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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564

영적위치에너지와 자녀의 권세 - 겨자씨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 애벌레 기둥이 나옵니다. 애벌레들이 높은 곳을 향해 끝없이 서로 밟고 올라가며 만든 것입니다. 주인공 줄무늬 애벌레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둥 끝에 다다르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노랑 애벌레의 도움으로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오르는 나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높이가 주는 힘을 위치에너지라고 합니다. 같은 물이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엄청난 힘을 지녔습니다. 그 힘으로 물레방아를 돌려 곡식을 빻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힘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높은 곳을 향해 끝없이 올라갑니다. 그 위치에너지로 권력을 갖고 재물과 명성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높은 곳은 바로 하나님 자녀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이..

복음 전파의 사명 -겨자씨

이웃교회 목사님의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들려줬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우리 가족들 중 불가피하게 한 사람씩 포기해야 한다면 누구부터 포기할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명의 동생 대신 자신을 먼저 포기하겠다고 했답니다. 참 기특한 마음을 가진 아이입니다. 두 번째는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강하니까 내가 포기해도 잘 살아가실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그 다음은 얄미운 남동생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제 사이좋은 여동생과 무뚝뚝한 아빠가 남았습니다. 이쯤 듣다보니 아빠의 마음도 두근거렸다고 합니다. 과연 딸아이는 누구를 포기하고 누구를 마지막까지 남겼을까요. 딸은 사이좋은 여동생을 먼저 포기하고 아빠를 마지막까지 남겼습니다. 이유가 걸작입니다. ..

달과 별이 함께 있는 이유 - 겨자씨

큰딸 소리(笑里)가 아주 어렸을 적, 둘이서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로 내려오는 시간, 막 땅거미가 깔리며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던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 해는 환한 데 있으니까 혼자 있어도 괜찮지만, 달은 캄캄한 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 봐 별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먹물처럼 어둠이 번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늘에 돋아나는 달과 별을 보면서 어린 딸은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딸의 말을 듣고 창밖을 내다보니 쪽배를 닮은 초승달과 그 옆에 환한 별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달과 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어린 딸의 마음이 예뻐 한껏 인정을 했습니다. “그래, 그렇겠구나. 네 말이 꼭 맞겠구나.” 소리는 졸음에 겨워 아빠 무릎을 베..

마구간 성탄 - 겨자씨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 사건을 특별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왕이 될 인물의 비천한 출생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로마의 설립자 로물루스는 바구니에 담겨 티그리스강에 버려졌습니다. 강을 따라 흘러가다 팔라티노 부근 언덕에 걸려 멈춘 것을 늑대가 물어다 젖을 먹였습니다. 페르시아 고레스 대왕도 버려진 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구간이 ‘왕’이신 예수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였기 때문입니다. 세상 영웅들은 비루한 곳에서 시작할지라도 화려한 왕궁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의 삶은 마구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구간부터 광야, 빈들, 선상, 동굴, 가난한 자들의 집을 거쳐 십자가에서 삶을 마칠 때까지 한순간도 예외 없는 낮아짐의 연속이었습니..

내 인생의 로마 - 겨자씨

이탈리아 로마 아우렐리아 성벽의 성문을 빠져나가면 작은 건물과 만난다. 쿼바디스도미네 교회다. 교회 안에선 예수님의 발자국을 볼 수 있는데 로마를 향하고 있다. 그곳에 사도 베드로의 발자국이 있었다면 예수님과는 정반대 쪽을 향했을 것이다. 네로 황제 때 핍박이 심해지자 성도들은 베드로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 양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베드로의 결정은 예수님과 달랐다. 이때 베드로는 운명적 질문을 던졌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네가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간다.” 이 대답을 듣고 베드로는 로마로 향했다. 미국에 있을 때 혼란과 혼돈 속에서 운명적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주여, 제 인생의 로마는 어디입니까?” “첫 번째 것은 내 생각이지만 두 번째 ..

