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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824

믿음의 그랭이질 - 겨자씨

옛 시절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워야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주춧돌은 생긴 그대로의 펑퍼짐한 돌을 구해 사용했습니다. 얼핏 주춧돌은 바닥이 반반해야만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한 상태로도 기둥을 세우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그랭이질 때문이었습니다.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며 돌을 깎아내는 대신 선택한 것이 있습니다. 주춧돌의 높낮이를 따라 나무 기둥의 밑동을 깎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그랭이질이라 불렀는데, 생각해보면 절묘한 이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돌과 나무를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로 이어주었으니 말이지요. 그랭이질이 제대로 된..

버려진 돌의 부활 - 겨자씨

한 여인이 물에 떠 있는 둥근 바위 같은 곳에 앉아 있습니다. 여인의 눈은 흰 천으로 가려졌고 몸은 한 줄밖에 남지 않은 수금 같은 악기에 간신히 기대고 있습니다. 그녀가 앉아 있는 곳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으니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아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무엇일까요. 영국의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1817~1904)의 ‘희망(Hope)’입니다. 희망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밝고 따뜻하고 행복한 곳에서 희망은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먹고 자라는 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습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22) 혹..

4분 18초 - 겨자씨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성회를 인도했습니다. 철저히 준비했고 컨디션도 좋았습니다. 설교가 절정을 향해 달려갈 때 갑자기 ‘펑’하며 전기가 나갔습니다. 암흑세계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웅성대고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들은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러시아어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복쉐마구쉬 나쇼미냐(전능한 하나님이 날 찾아주셨다)~” 마이크가 꺼졌으니 메가폰처럼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발을 구르며 찬양했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인들이 찬양을 따라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흑암 속에서 4분 18초 동안 찬양했는데 놀랍게도 다시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러시아인들은 함성을 지..

겟세마네인가 골고다인가 - 겨자씨

‘가짜 성도는 겟세마네까지는 가지만 골고다까진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의 말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진정한 고난의 길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기도만 하는 성도들을 빗대어 한 말일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겟세마네를 생각하며 특별새벽기도회 등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다 이 말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우리는 사순절, 특히 고난주간을 지내며 가능한 한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지니며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고난주간이 1년에 한 번 슬프게 지내는 시간일까요. 자칫 슬픈 시늉만 하다 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도 이와 비슷합니다. 죽은 척만 했지 제대로 죽고 제대로 부활하지 못한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기도하며 결단만 하고 행함의 고난은 치..

초코우유와 사랑 - 겨자씨

초등부 전도사님이 지난겨울 수련회 때 아이들에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초코우유를 샀는데 거기에 “항상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그 문구를 보며 “내가 이 초코우유에 무슨 사랑을 해줬지”라고 생각해봤답니다. 편의점에 갔는데 수많은 음료수 중 그 초코우유가 눈에 띄었답니다. 그걸 눈에 담았더니 사고 싶은 마음을 품게 돼 초코우유를 집어 들고 계산대에 가서 값을 치렀답니다. “아, 그게 사랑이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셨고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고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대가를 치러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 사랑을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구원받았고 지금도 수많은 은혜를 누리며 살아..

가장 위대한 경전, 사랑 - 겨자씨

그해 여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가 무섭게 왔고 턱에 차도록 막아두었던 충주댐의 수문을 열자 동네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강가 그 너른 밭과 논을 삼킨 물이 신작로를 지나 동네 앞까지 밀어닥쳤습니다. 벼가 익어가던 논에서 팔뚝만 한 잉어를 잡았으니, 한 해 농사를 망친 셈이었지요. 이야기를 들은 친구 목사가 동네 집집이 라면을 보내왔습니다. 라면은 친구가 목회하는 교회의 신혼부부가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홍수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한 다음 주일, 부부가 친구를 찾아와 무엇인가를 건네더랍니다. 결혼반지였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찌 그 반지를 받을 수 있겠냐며 사양했지만, 부부의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반지야 나중에 다시 마련할 수 있지만 도움은 당장 필요하지 않으냐고 했답니다. ..

부르심에 합당한 삶 - 겨자씨

한 장로님에게 명문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습니다. 결혼하고 싶습니다.”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사랑한다는 여인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시골에서 상경해 자기 집에 살면서 가사를 돕던, 학교 문턱도 가 보지 못한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기간을 정하고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묻습니다. “아직도 그 아이를 사랑하느냐.” “그렇습니다.” 장로님은 믿음으로 결혼을 허락하고 아들과 함께 그 여인에게 공부를 가르칩니다. 마침내 그 여인은 검정고시를 거쳐 명문대를 졸업해 많은 이에게 존경받는 자리까지 이릅니다. 여인은 장로님에게 선택받는 순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인생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성공이 자기 ..

봄보다 찬란한 당신 - 겨자씨

봄이 되면 자살률이 더 높아진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필 찬란한 봄, 생명이 시작되는 봄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아마도 상대적 빈곤감이 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오직 고통을 멈추겠다는 결단 말고는 아무것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을, 산 사람들이 제시하는 수많은 이유로는 설득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절벽 끝에서 설득당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 방법으로는 고통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살아있어야 하나님이 이 고통을 끝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

영적 교란 요소 - 겨자씨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동식물의 세계에도 여러 가지 교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순리대로 살지 못하는 생물이 많아졌습니다. 각종 오염과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 외래종 유입에 따른 먹이사슬 혼란 같은 외적 교란이 있는가 하면 환경호르몬 같은 내적 교란도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은 환경성 내분비계 교란 물질로, 성호르몬 체계에 교란을 일으켜 기형을 낳게 합니다. 동성끼리 짝짓기를 하고 암컷처럼 행동하는 수컷들을 만들어내 생물들이 본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교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죄를 짓고 하루하루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영적인 교란 요소..

기도를 완성할 때 - 겨자씨

우리는 각자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만 부각해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하는 하나님이란 ‘들으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내게 귀 기울여 주시고 나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 주시는 분이길 기대하고 원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기도를 찾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분이셔서 들으시는 분일 뿐 아니라 동시에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상의 모든 모습을 보시는 분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가는지, 일터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지,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이웃을 잘 돌보며 살아가는지 등의 모습을 보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과 우리 삶의 모습이 상반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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