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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824

생명을 택하는 길 - 겨자씨

얼마 전 영화 ‘판도라’를 봤습니다. 영화를 함께 본 교우들의 눈이 붉어졌고 착잡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영화는 예고된 것처럼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현실과 거리가 먼 가상의 내용이 아니라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 비해 원자력발전소가 많습니다. 원전을 현대과학의 총아라고 부르지만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치명적입니다. 시설만 갖추면 쉽고 저렴하게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국민과 국가의 운명을 걸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진 뒤에야/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비로소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북미 원주민 크리족 추..

오늘이란 선물 - 겨자씨

우리는 성탄, 연말이 되면 사랑하는 이들과 선물을 나눕니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받는 자의 태도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가난한 마음, 겸손한 태도로 받는다면 행복한 선물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것을 주어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하찮게 여긴다면 그 선물은 도리어 상처를 주는 도구로 전락할 뿐입니다. 지금껏 받았던 선물 중에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사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다만 이 사실을 깨닫고 아침마다 그날의 가치를 헤아려 보는 손순한 자만이 선물로 누릴 수 있습니다. 한 시인은 하루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고는 이렇게 감격하며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금빛 수실로/찬란한 새벽을 수놓으시고//어둠에서 ..

아인슈타인 조수의 믿음 - 겨자씨

아인슈타인 박사가 상대성 원리를 발표했을 때의 일입니다. 수많은 강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고단했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에겐 비서와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명석한 조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지친 아인슈타인이 대학에서 강연 초청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출발하며 조수가 농담으로 물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박사님 대신 강의하면 어떨까요? 박사님의 강의를 수십 번 듣다 보니 모두 암기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유머가 많은 사람이어서 즉시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강의실에 들어선 아인슈타인은 학생들 사이에 끼어 구석에 앉았고, 조수는 강단에서 강의했습니다. 강의가 성공리에 끝났고 모두가 우레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 조목조목 따지며 질문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 겨자씨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 중 일부입니다. 그분의 편지엔 너무나 아파 1초도 견디기 힘들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평생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강아지 똥’ ‘몽실 언니’와 같은 따뜻하고 가슴 시린 동화를 쓰셨을까요. 선생님은 5평 흙집에서 일생을 자발적 가난으로 사셨고 마음과 힘을 모아 아이들과 이웃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변에선 권 선생님이 가진 게 없어 병원도 못 가고 궁색하게 산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책의 인세가 입금된 통장의 잔고가 10억원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세상은 어리..

대문호 소식이 남긴 시구 - 겨자씨

‘마음을 숨기는 기술’(플레처 부 지음)에 비굴함과 거만함을 꼬집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중국 북송의 대문호 소식(蘇軾)이 모간산에 유람을 갔다가 사당을 보고 쉬어 가려 했답니다. 사당에 기거하던 도사는 소식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별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거만하게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거기 앉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도동(道童)을 불러 “차나 주거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소식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사는 소식의 말투가 평범하지 않음을 알아채고 높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바로 본당으로 모시며 조금 예의를 갖추어 말했습니다. “앉으시지요.” 그러고는 도동에게 차를 내오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도사는 지금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대문호 소식임을 알아차리고 급히 태..

말려 주는 사람 - 겨자씨

사전오기(四顚五起)의 신화로 유명한 권투선수 홍수환은 은퇴 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링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일련의 어려움들을 겪으며 인생이 링보다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링에서는 두들겨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되면 말려주는 사람이 있는데 인생에서는 맞고 떨어지면 아예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싸움의 3대 요소’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펀치력, 맷집, 그리고 말리는 사람입니다. 펀치가 세고 맷집이 좋은 어떤 사람이 싸움 왕이 되어 상대방을 때려 눕혔다고 합시다. 그런데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상대방을 때리다 실제로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긴 것이 아니라 살인자가 됩니다. 싸울 때 옆에서 말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죄를 지을 때도 말리는 사..

은혜를 은혜로 받는 행복 - 겨자씨

20세기를 빛낸 흑인 성악가 중에 마리아 앤더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 성가대에서 음악을 접한 뒤 교회의 후원으로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성악가가 돼 뉴욕 맨해튼 홀에서 독창회를 가질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심하던 때라 백인들의 숱한 모함과 악평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실의에 빠졌고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며 좌절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위로합니다. “얘야, 먼저 은혜를 알아야 한다. 오늘 네가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은혜 때문이 아니겠니.” 이 말에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평안과 감사를 회복하고 다시 새롭게 일떠설 수 있었습니다. 성공, 성취보다 언제나 은혜가 먼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은혜를 믿고 ..

체로금풍(體露金風) - 겨자씨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나무에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잎사귀가 나무줄기를 덮어버리면 사람들은 무성한 잎사귀에 더 관심을 갖고 줄기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줄기가 드러납니다. 늦가을 이른 아침,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은행나무의 몸통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금빛 잎사귀들이 바람에 날립니다. 체로금풍입니다. 잎사귀가 무성할 때는 은행나무의 줄기가 가는지 굵은지, 멋진지 흠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잎사귀가 다 떨어져 버리면 몸통이 드러납니다. 그때는 정말 나무의 진실을 밝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시장하셔서 멀리서 잎사귀가 가득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다가가셨습니다. 그런데 잎사귀 외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

꽃이든 새든 하늘이 하십니다 - 겨자씨

‘꽃은 가만히 있고/새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데/그분, 말씀하시네/둘 다 하늘이 먹이고 있다고.’(조희선의 ‘하늘이 하신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라 누가 그것을 먹이고 입히느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마6:26∼28)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요. 새처럼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살았습니까, 꽃처럼 제자리에서 유유자적 살았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산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새는 새처럼 살고 꽃은 꽃처럼 사는 거지요. 감사하며 행복한 것은 곳간 없이 사는 새나 길쌈 수고 없는 꽃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러워할 일도 없고 염려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늘의..

사유화와 나르시시즘 - 겨자씨

최순실 사태를 불러온 박근혜 정권의 근본 문제는 ‘권력의 사유화’입니다. 잘 나가던 회사가 별안간 흔들리고 무너지는 이면에는 오너의 ‘회사 사유화’가 있습니다. 종종 불거지는 교회 세습과 권력 분쟁, 성범죄, 공금횡령 등은 ‘교회 사유화’의 부끄러운 민낯입니다. ‘사유화’란 권력이든 회사든 교회든 본래 개인의 것이 아닌, 개인의 것일 수 없는 것을 개인의 것으로 삼는 것,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결말은 당사자뿐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큰 고통입니다. 그 바탕에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조종하려는’ 나르시스(Narcissus)적 자아가 있습니다. 나르시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잘생긴 목동입니다. 아무도 사랑할 줄 모르던 그는 어느 날 호수에 비친, 생전 처음 보는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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