함박과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 - 겨자씨

올해 첫눈은 함박눈이었습니다. ‘함박’은 함지박을 줄인 말로 바가지의 일종입니다. 바가지는 박에 작은 것을 뜻하는 접미사 ‘아지’를 붙인 말입니다. 박을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낸 다음 삶고 말려서 만들었습니다. 큰 것은 물바가지로, 중간 것은 쌀바가지로, 작은 것은 장독에서 장을 뜨는 장바가지로 썼습니다. 작은 바가지는 표주박이라고 하며 호리병 모양의 조롱박으로 만들었습니다. 박으로 만들 수 없는 아주 큰 바가지는 통나무 안을 파내 만들었고 이를 함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함박은 함박눈, 함박꽃, 함박웃음처럼 넉넉하고 풍성한 것을 의미하는 수식어가 됐습니다. 함박은 음식을 담아두거나 떡을 반죽할 때, 음식을 담아 손님상에 내갈 때도 사용했습니다. 가축의 먹이를 담아주는 구유로도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마중과 반보기 -겨자씨

오는 사람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나가서 맞이하는 것을 ‘마중’이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면 들뜬 마음으로 마중을 나갑니다. 어릴 적엔 퇴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기차역으로 달려 나가고는 했지요. 지금까지 가장 멀리 나간 마중은 언제였는지요. 외국에 다녀오는 가족을 위해 공항으로 나가거나 군에 간 아들이 첫 휴가를 받았을 때 집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부대 정문까지 달려간 마중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보기’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시집 간 딸과 친정의 모친이나 가족이 양가 마을의 중간쯤에서 만나 그리움과 정담을 나누는 풍습이었습니다. 친정으로 가지 않아 시댁 가사에 큰 지장을 주지 않고 친정에 드릴 정받이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며 당일로 다녀올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한 풍속으로 이용됐지요. 요즘 세..

신의 무릎 - 겨자씨

10대 후반이었던 1983년 처음 영국에 갔습니다. 랭귀지 스쿨에 다니며 하숙을 했습니다. 영어와 보수적 문화가 목을 죄는 듯했습니다. 하숙집 주인은 요구가 많았습니다. 저녁은 5시30분, 안 먹으려면 하루 전에 알려 주고 그릇은 항상 개수대에 놓으라 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저녁을 먹든 안 먹든 값은 한국의 아버지가 지불한 것이고 하숙비를 냈으니 그만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주인아주머니가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빠가 있는데 다리 하나를 잃었어. 참전했다가 부상당했지. 그때 오빠 나이가 너와 비슷해.” “어떤 전쟁이었죠?” “한국전쟁.” 순간 저는 벌떡 일어나 90도로 절했고 뭐든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일찍 귀가했고 방 청소와 빨래도 스스로 했습니다. 언젠간 그 희생에 보답하겠다고 ..

길을 잃어버렸을 때 - 겨자씨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두운 광야에서 홀로 모래바람을 맞으며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몰라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습니다. 이 꿈처럼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묻는 때가 있습니다. 진로 결정을 앞둔 청년, 은퇴를 앞둔 직장인,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들이 이런 질문을 만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잘 살아왔나’ ‘어디로 가야하나’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 바로 하나님의 초대장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인생에 동행하기 위해 새로운 대화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 속에서, 첩첩이 쌓인 일 가운데, 분주함 속에 살아갈 때 확실한 길을 간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그때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할 일이 없어지고, 공허함을 느낄 때 ..

아인슈타인 방정식과 겨자씨만 한 믿음 - 겨자씨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출연한 물리학자가 “야구공을 빛의 속도로 던지면 어떻게 될까” 질문했습니다. 그가 들려준 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야구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핵폭발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야구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일어나는 질량의 변화가 에너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²’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질량 단위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하면 에너지 단위와 같아지는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질량은 아주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0만 아니면 됩니다. 질량에 곱해지는 빛의 속도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양으로도 산을 날려버릴 수 있는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믿음의 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믿음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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