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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564

열매 맺는 사명 - 겨자씨

요즘 시골 들녘은 씨 뿌리는 일로 바쁩니다. 봄에 뿌린 씨앗은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고구마 새순 한 가닥이 눈부신 태양빛을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 10개 내외의 탐스런 열매를 맺죠. 손톱보다 작은 볍씨 한 알이 굳세게 싹을 틔워 70∼80개의 쌀알을 주렁주렁 매달기도 합니다. 가녀린 옥수수 줄기는 여름을 견디고 서너 개의 튼실한 옥수수 열매를 맺는데 그 옥수수 한 개에 300여개의 낟알이 있으니 가히 1000배에 달하는 결실입니다. 지난 가을에 심어 수확이 가까워온 마늘의 꽃줄기를 뽑으며 농부인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이 마늘종을 그대로 두면 여기에서도 마늘이 열린단다. 땅속에서 실한 마늘을 얻기 위해선 줄기를 뽑아줘야 하는 게지.” 땅속에서 뿐 아니라 하늘 속에서라도 열매를 맺으려는 마늘종의 노력..

영적인 성품 - 겨자씨

요즘 영성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영성은 곧 영적인 성품을 말합니다. 영적인 성품은 신성한 성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덕목 중 하나입니다. 많은 영적인 성품 가운데 무엇보다 겸손한 태도가 소중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고, 교만은 남을 낮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과 겸손의 차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갑의 횡포는 곧 남을 낮게 여기는 교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성공하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점점 줄어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하대하게..

산타클로스 - 겨자씨

“어른이 되어서는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어른이 아니라고 합니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산타클로스는 자기 자신’이라고 깨닫는 순간부터라고 그는 말합니다.” 히스이 고타로 저(著), 서인해 역(譯) ‘3초 만에 행복해 지는 명언 테라피’(나무 한그루, 65∼6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이 길모퉁이에서 애처롭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의협심 많고 신앙이 좋은 청년이 그 곁을 지나게 됐습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번에는 큰 사고를 당한 유가족들이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교회에 와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땅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어디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깊은 묵상 중..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 겨자씨

흔히 사람들은 작고 볼품없는 것보다 크고 위대한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위대함에 이를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요. 위대함이란 처음부터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고 이름 없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일례로 윌리엄 캐리를 들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를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부르며 추앙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를 믿고 목회자가 되어 세계 선교의 비전을 품자 이런 놀라운 선언을 남기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이때 그가 외친 위대한 일이란 결코 크고 화려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눈앞의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요, 주어진 작은 일에 ..

스승과 천화(天花) - 겨자씨

사람은 산에 올라서야 동서남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면 산 아래의 모순과 대립의 세계를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높은 산이 있으면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보통 야산들은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만 계곡에 물이 흐릅니다. 그러나 산 높이가 1000m쯤 되면 계곡물이 그치지 않고 흐릅니다. 산이 더 높아지면 내리는 비가 차곡차곡 눈으로 쌓여 산정이 하얀 설산이 됩니다. 만년설산이 되면 아무리 가물어도 흘러내리는 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위대한 스승은 만년설산과 같아서 진리의 말씀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 품격과 덕행은 하얀 눈이 덮인 것처럼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옛사람들은 햇빛에 반사되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설산을 천화(天花)라고 불렀습니다. 진정 위대한 스승은 천화, 하늘의 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절망과의 한판 승부 - 겨자씨

2003년 중국에서 발생한 중증호흡기증후군(SARS)은 그해 중국에서만 8400명의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치사율이 무려 10%에 달했던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습니다. 2009년에는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떨게 했습니다. 200여개국에서 발병해 1년여 동안 1만 8500명이 사망했습니다. 2015년에는 중동호흡기 증후군(MERS)이 우리나라를 강타했지요. 격리 대상자로 분류됐던 사람만 1만 5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무시무시한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염병보다 더 치명적인 질환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급속도로 퍼져가는 전염병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병, 자신 외에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전염돼 불안의 도가니로 몰..

백조가 된 안데르센 - 겨자씨

‘미운 오리새끼’ 동화로 유명한 한스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었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문학과 연극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여러 문학작품을 읽어줬습니다. 열한 살 때 아버지가 숨지자, 안데르센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공장에 들어가 일해야만 했습니다. 젊은 시절 안데르센은 배우가 되려고 했지만, 얼굴이 못생겨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소설가가 되려했지만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냥팔이 소녀’ ‘백조 왕자’ ‘벌거숭이 임금님’ ‘인어공주’ ‘미운 오리새끼’ 등을 써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습니다. 어느 연못가에서 이상한 아기 오리가 태어났습니다. 외모가 다른 아기 오리는 다른 오리들로부터 괴롭힘을 받..

홈과 하우스 -겨자씨

홈(home)이 가정이라면 하우스(house)는 건물입니다. 가족에겐 하우스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품을 가진 홈이 더욱 필요합니다. 치유심리학자인 김영아 선생님은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이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소위 ‘비행 청소년’들이 하는 행동은 비슷하지만 꼬박꼬박 집으로 들어간다면 그의 비행은 해결될 수 있다. 그럼 어떤 청소년이 비행을 저지르면서도 집에 들어갈까. 그 차이는 딱 하나다. 바로 ‘가정’이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을 때다. 가정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집을 떠난다. 가정이란 어떤 곳인가. 아무리 힘들어도 위로받을 수 있고, 위로해주는 곳, 사랑을 훈련받고, 소통을 배우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어릴 때 받은 상처를 자녀에게 그대로 주면서 관계가 깨..

부모는 자녀들의 거울 - 겨자씨

거울은 참 신기합니다. 내가 웃으면 웃고, 찡그리면 찡그립니다. 내가 웃지 않으면 절대 먼저 웃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 같습니다. 엄마 아빠는 늘 아기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웃고 아프지 않으면 엄마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습니다. 그러나 아파서 힘들어하면 부모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합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힘들게 손자를 키우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엄마 아빠는 거울이다. 딸이 웃으니 아빠도 웃는다. 딸이 눈물을 지으니 나의 아내도 뒤돌아서 운다. 손자가 웃으니 딸이 웃는다. 딸이 웃으니 할아버지도 웃는다. 손자가 괴로워하니 딸이 시무룩해진다. 딸의 힘이 빠지니 할머니도 그 자리..

내 아내 - 겨자씨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은/ 꽃 사들고 돌아와 아내와 놀았노라.” 이시카와 다쿠보쿠 시 ‘나를 사랑하는 노래’입니다.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똑같은 우리말이 있습니다. 기러기, 다들 잠들다, 아 좋다 좋아, 다시 합창합시다, 다 이뿐이뿐이다, 여보 안경 안 보여, 다시 올 이월이 윤이월이올시다…. 그중에 제일은 이것입니다. ‘내 아내’. 앞으로 보아도 ‘내 아내’ 뒤로 보아도 ‘내 아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내 아내’, 성공했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내 아내’. 어화둥둥 내 사랑! 첫 사람 아담이 하와를 봤을 때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상)”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타락 후에는 똑같은 하와를 보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아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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