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사이드 반칙 - 겨자씨오프사이드 반칙 - 겨자씨

Posted at 2018.07.13 08:2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2002 한일월드컵 때 독일의 대문호 귄터 그라스가 발표한 축시 ‘밤의 경기장’입니다. 축구공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꽉 찬 관중석. 꽉 찬 인생.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속에도 인생은 언제나 단독자(單獨者).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습니다. 골키퍼와 일대일, 골을 넣어서 영웅이 될 수 있는 숨 막히는 상황. 그때 심판의 호각이 울립니다. “오프사이드!” 순간,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 됩니다.

때로 우리는 환호하는 관중과 골을 넣어 성공하겠다는 열망 속에 심판의 선언이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영적인 오프사이드가 됩니다. 하나님은 광야 속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들보다 앞서가면 방향을 상실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용사 조지 뮐러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 성령보다 앞서지 말자!”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심판이신 하나님의 호각이 울립니다. ‘오프사이드!’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957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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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의 원리 - 겨자씨창조성의 원리 - 겨자씨

Posted at 2018.07.12 11:2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성’입니다. 틀에 갇힌 생각, 과거에 매인 방식이 아니라 누구도 가 보지 않은 창조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창조적인 삶을 살았던 대표적 인물로 다니엘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철의 권력을 누리던 느부갓네살 왕에게조차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거룩한 영의 사람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창조적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창조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는 거룩했습니다.(단 1:8)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품고 세상과 구별되게 산 것입니다. 그는 충실했습니다.(단 6:4)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든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단 6:10)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창조성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오늘 하루 주어진 일들을 거룩하고 충실하게 기도하며 감당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우리는 창조성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893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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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 '나' - 백소영 교수하나님 안에서 '나' - 백소영 교수

Posted at 2018.07.11 11:2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오늘도 내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이유 백소영 교수의 크리스천 문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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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생의 최고의 선택 - 겨자씨마지막 인생의 최고의 선택 - 겨자씨

Posted at 2018.07.11 11:2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아흔 살 할머니가 병실에서 “이제 나는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할머니는 더는 병실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난감해하는 의사에게 아들이 말했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날 겁니다.”

노마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마지막 1년을 여행하며 보냈습니다. 그의 사후에 ‘드라이빙 미스 노마’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그 책에는 질병의 고통이나 죽음의 두려움을 쓰지 않았습니다. 마치 젊은 시절처럼 멋지게 파마를 한 할머니가 애완견을 데리고 낯선 세계를 흥미롭게 다니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행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28세 때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까 생각했습니다. 사형장의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데 2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 2분, 나머지 1분은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인생에는 정한 날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때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최고의 선택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자신을 돌이켜 볼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해야 합니다.(전 12:7)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8239&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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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분명한 인생 - 겨자씨목표가 분명한 인생 - 겨자씨

Posted at 2018.07.10 10:2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의 매슈 에먼스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는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2위와 격차가 한참 벌어져 과녁을 맞히기만 해도 무조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에먼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과녁을 겨냥한 다음 격발했습니다. 총알은 과녁 정중앙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과녁을 맞혔다는 효과음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맞힌 과녁은 다른 선수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다 잡은 금메달을 놓치고 8위로 떨어졌습니다.

에먼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마지막 순간 실수를 했습니다.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아홉 발까지 선두로 나서다가 최종 한 발에서 결정적 실수로 4위로 추락했습니다. 그의 사격 솜씨는 대단했으나 목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문제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불운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체코 여자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을 딴 카트리나로부터 위로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2007년 결혼했습니다. 사격대회의 과녁은 잘 맞히지 못했지만 큐피드의 화살만큼은 제대로 맞힌 셈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인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녁을 향해 총을 쏘듯 집중력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751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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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서’ 기도에 대한 단상 - 겨자씨‘주소서’ 기도에 대한 단상 - 겨자씨

Posted at 2018.07.09 09:4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존 달림플이 쓴 ‘단순한 기도’를 보면 기도의 형태를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원의 기도’ ‘감사의 기도’ ‘회개의 기도’ ‘찬양의 기도’ 등입니다. 사실 이런 정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청원의 기도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뜻합니다.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표현하는 기도이죠. 회개의 기도란 우리의 삶과 행실 가운데서 주님 앞에 죄지은 것과 연약한 것을 아뢰고 참회하는 기도입니다. 찬양의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위와 존재, 이름을 높여드리고 경배하는 기도이지요.

나름대로 기도의 구력이 갖춰지고 신앙의 연륜을 얻으면 청원의 기도보다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곤 합니다. 그런데 이게 딜레마입니다. 아무리 ‘주소서’ 기도를 하지 않는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려 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달림플은 이 갈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청원이 곧 기도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청원의 제목들이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느끼고 이를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달라는 위탁인 것이지요.

