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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에게 주님의 사랑을] (1) 어린 이방인들 - 국민일보

축복의통로 2013. 6. 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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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코리안 엄마는 필리피노 “버림받은 난 누구인가요?”

그들은 ‘어린 이방인’이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 ‘제2의 라이따이한’으로 일컫는 코피노들은 한국으로 아버지가 떠난 뒤 어머니 나라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어린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겨진 아이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현지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함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대부분 가계를 책임지는 아버지 없는 코피노들은 극빈층 생활을 하는 등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며 필리핀 내에서 반한(反韓) 감정을 확산시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해외에 있는 한국계 혼혈아동들을 돕는 국내 NGO인 ‘메신저 인터내셔널’(이사장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과 함께 최근 필리핀 엥겔레스, 세부 지역을 방문해 이들을 만났다.

한국인 관광객과 어학 연수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필리핀 중남부의 세부에 살고 있는 미셸(가명·28)은 지난 21일 기자에게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여덟 살이 된 딸이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는 사진이었다. 아기를 안고 서 있는 잘생긴 얼굴의 남자가 아이 아빠라고 했다.

“19세 때 클럽에서 아이 아빠를 만났고 1년 후 아이를 낳았어요.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은 카지노를 들락거렸어요.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들어왔어요. 그나마 딸이 태어난 지 1년 후 그는 한국으로 떠나버렸죠. 전화도 받지 않고, 저와 딸을 버렸어요. 아무런 경제적 지원이 없었어요.” 그녀에게 “만일 아이 아빠를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저는 버려도 좋아요. 그러나 아이만은 책임져주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살길이 막막해요.”

그녀가 사는 마을은 1960년대 한국의 빈민촌을 연상시켰다. 화장실도 없는 나무판자로 만든 집에 10명이 넘는 가족들과 함께 북적거리며 산다. 미셸은 돈을 벌기 위해 다시 클럽에 나가 일한다. 그러나 월세로 1000페소(2만6000원)를 내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메신저인터내셔널의 생필품 지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산드라(가명·22)는 아빠가 모두 다른 세 명의 코피노를 키우고 있다. 세부시 바랑가이 루스의 최대 빈민가에 사는 그녀는 기자를 만나기 전날 셋째 딸 쉬엔지를 출산했다. 이미 다섯 살, 세 살의 코피노 남매를 둔 그녀는 하얀 배냇저고리를 입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기를 보여주며 수줍게 웃었다. “어디서 낳았느냐”는 질문에 “이 방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방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나무침대가 꽉 찰 정도로 좁았고,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습하고 무더웠다. 이불은 오래 세탁하지 않은 듯 덕지덕지 때가 묻어 있었다.

“술집에서 일하다 만난 한국남자와 3년간 사귀었어요. 영어 공부하러 온 그는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일한다고 말했어요. 첫째아들 아이단이 태어난 후 1년이 지나자 그는 한국으로 떠났고 연락도 끊었어요.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가장 속상하지만 그냥 이혼했다고 말해버려요.”

그때 첫째 아들 아이단(5)이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아이단은 손님의 오른손을 자신의 이마에 가볍게 대는 필리핀식 인사를 했다. 순간 가슴 한편이 저렸다. ‘혹시 이 아이가 길을 잃어버려 이곳에 있는 건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이 아버지의 이름이 ‘신○○’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가 떠난 후 먹고살기 위해 다시 술집에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2명의 한국 남자를 또 만나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지금은 출산한 지 얼마 안돼 일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전혀 없어요. 비타민, 우유, 기저귀가 필요해요. 무엇보다 아이단이 학교에 다닐 수 있길 바래요. 배우면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지난 수년 동안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06년 57만2000여명이던 필리핀의 한국 관광객 수는 2011년 92만여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어학연수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물가와 교육비가 싸 한 해 평균 4만여명의 한국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필리핀을 방문한다.

최근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 유학생들과 필리핀 여성의 만남이 늘어나면서 코피노들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현지 한 교민은 귀띔했다. 필리핀에는 현재 1만5000여명의 코피노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메신저인터내셔널센터 김종란 선교사는 “필리핀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이들은 아이를 가지면 하나님의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낙태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한국으로 귀국해 버려 점차 코피노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Key Word : 코피노

코피노(kopino)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philipino)의 합성어로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나 필리핀에서 생활하는 혼혈아를 말한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인의 필리핀 방문 및 거주가 늘면서 급증한 것으로 분석되며 현재 1만5000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세부=이지현 기자 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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