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농촌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몇몇 교회가 설교자로 초청해 다녀올 일이 생겼습니다. 아내도 함께 초청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외진 농촌 마을에서 묵묵히 내조의 길을 걸어온 아내에게 선물과 같은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힘겹게 일하며 사는 마을의 젊은 여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내의 마음에 공감해 혼자서 다녀왔지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게 된 분이 6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건강상태가 기적적으로 호전된 분입니다. 이분이 담배를 끊은 뒤 모은 1년 치 담뱃값을 보내온 것입니다. “사모님, 마을의 젊은 여성들과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고 왔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메모도 남겼죠.
하루 날을 잡았고 몇몇 남편들의 도움으로 이른 아침 여주로 나가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시어머니들도 기꺼이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도 마셨습니다.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도 나누고, 식구들 수대로 옷도 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도 먹었습니다. 그날만큼은 새벽에 담뱃잎 수확하러 밭에 나가야 하는 걱정까지 내려놓은 채 모처럼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중 하나는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2823&code=23111512&sid1=fai&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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