‘주님 들어주세요’ ‘해결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뭘 들어 달라는 것인지, 왜 해결해 달라는 것인지, 누구를 위해 달라는 것인지를 점검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7009&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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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힘 - 겨자씨다시 일어서는 힘 - 겨자씨

Posted at 2018.07.06 11:2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유리창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져 버리고 진흙은 바닥에 달라붙어 버립니다. 그러나 공은 상쾌하게 튀어 올라 더 높이 날아갑니다. 튀어 오르는 공과 같은 힘을 ‘회복탄력성’ ‘역경 지수’라고 합니다. 폴 스톨츠는 그의 명저 ‘위기대처능력 AQ’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회복하는 힘을 의미하는 ‘역경지수 AQ’에 대해 말합니다.

급변하고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지능지수 IQ, 감성지수 EQ, 관계지수 NQ만으로 승리를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일어서는 힘 역경지수 AQ가 더욱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성경의 그 어떤 믿음의 영웅들도 넘어짐이 없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엘리야와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베드로도 그러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산악인의 진가는 야산에서가 아니라 험한 산을 오를 때 나타납니다. 뱃사공의 진가는 풍랑이 불 때 나타납니다. 믿음의 진가는 환난과 시련, 도전을 받을 때 나타납니다. 결정적인 순간 더욱 부르짖어 기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힘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곱 번, 아니 일흔 번이라도 다시 일으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6319&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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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털이 중요하다 - 겨자씨멘털이 중요하다 - 겨자씨

Posted at 2018.07.03 11:0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영표 형제가 최근 ‘생각이 내가 된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는 멘털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축구 선수에게 멘털이란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 섰을 때나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를 앞두고 밀려오는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경기장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등이 모두 멘털에 속한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하나같이 멘털을 언급하는 이유도 박빙의 경기에서 경기 결과를 바꾸는 가장 큰 힘이 기술이나 전술이 아니라 바로 멘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월드컵 독일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멘털이 아주 강했습니다. 강한 자 앞에 섰으나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혹독한 비난이 있었지만 묵묵히 이겨냈습니다. 축구뿐만이 아닙니다. 인생에도 강한 멘털이 필요합니다. 내 능력보다 강한 문제 앞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약한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실패했을 때 쏟아지는 비난을 묵묵히 이겨내는 것, 폭발하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것, 이런 멘털이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멘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을 때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공예배, 성경말씀 읽기와 기도를 통해 우리의 멘털을 강하게 하십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415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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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토끼와 거북이 - 겨자씨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토끼와 거북이 - 겨자씨

Posted at 2018.07.02 10:3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이런 상상을 해 봤습니다. 하루는 교회를 잘 다니던 토끼 성도와 거북이 성도가 만나 달리기 논쟁을 했었더랍니다. 서로 자기가 빠르다고 주장한 것이죠. 팽팽하게 맞서다 도저히 말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둘은 경주를 통해 누가 빠른지 결판을 내기로 했죠.

토끼 성도에게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빠른 발을 주셨지요. 하지만 거북이 성도는 그런 재능이 없었습니다. 달리기에 적합한 달란트가 없었죠. 거기에다 토끼 성도에게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도 있었습니다. 자신과 거북이의 속도 차이를 정확히 알았고 추월할 수 있는 거북이와의 거리를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거북이 성도에게는 그런 판단력과 지혜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토끼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승부의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갑니다. 결국 결승점에서 웃은 건 토끼가 아니라 거북이였습니다. 성경적인 결말입니다. 능력과 달란트, 게다가 지혜가 넘친다고 승리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전 9:11)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361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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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 겨자씨“절대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 겨자씨

Posted at 2018.06.30 11:1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지난 27일 러시아 월드컵 조별 예선, 우리나라가 피파 랭킹 1위 독일을 두 점 차로 꺾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다시 느꼈습니다. 독일을 이길 수 있었던 데는 선수들의 정신무장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주장 손흥민 선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이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살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는 날, 주님이 예비한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돌아간다면 여러분은 만족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부끄럽습니까. 진지하게 내 신앙의 현 주소를 생각해봅시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다짐으로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경기 내내 쉬지 않고 뛰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향하는 믿음 말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천국의 소망과 포기하지 않는 사랑 등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께 돌아갈지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다짐했다면 그걸 붙잡고 오늘 하루를 살아봅시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343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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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 할 길 - 겨자씨우리가 가야 할 길 - 겨자씨

Posted at 2018.06.28 09:59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요즘 부쩍 제게 길을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인생길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제게 이것저것 묻는 것이지요.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합니다. 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인생길을 가야 할까.

