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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824

아름답습니다 - 겨자씨

창세기 말씀을 묵상하다가 ‘종류대로’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2) 하나님께서는 종류대로 지어 놓으시고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셨습니다. 물로 세계를 심판하실 때에도 노아를 통해 창조의 세계를 유지하셨습니다.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창 6:20) ‘종류대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시기에 좋아하셨고 훼손되지 않도록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 개인’이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엄마는 엄마다울 ..

그저 봄만 그려라 - 겨자씨

“봄을 그리려 함에 버드나무나 복숭아꽃이나 살구꽃을 그리지 말지니. 그저 봄만 그려라.” 일본의 전통적 단시(短詩) 하이쿠 시인들 사이에서 명제 같은 글귀입니다. 봄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고 가정해 봅시다. ‘봄’ 하면 떠오르는 것이 개나리 진달래 철쭉 등 봄꽃이나 나무 등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짝만 자유로이 생각하면 어머니와 그리움이 떠오를 수도 있고 엉뚱하게 딸기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그리라는 것입니다. 뻔한 지엽을 그리지 말고 근본을 그리라는 말이고 자신의 심상을 자유로이 그리라는 것입니다. 상상은 현실보다 강합니다. 상상이 모든 발명의 시작입니다. 지금의 이기(利器)들은 과거에 그것을 상상했던 사람들의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물 하나로 비와 구름과 안개와 시냇물과 바다와 얼음과..

차고 넘치는 풍성한 인생 - 겨자씨

인생을 사는 이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곧 쥐어짜는 사람과 흘러넘치는 사람입니다. 쥐어짜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마치 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마른 행주를 쥐어짜듯 힘겹게 살아갑니다. 제힘으로 살아보려니 하루하루 쥐어짜듯 허덕이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흘러넘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내면에 하나님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언제나 평안과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은혜가 흘러넘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당시 교회개혁의 지난함을 걱정하던 동역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언제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상황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개미귀신과 우화등선 - 겨자씨

명주잠자리는 비단날개를 가진 멋진 곤충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잠자리의 유충을 개미귀신이라고 부릅니다. 개미귀신은 모래밭에 고깔 모양으로 된 함정, 이름도 무시무시한 개미지옥을 만들어놓고 먹이를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개미 같은 작은 곤충이 빠지면 큰 턱으로 잡아서 땅 속으로 끌고 들어가 체액을 빨아먹습니다. 자연세계에서는 당연한 행동이겠지만 장려할 만한 삶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미귀신이 성장하면 허물을 벗고 명주잠자리가 됩니다. 벌레가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잠자리로 우화(羽化)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기를 잡아먹는 유익한 곤충으로 탈바꿈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일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땅에서 살던 인생이 하늘의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

묘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 겨자씨

미국 어느 묘지에 이런 문구가 써 있다고 합니다. “부지런한 내 딸 여기에 잠들다. 부활의 때에도 제일 먼저 일어날 것이다.” 이런 문구도 있다고 합니다. “참 말 많던 아내 드디어 입을 다물다.” “사랑하는 내 아내 여기에 잠들다. 제발 아내를 깨우지 말아다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나드 쇼는 1950년 94세 때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말을 묘비에 새겨달라고 했습니다. ‘내 오래 살다가 결국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인데,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지나치게 의역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니 “오직 한번뿐인 인생 속..

어색한 신토불이(身土不二) - 겨자씨

숫자를 막 배우던 어린 시절, 퍽 배우기 힘들었던 것이 세 자리마다 찍던 콤마(comma)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1,000’을 만으로 읽고 ‘10,000’을 10만으로 읽는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의 숫자 단위는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조-경입니다. 네 자리 숫자인 만 단위마다 그 이름을 달리합니다. 만이 백 개면 백만, 천개면 천만이지만 만이 만개가 되면 만만이라 하지 않고 새로운 단위 ‘억’이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억이 만개면 만억이 아니라 ‘조’가 되고 조가 만개면 ‘경’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초등학교 시절 십만을 ‘10,0000’으로, 1억을 ‘1,0000,0000’으로 쓰면 편리하겠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왜 누가 말도 안 되게 세자리마다 콤마를 찍은 것일까요. 영어를..

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 겨자씨

얼마 전 데스밸리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라는 뜻의 미국 국립공원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두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두 곳은 여러 가지 대조되는 점이 많습니다. 데스밸리는 거의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도 구하기 어렵고 호텔도 몇 개 없고, 여행객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는 모든 것이 풍요롭습니다. 음식도 풍성하고 호텔도 많습니다. 휘황찬란한 카지노와 놀이시설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다양한 박람회도 열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 둘 중에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가 더 좋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곳은 하나님께 가까워지기 어려운..

원수와 웬수 - 겨자씨

부부가 한 팀이 돼 단어 맞추기를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시골의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출연했습니다. 출제 단어는 ‘천생연분’. 할아버지가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알아차리지 못하자 답답한 할아버지는 “당신과 나 사이”하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끄떡이며 대답합니다. “웬수.” 황당한 할아버지는 소리칩니다. “네 글자로….” 그러자 할머니 왈, “평생 웬수!” ‘원수와 웬수의 차이점’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원수는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고, 웬수는 같이 살아야 되는 사람이랍니다. 원수는 어느 기간 동안 버티면 되니까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웬수는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라 더 힘들다는 겁니다. 사람은 원수와 웬수로 인해 겸손해지고 성숙하게 됩니다. 가시 같은 원수 때문에 ..

주님은 살아계시니 - 겨자씨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부활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을 봅니다. 보지 못한 것은 전부 다 믿을 수 없다는 무지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부활은 단지 역사적 사건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나의 사건 나의 경험으로, 곧 매일의 일상에서 임마누엘 주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 방황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그는 로마 교외의 한 빈민촌에 머물며 아침마다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모두 다 피곤한 얼굴, 잿빛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만은 일터로 나가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 희망찬 모습..

곡학아세(曲學阿世) - 겨자씨

‘곡학아세’란 중국의 역사서 ‘사기’의 유림열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원고생은 제나라 사람으로 시경에 정통해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노자의 글을 좋아하던 태후가 그를 불러 노자의 글에 대해 물었습니다. 원고생은 태후 앞이어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노자의 말은 하인들의 말에 불과합니다.” 원고생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원고생과 공손홍이 함께 황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공손홍은 나이가 많은 원고생을 권력욕이 많다고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원고생이 점잖게 공손홍에게 말했습니다. “공손자여, 힘써 학문을 바르게 하여 세상에 옳은 말을 하고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여기에서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하는 곡학아세가 유래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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