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당중앙교회 17

탁월함 겸손함을 겸비한 사람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살아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 위에 살아가야 할 이유와 존재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보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다했다면 우리를 벌써 이 땅 위에서 거두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를 입은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결코 실수가 없으심을 입증해야 합니다.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한 손에는 탁월함을, 다른 한 손에는 겸손함을 겸비한 하나님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주님의 원하심을 이루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돕는 것은 마음만 가지고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인가 기도 속에 애써 이룬 탁월함이 있어야 도와줄 근거와 분량이 생깁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거나 주고 싶으나 가진 것이 없어 안타까운 때를 넘어서야 합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정의롭..

비록 다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또 한 해가 우리 곁을 스쳐갑니다. 시간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자신의 속도대로 흘러갑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곳을 향해,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달려갑니다. 한 해를 뒤돌아보면 이루지 못한 일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룸과 이루지 못함을 넘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완성의 지경을 향해 나아갑니다. 모세는 광야에 묻혀 40년의 시간을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꺼내 그를 사명의 장에 놓은 후에도 그는 광야에서 또 40년을 보냅니다. 출애굽은 했으나 가나안 입성은 못했습니다. 모세의 꿈에 비하면 그의 삶은 절반의 완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누가 모세를 실패자라고 하겠습니까. 누가 그의 삶이 허탄했다고 하겠습니까.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내 소원을 이룸과 이루지 못함에..

한 번 하면 능력이다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인생이란 어차피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생각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하며 삶을 삽니다. 때론 그 낯설음이 주는 부담에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이뤘다’는 성취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룸으로 인한 결과의 30%는 기쁨과 결실입니다. 70%는 그것을 이루기까지 이미 습득된 실력이며 능력이고 해결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냈다는 것은 그 결과를 넘어서 이미 재생산의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 하면 능력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 번 하면 능력입니다. 이제까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지경을 끝없는 시도와 실패..

더 큰 빛, 더 큰 기운 - 최종천 목사 <분당중앙교회>

어둠에 있을 때 작은 촛불 하나를 켜면 사람들이 그 빛 아래로 모입니다. 얼굴을 식별하고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합니다. 그 빛 아래 모여 그림자 드리우는 여운 속에서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촛불이 켜진 상태에서 전등불을 켜면 모든 게 훤히 드러납니다. 그 어떤 구석, 어떤 사물도 어둠 없는 밝은 공간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을 밝혀줬던 촛불을 아무 미련 없이 ‘후욱’ 하고 입김 불어 끕니다. 더 큰 빛, 더 큰 기운 아래 이제까지 어둠을 밝혀왔던 작은 빛과 기운은 힘없이 그 소임을 다하고 사그라집니다. 그 공간에 창문 넘어 환하게 아침 햇빛이 비춰옵니다. 그 빛은 온 세상을 덮습니다. 너무 눈부셔 그 빛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반짝임이 됩니다. 아침 빛은 자신을 넘어 사물에게까지 ..

정서적 설득과 반복 훈련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우리가 감동 받았다고 할 때를 들여다보면 정서적 설득을 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들으니 그럴 듯하고 보고나니 정말 분명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북받치고 목이 메어오기도 합니다.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인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믿습니다”하고 달려 나가지만 의외로 삶에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현실은 감감하기만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외치기는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또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봅니다. 정서적 설득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기는 했지만 그 감정만으로는 현실의 변화를 이루기에 역부족입니다. 삶에서는 정서뿐 아니라 실제적인 능력의 변화까지 수반돼야 합니다. 이 정서적 설득과 현실의 변화 사이의 공간을 연결..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인생의 작은 투자는 눈앞의 상황과 예상, 결실에 목적을 두고 투자합니다. 그러나 큰 투자는 저 멀리 또는 인생과 역사의 궁극적 목적과 목표를 보고 투자합니다. 멀리 보고 투자하는 것이 허망하고 황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사람과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람 투자와 교육의 효과는 20년이 돼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고 그 효과는 사회와 역사가 볼 것이라는 생각이 맞습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가슴 아픈 실망과 배신의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10명에 투자할 때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기쁨 한 자락은 그중 두 셋이라 생각하면 편안합니다. 16년 전에 예배당이 비좁았습니다.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환 - 최종천 목사 (분당중앙교회)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의원을 찾아다녔으나 효험도 없고, 돈은 바닥이 났습니다. 병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가뜩이나 유대사회에선 혈루병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지도 못했습니다. 비빔밥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나물 등 각종 재료와 고추장을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넣습니다.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져 바닥을 두들겨도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 기름병을 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름병을 가져와 마개를 따고 참기름을 부어 밥을 비빕니다. 이것이 전환입니다. 무엇인가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을 채울 공급이 없을 땐 새로운 동력공급선을 찾고 바꾸어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혈루병에 걸렸던 여인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그 어떤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때 자신의 문제..

상처를 꽃으로 피워내는 사람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사는 게 참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투사작용 때문에 피차에게 주고받는 상처도 많습니다. 주는 이는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아픔을 풀어낸 것이지만 그것을 받는 사람은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호흡이 가쁠 만큼 힘들어합니다. 스치는 바람에도 상처를 받았다고 할 만큼 사소한 상처를 소화하지 못하고 아파합니다. 살아가면서 씻기 힘든 일생일대의 상처로 무너지기도 합니다. 요셉은 씻지 못할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형제들에 의해 종으로 팔립니다. 충성의 대가로 감옥에 갑니다. 꿈을 해몽해주고 기다렸으나 그 기간이 오래 지속됐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요셉을 의연하게, 아물게 해 거룩한 은혜로 피워냈습니다. 풍년 뒤 흉년 기간에 자신을 팔아넘긴 형제들을 만납니다. 요셉은 원수 갚음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

끝까지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시작이 반이라면 끝은 전부입니다. 누구나 시작은 열정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삶이란 누구랄 것 없이 시련과 지루함, 아픔의 연속입니다. 인생이란 다양한 삶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러한 각양의 요소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에 기쁨과 슬픔의 교직(交織)은 필연입니다. 우리는 이 시련의 고비 속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고난을 감내하고 끝까지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중단하고 심리적 평안과 출구를 찾는 논리를 개발할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대개 삶의 계산은 불가하고 막막한 심정 쪽으로 기웁니다. 믿음의 삶이란 보다 확률이 높은 쪽에 나를 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셨고 소원을 주셨던 그 믿음의 비전에 따르는 것입니다. 저 멀리 보이고, 살아갈수록 내가 가야 할 곳과 나 자신의 거리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축복 기쁨 웃음 만족 행복은 포장되어 전달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듭을 풀고 포장지를 벗겨내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 수고가 없으면 우리는 언제나 빈한한 상상 속에서 끊임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시들어갑니다. 중풍 병이 든 친구를 가진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서 친구의 사정을 아뢰고 부탁드리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에워싼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장벽을 만난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어서 못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행을 했습니다. 지붕 위로 올라가 구멍을 내고 중풍 병에 걸린 친구의 침상을 끈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지붕을 뜯다 잔해가 떨어지면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경제적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