인생은 독행도(獨行道)입니다. 홀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독립심입니다. 인생은 동행도(同行道)입니다. 함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협동심을 익혀야 합니다. 인생은 고행도(苦行道)입니다. 고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이길 강건함을 길러야 합니다. 인생은 소명도(召命道)입니다.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만의 소명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인생은 신행도(神行道)입니다. 내 힘만으론 도저히 독행도 동행도 고행도 소명도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할 때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혹 지금 당신이 인생의 길을 잃었거나 그 걸음이 더뎌 답답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신행도, 곧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걷는다면 그곳이 어디든 길은 열릴 것입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2055&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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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제주에 부흥을 주소서 - 겨자씨주여, 제주에 부흥을 주소서 - 겨자씨

Posted at 2018.06.26 07:3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박용규 총신대 교수의 ‘제주 기독교회사’를 보면 제주가 한국에서 얼마나 천대받던 곳인지 알 수 있다. 그곳은 왜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한 세기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정치범들의 마지막 유배지였으며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학정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우상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 제주에 이기풍 선교사가 발을 디딘 지 110주년이 됐다. 그는 1907년 9월 열린 제1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의 결정에 따라 이듬해 1월 평양신학교 동기생인 길선주의 집례로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렸다.

그해 3월 제주에 부임한 이기풍은 1915년까지 7년간 생명을 다해 섬겼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최선을 다했다. 아쉽게도 복음화율은 선교지 수준인 9%에 머물고 있다. 제주의 열악한 영적 환경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제주의 450여 교회가 오늘부터 이 한계를 뛰어넘고자 ‘엑스플로 2018 제주선교대회’를 개최한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는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함께 동역한다.

이 한 주간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제주도민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임하길 기도하자.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부흥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제주에 가득하도록 간구하자. 제주에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길 기도하자. ‘주여, 제주에 부흥을 주옵소서.’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0569&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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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우주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 겨자씨광대한 우주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 겨자씨

Posted at 2018.06.25 11:3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태양계에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8개의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천문학자들이 태양계 안에서 카론 세레스 제나와 같은 왜행성을 추가로 발견했다더군요.

우리는 우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우주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우주의 반경은 약 47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빛이 1초에 30만㎞를 날아가는데 그 속도로 470억년 걸린다는 말입니다. 실로 엄청난 크기입니다. 현대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주엔 1000억개의 은하계가 존재하고 각 은하계마다 태양과 같은 빛을 내는 항성이 약 1000억개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주에 존재하는 태양계 같은 행성계의 숫자는 약 10의 22승입니다.

우리는 그중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지구 바로 옆에 있는 화성에도 가본 일 없는 인간이 어찌 우주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우주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은총을 고백하게 합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4∼27)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70254&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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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겨자씨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겨자씨

Posted at 2018.06.23 10:4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디테일의 악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최근 남북 및 북·미 관계에 있어 큰 틀에서는 합의가 되었지만, 작은 합의 과정에서 일이 틀어질 수 있기에 세밀하게 챙겨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에서 파생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협상 격언이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의 유명 경영컨설턴트이자 학자인 왕중추는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말단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른 그는 경쟁력의 관건이 작고 사소한 디테일에 있다고 말합니다. 큰일을 망치는 것은 엄청난 실수가 아니라 아주 작은 흠집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보면, 성공 역시 한 방이 아니라 작은 디테일이 모여 이루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마 25:23) 적은 일의 경험이 큰일도 맡을 수 있는 길로 이어집니다. 작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악마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의 태도가 인생의 지혜인 듯합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69417&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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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 - 겨자씨미안하다는 말 - 겨자씨

Posted at 2018.06.22 07:5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1970년대 감성적인 로맨스 소설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 한 말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입니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네스북에 최장수 부부로 기록된 영국 애로 스미스 부부의 행복한 금실의 비결은 ‘미안해’라는 말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할 때,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큰 회복과 치유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론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는 말이 ‘미안해’라는 말입니다. ‘길이 막혔다’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바빴어’라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땐 미성숙했다고, 유치했다고 하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더 미안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悔改)는 열매가 필요합니다. 뉘우치기만 하면 ‘회(悔)’입니다. 돌이키기까지 할 때 ‘개(改)’가 합쳐져 비로소 온전한 회개가 됩니다. 이름다운 신앙인은 완벽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성령님의 도움으로 죄성을 벗고, 주님의 길로 돌이키는 회개의 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68820&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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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임을 안다는 것 - 겨자씨죄인임을 안다는 것 - 겨자씨

Posted at 2018.06.21 10:2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독일 작가 레마르크의 소설을 영화화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실감나게 그려낸 반전영화이지요. 적군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한 병사가 상대를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친구여, 나는 그대들을 죽이고 싶지 않소.… 우리는 함께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아니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적일 수 있단 말이오. 우리는 인간이오. 우리는 서로 불쌍한 인간이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죄인이오.”

