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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824

휴가철의 개구리 교향곡 - 겨자씨

로망 롤랑은 소설 ‘장 크리스토프’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에서 젊은 음악도는 작곡가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이 든 분이 찾아와 가장 위대한 교향악을 들려주겠다고 젊은이를 불러냈습니다. 그는 젊은이를 강가의 들판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개구리들이 하늘을 진동시킬 듯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이에게 “아무리 위대한 음악가라도 저렇게 온 천지를 울리는 음악을 작곡하지는 못할 걸세”라고 말합니다. 그 젊은이는 훗날 제9교향곡을 작곡하는 위대한 음악가로 성장합니다. 소설 ‘장 크리스토프’는 베토벤을 모델로 쓴 것입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연과 가까이하며 휴가를 보냅니다. 그 까닭은 자연이 어머니처럼 상한 심신을 품어줄 뿐만 아니라 위..

전능 환상을 경계하라 - 겨자씨

전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전능환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국가 지도자들은 나라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자신의 인기가 올라가면 전능환상에 빠지곤 합니다. 특히 권력을 잡고난 뒤 주변 사람들이 복종할 때 이런 환상은 절정에 이릅니다. 합리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전능환상도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모든 게 논리에 맞아야 하며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의 틀이 이성의 전능성을 낳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점점 약화돼 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아무런 힘도 없이 그냥 곁에 계시기만 하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합리적인 생각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이런 세계관이 우상처럼 자리 잡고 있..

성냥과 핵폭발 - 겨자씨

“성냥갑 속에서 너무 오래 불붙기를 기다리다/ 늙어버린 성냥개비들/ 유황 바른 머리를 화약지에 확 그어/ 일순간의 맞불 한 번 그 환희로/ 화형도 겁 없이 환하게 환하게 몸 사루고 싶었음을.” 김남조 시인의 시 ‘성냥’입니다. 성냥갑 속 빠알간 유황을 바른 머리들이 어서 나를 태우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강 건너 타오르는 불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불이 붙여져 온 천지를 태우는 시작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성냥은 제 몸에 불을 붙여 남에게 불꽃을 주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고 그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성냥갑 속의 성냥, 물에 젖은 성냥은 아직 제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성냥입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창조의 이유를 발견하며 그 비전대로 살게 될 때 불꽃같은 삶을 살게 됩..

신앙의 복리법칙 - 겨자씨

‘노력의 복리법칙’은 축구선수의 연봉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A선수가 49가지 기술을, B선수가 51가지 기술을 갖고 있을 때 두 선수의 연봉 차는 얼마나 될까요. A선수의 연봉이 3200만원이라면 기술 2개를 더 가진 B선수는 산술적으로 3600만원이면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3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치열한 승부의 순간에 0.1%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영국 탁구 국가대표 선수이자 금메달리스트인 매슈 사이드는 ‘베스트 플레이어’에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A4 용지 1장의 두께는 0.1㎜입니다. 한 번 접으면 0.2㎜가 되고 두 번 접으면 0.4㎜가 됩니다. 저자는 ‘같은 방법으로 30회를 접으면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묻습니다. ..

기묘한 레시피 - 겨자씨

동네 국수가게에서는 국수와 함께 매운 청양고추를 줍니다. 저는 국수를 좋아해서 별다른 찬이 없어도 잘 먹는 편입니다. 그래서 국수를 먹을 때 청양고추를 함께 먹는 걸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투박한 된장에 고추를 푹 찍어 먹었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너무 맛있는 것입니다. 오징어는 또 어떤가요. 구운 오징어는 고추장에만 찍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심방 갔던 성도의 집에서 새로운 소스를 줬습니다. 간장과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였습니다. 이 조합이 어울릴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상상 밖의 고소함을 선사했습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맛은 ‘단짠’이랍니다. 달고 짠맛이 함께 있다는 의미죠. 저는 단맛을 그리 선호하지 않고 짠맛에도 너그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짠’의 매..

오프사이드 반칙 - 겨자씨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2002 한일월드컵 때 독일의 대문호 귄터 그라스가 발표한 축시 ‘밤의 경기장’입니다. 축구공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꽉 찬 관중석. 꽉 찬 인생.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속에도 인생은 언제나 단독자(單獨者).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습니다. 골키퍼와 일대일, 골을 넣어서 영웅이 될 수 있는 숨 막히는 상황. 그때 심판의 호각이 울립니다. “오프사이드!” 순간,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 됩니다. 때로 우리는 환호하는 관중과 골을 넣어 성공하겠다는 열망 속에 심판의 선언이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영적인 오프사..

창조성의 원리 - 겨자씨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성’입니다. 틀에 갇힌 생각, 과거에 매인 방식이 아니라 누구도 가 보지 않은 창조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창조적인 삶을 살았던 대표적 인물로 다니엘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철의 권력을 누리던 느부갓네살 왕에게조차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거룩한 영의 사람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창조적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창조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는 거룩했습니다.(단 1:8)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품고 세상과 구별되게 산 것입니다. 그는 충실했습니다.(단 6:4)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든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인생의 최고의 선택 - 겨자씨

아흔 살 할머니가 병실에서 “이제 나는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할머니는 더는 병실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난감해하는 의사에게 아들이 말했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날 겁니다.” 노마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마지막 1년을 여행하며 보냈습니다. 그의 사후에 ‘드라이빙 미스 노마’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그 책에는 질병의 고통이나 죽음의 두려움을 쓰지 않았습니다. 마치 젊은 시절처럼 멋지게 파마를 한 할머니가 애완견을 데리고 낯선 세계를 흥미롭게 다니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행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28세 때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까 ..

목표가 분명한 인생 - 겨자씨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의 매슈 에먼스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는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2위와 격차가 한참 벌어져 과녁을 맞히기만 해도 무조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에먼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과녁을 겨냥한 다음 격발했습니다. 총알은 과녁 정중앙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과녁을 맞혔다는 효과음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맞힌 과녁은 다른 선수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다 잡은 금메달을 놓치고 8위로 떨어졌습니다. 에먼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마지막 순간 실수를 했습니다.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아홉 발까지 선두로 나서다가 최종 한 발에서 결정적 실수로 4위로 추락했습니다. 그의 사격 솜씨는 대단했으나 목표를 제대로 보지 못..

‘주소서’ 기도에 대한 단상 - 겨자씨

존 달림플이 쓴 ‘단순한 기도’를 보면 기도의 형태를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원의 기도’ ‘감사의 기도’ ‘회개의 기도’ ‘찬양의 기도’ 등입니다. 사실 이런 정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청원의 기도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뜻합니다.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표현하는 기도이죠. 회개의 기도란 우리의 삶과 행실 가운데서 주님 앞에 죄지은 것과 연약한 것을 아뢰고 참회하는 기도입니다. 찬양의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위와 존재, 이름을 높여드리고 경배하는 기도이지요. 나름대로 기도의 구력이 갖춰지고 신앙의 연륜을 얻으면 청원의 기도보다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곤 합니다. 그런데 이게 딜레마입니다.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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