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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을 지경이 되면 정신을 차린다. 혼났다는 말은 넋이 나갔다는 소리다. 그 정도로 죽을 고생했다는 말이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아버지 집을 나갔다가 알거지가 된 아들이 자기 신분을 회복하는 길은 하루빨리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탕자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버지 곁을 떠나기만 하면 날개를 달 줄 알았다. “내 맘대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날개는 비상하는 날개가 아니라 추락하는 날개였다. 그가 생각한 기대치와 하나님이 허락한 현실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오차가 있었다.
고집 센 황소를 우리에서 끌어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황소고집으로 버티면 그 힘을 당할 수가 없다. 그럴 때 여물통을 엎어 버리면 황소는 그의 희망이 엎어진 고로 쉽게 포기하고 나온다. 뒤늦게 예수님의 품으로 들어온 사람들 대다수가 하나님의 여물통 엎기에 걸린 사람들이다. 건강의 여물통, 물질의 여물통, 자녀의 여물통….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여물통이 하나님 노릇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떠나면 모든 것이 파탄난다. 큰 흉년 만나고, 병들고, 재정은 거덜 나고, 불안은 가득 찬다. 그러나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잃었던 축복을 다시 회복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못남과 약함을 아시면서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셨다. 내 죄를 사해주셨고 자녀의 신분도 회복시켜 주셨다. 이것이 탕자를 통한 교훈이다.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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