그의 절규에 상대 병사도 적의를 상실했고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상대가 한 인간임을, 그저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일 뿐임을 깨닫고 서로 용서하며 품어준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즉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요 불쌍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진정 나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할 수 있다면 진정 상대가 죄인임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길 수만 있다면 이 땅의 모든 갈등과 다툼은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만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나 위인이나 성자가 존재함을 믿지 않는다. 이 땅에는 오직 한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다 죄인이다.”(블레즈 파스칼)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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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유일한 슬픔 - 겨자씨소녀의 유일한 슬픔 - 겨자씨

Posted at 2018.06.19 09:5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유관순 열사(1902∼1920)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성도였던 할아버지 유윤기로 인해 기독교 가정이 됐고 유관순도 자연스럽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1918년 3월 18일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1일 고등과 1학년에 진학했습니다. 미션스쿨의 나라사랑기도회와 애국운동은 열사의 마음에 애국심을 불어넣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학생들의 시위가 극심해지자 일제는 3월 10일 전국적으로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유관순 열사도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기차에서 친구들이 기차 소리가 “‘동전 한 푼, 동전 한 푼’ 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자 유관순이 “‘대한 독립, 대한 독립’ 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천안으로 돌아와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됐습니다.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옥중에서 갖고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심한 고문과 영양실조로 순국했습니다.

유관순의 유언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빼앗긴 고통만큼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18세 나이에 나라를 사랑한 유관순, 요즘 우리는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지 않는가요.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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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겨자씨대화 - 겨자씨

Posted at 2018.06.15 08:1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침묵은 금이지만 대화는 다이아몬드입니다. 행복을 위해선 기적보다도 대화가 더 필요합니다. 래리 킹은 25년 이상 토크쇼를 진행하며 하나님 빼고 다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의 제왕’ ‘대화의 신’이라 불렸던 그는 대화의 중요한 기본을 진실과 공감, 경청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라. 말은 그 다음이다.” 래리 킹의 말입니다.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말이 어눌해도 진실이 담겨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대화는 공감과 경청입니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공감을 느낄 때 비로소 빗장을 풀고 마음의 지성소에 같이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대화의 왕이셨습니다. 그는 인간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성육신하여 낮아지시며 이 땅에 오셨습니다. 대화는 진실한 사랑과 공감을 의미합니다. 삭개오의 들리지 않은 고독의 외침,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의 아픔, 니고데모의 고뇌, 혈루병 앓는 여인의 작은 신음까지 경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진실 공감 경청의 대화는 떨림과 열림, 울림이 되어 사람들을 살려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대화의 장으로 초대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죄성 가득한 우리 인간이 대화할 수 있다는 이 특권이 좋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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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 겨자씨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 겨자씨

Posted at 2018.06.14 09:3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리는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당시 러시아를 뒤덮었던 유혈사태와 폭력혁명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50년간 혁명사를 연구하는데 몰두했습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백 명의 증언을 수집해 8권의 책을 냈습니다. 만일 그런 제게 6000만명을 학살한 파괴적 혁명의 주요 원인을 말해보라 한다면,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거다. 그래서 이런 재난이 일어난 거다.’”

평화에 대한 이런저런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평화는 사람들의 합의나 회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뒤틀림을 바로하고, 죄로 무너진 인생을 회복할 진정한 평화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찬 412장) 그동안 이 땅에 재난과 전쟁의 위협이 가득했던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잊고 살아가니 평화 또한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온유와 겸손으로 서로 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때 우리 안에 위로부터 내리는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레 26:6)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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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법칙 ‘최상의 차선’ - 겨자씨협상의 법칙 ‘최상의 차선’ - 겨자씨

Posted at 2018.06.08 07:47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배트나’란 협상에서 실패했을 때 가지고 있는 차선책, 즉 최선의 대안을 의미한다. 사실 협상은 최선의 대안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인 것이다.”

제가 쓴 ‘인문학을 하나님께’(규장, 16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협상의 법칙은 최상의 차선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차선은 최선의 적이다”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최선의 이삭을 기다리지 못하고, 차선으로 이스마엘을 낳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는 차선이라기보다 미봉책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최선이 있을 때는 차선은 차선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성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더군다나 협상할 때는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서로의 입장 차이로 ‘최상의 차선’을 찾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최선의 삶을 살지 못한 탕자에게 ‘너는 품꾼이 아니라 여전히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시며 다시금 새 힘을 주십니다. 실패가 곧 끝이 아니듯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 있습니다. 평범도 지극하면 비범이 됩니다. 차선도 지극하면 최상이 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4)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6158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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