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사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그건 대체적으로 종교, 직업, 그리고 결혼일 것이다. 일단 우리는 종교의 측면에서는 안정권에 들어와 있다. 생명의 종교, 부활의 종교는 오직 우리가 믿는 기독교뿐이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직업과 결혼이다.
우선 직업은 그리 깊게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첫번째 이유는 이미 직업을 갖은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일단 직업을 갖은 이상 주어진 직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하며,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결혼이다. 결혼에 관해서, 사랑에 관해서 수없이 많은 주장과 경험들이 존재하기에 과연 어떤 것이 옳은가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옳음과 그름의 기준이 성경적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옳고 그름은 어느 정도 분명해진다. 이하에서는 그러한 성경적 결혼관에 관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김인수 교수─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실행위원─의 강연내용을 정리, 요약하겠다).
결혼은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돕기 위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자에게 뭘 바라기보다는 뭘 도울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돕는 배필로서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원망하기보다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내가 도움을 받을 사람보다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두 배우자가 이런 마음을 갖고 만나게 되면 결국 서로를 돕게 되어 실제 이상의 에너지(시너지:synergy)가 나타나게 된다.
데이트와 결혼 사이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결혼의 함정이란 데이트와 결혼 후에 만나게 되는 인격의 차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데이트할 때는 가장 좋은 옷의, 가장 좋은 미소의, 가장 다소곳한 자세의, 또한 가장 성숙한 너와 내가 만나게 된다. 그러나 결혼은 가장 허름한 옷의, 가장 화가 난, 가장 볼품없는 자세의, 또한 가장 유치한 너와 나도 함께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전자만 아니라 후자도 기꺼이 만날 작정을 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 로맨틱한 감정은 우리의 눈을 뒤집어 놓고 결혼하게 하려는 마귀의 의도된 함정이다. 그 함정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며, 그 책임은 그 자신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로맨틱한 감정의 연속선상에서의 결혼은 때로 이혼을 부르게 된다.
"Love is a will to love." (사랑은 사랑하려는 의지이다.)
우리는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상대방과 결혼해야 한다. 좋아하는 상대방과 결혼하면, 좋아함이 사라지면 결국 파경이 된다.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랑하는 행동을 낳는 것이기에 더욱 그래야 한다. 좋아할 매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감정이 아닌 의지가 사랑을 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좀 문학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사랑은 내가 심고 물을 주고 노력한 만큼 자라 꽃을 피우고 과실을 맺는 나무와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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