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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824

똑같은 곳에서 다른 마음으로 - 겨자씨

저는 카페에서 1주일 내내 일을 하는 편입니다. 외부 집회 사역이 없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카페에서 글을 씁니다. 글을 쓰든 쓰지 않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무조건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카페는 제게 일터이고 회사입니다. 그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카페를 찾아 전전합니다. 나름 새로움을 찾지만 창밖의 전경과 상관없이 저에게 카페는 언제나 노트북을 놓는 책상과 조금 나은 커피가 있는 사무실일 뿐입니다. 어느 눈 오는 날 새로운 카페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는 허름한 모습의 생뚱맞은 소파 하나가 있었습니다. 어색하게 따로 놓인 소파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지나다 문득 그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마치 펜션에 온 것처럼, 여행 온 것처럼 평안이..

주님께 맡겨라 - 겨자씨

우리 모두는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과거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과거와 맞닿아 있죠. 그리고 미래가 다가옵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고 현재는 긴장감을 주며 미래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줍니다.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과거는 주님의 자비에 맡기고 현재는 주님의 사랑에 맡기고 미래는 주님의 섭리에 맡겨라.” 우리가 시간을 바르게 사용하고 시간 속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됩니다. 지나간 시간의 아픔과 연약함은 모두 주님의 자비에 맡기십시오. 주님이 모두 용서하시고 우리를 이끄십니다. 현재의 시간..

속이 비면 - 겨자씨

자루라는 말에는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연장의 손잡이를 말할 때는 낫자루, 도낏자루, 호밋자루 등으로 쓰이지요. 물건을 세는 단위이기도 해서 권총 한 자루 혹은 연필 두 자루와 같이 쓰입니다. 여러 가지 물건을 담을 수 있게 헝겊 따위로 만든 크고 길쭉한 주머니를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 속담 중에 ‘속 빈 자루는 곧게 설 수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불가능한 것 중 하나는 속 빈 자루를 곧게 세우는 일입니다. 자루는 저 스스로는 힘이 없어 무엇인가로 채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습니다. 잠깐 서는 듯해도 이내 스스로 주저앉고 말지요.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 아마도 이 속담은 먹는 것과 관련해 ‘굶주린 사람은 체면을 차리고 올바로 살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

자녀는 별이다 - 겨자씨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인간으로서 한계를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나의 방식과 다른 자녀를 바라보면서 대다수 부모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고 때로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 가며 우리는 진짜 하나님의 선물로서 가족을 만들어 갑니다. 자녀는 별과 같습니다. 각각의 별은 저마다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별은 보라색, 어떤 별은 초록색, 또 어떤 별은 흑색. 그래서 “너는 왜 다른 별에는 없는 띠를 갖고 있니” “너는 왜 그렇게 여러 가지 색이니” “너는 왜 심지어 색이 변하니” “너는 왜 그렇게 작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별은 또 자신만의 궤도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너는 왜 그렇게 좁게 도니” “너는 왜 그렇게 멀리 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궤도로 자신을 증..

클리셰와 이슬 같은 은혜 - 겨자씨

클리셰는 영화에서 진부한 장면이나 상투적인 줄거리, 전형적인 기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래 클리셰는 활자를 끼워 넣는 인쇄판을 뜻합니다. 우리말에도 ‘판에 박은 말’은 진부한 표현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클리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클리셰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일상, 늘 똑같은 삶의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지루해하고 무의미하게 대하며 보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이슬처럼 날마다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슬은 우리가 늘 숨 쉬는 평범한 공기 속의 수분이 날마다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평범한 은혜이며 날마다 부어주시는 일상적인 은혜입니..

세 손가락 투수 - 겨자씨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 투수 모데카이 브라운을 아십니까. 그에게는 야구선수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농장에 갔다가 농기구에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죠. 결국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절단해야 했고 가운뎃손가락은 영구 골절됐습니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손가락이 사라진 셈이죠. 어릴 때부터 투수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마운드에 올라 피나는 연습으로 장애를 장점으로 승화했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도 강속구와 변화구를 던지게 된 것입니다. 자기만의 새로운 구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세 손가락만 사용해 공을 던져 ‘쓰리 핑거스 투수’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궤적을 ..

물구나무서기 - 겨자씨

지구상에서 최악의 조건을 가진 곳 중에 나미브 사막이 있습니다. 1년에 며칠 외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한낮 기온은 70도까지 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나미브’라는 말은 나마족 말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생각지 못한 동식물이 살아가는데 나미브 거저리도 그중 하나입니다. 거저리는 밤이 되면 사막의 모래언덕 꼭대기로 기어 올라갑니다. 그러고는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안개를 실은 바람이 불어오면 거저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그런 자세로 서면, 안갯속에 담긴 수분이 몸에 모입니다. 이 수분이 물방울로 흘러내리면 입으로 마실 수 있는 것이지요.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나미브 사막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

존재의 집 - 겨자씨

한 소년이 아버지 곁에서 숙제를 합니다. 작곡가인 아버지는 상상력이 고갈됐는지 도무지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연거푸 긴 한숨만 토해냅니다.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제가 한번 해볼게요.” 아버지는 오선지를 건네줍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제멋대로 그려진 엉망진창 악보를 보면서 격려합니다. “대단한 작품인 걸!” 몇 해 후 그 소년은 세계적인 작곡가가 됐습니다. 그가 바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지은 요한 슈트라우스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의 주택 속에서 인간이 산다.” 성경은 더욱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잠 11:11) 우리 몸은 콘크리트로 만든 외형의 집에서 살아갑니다. 그..

몇 바퀴 남았나요 - 겨자씨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국가대표 여자선수들의 쇼트트랙 계주 예선을 기억하시나요. 처음엔 속도조절을 하면서 잘 탔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선수가 그만 넘어졌습니다. 쇼트트랙 경기에서 넘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한 바퀴 정도가 차이가 나고 순위는 그대로 꼴찌로 이어집니다. 절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갑자기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력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더니 한 팀, 두 팀 따라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모든 팀을 추월해 1등으로 골인했습니다. 올림픽 신기록까지 수립했습니다. 넘어졌을 때 이미 거기서 끝난 게임인데 우리 선수들은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 겁니다. 선수들은 23바퀴를 남..

‘투 머치’가 나를 망하게 합니다 - 겨자씨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엿새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처리해야 할 ‘너무 많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 삶이 망가지는 것은 내 역량을 넘어 너무 많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체력을 넘어서는 많은 일, 내 영성을, 내 시간을, 내 정신적 여력을 넘어서는 많은 일, 내 재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많은 일, 일, 일 또 일. 과연 많은 일을 해서 더 많은 재력을, 더 많은 능력을, 더 많은 영성을 가지려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지금 내 체력, 내 영성, 내 시간, 내 마음, 내 정신, 내 재력에 맞게 일을 줄이는 게 맞을까요. 여력을 갖기 위해 현재의 모든 여력이 다 닳아 없어지게 하는 삶은 언제 끝날까요. 지금으론 부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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