50%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했습니다. 인간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왕따를 왕자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불결한 사람과 접촉하면 오염된다고 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결하다는 이유로 왕따 당한 사람들과 접촉해 그들을 성화시키셨습니다. 교회마다 왕따를 왕자 만드는 예수님의 사역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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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 안성국목사(겨자씨)나르시스 - 안성국목사(겨자씨)

Posted at 2017.04.03 11:2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모 방송사에서 실제로 실험한 내용입니다. 

청춘남녀들을 한 명씩 방에 들여보냅니다. 거기에는 제법 많은 사진들이 걸려있는데 모두 다른 이성(異性)의 얼굴들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호감 가는 1명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형제건, 자매건 이상하게도 들어가자마자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단 한 개의 사진을 순식간에 찾아냅니다.  

그들은 그 사진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남자(여자)가 제일 맘에 드네요. 너무 끌리고, 매력이 있어 보여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요.” 

진행자는 그에게 사진의 뒷면을 확인해보라고 말합니다. 모두들 사진의 뒷면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거기에는 바로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그 사진은 자신의 모습 몇 부분만을 고쳐 만들어낸 가상의 사진이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모든 남성들이 자신을 닮은 여성에게 끌렸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모든 여성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합성해 만든 남성을 선택한 것이죠.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지요.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모든 하나님의 법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안성국 익산 평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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