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자료함께 올려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천재성이 나중에 발현된 대기만성형 천재라고 이야기하고는 한다. 어린 시절, 모짜르트와는 다르게 그의 음악선생으로부터 그 어떤 음악적인 천재성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고, 앞서 말한대로 하이든도 베토벤에게서 어떠한 영감을 받지 못하였다. 나중에 되어서야 발현되었다는 천재성에 대해서는 내 의견은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천재는 아니었다. 그는 천재가 아니기에 더욱 위대해질 수 있었다. 천재가 아닌 자가 천재를 닮아가기 위한 노력, 그 노력 때문에 그는 더욱 위대해질 수 있었고 그리고 위대한 작품들을 세상에 들려줄 수 있었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단지 그의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꺼지지 않은 열정의 창작물, 교향곡 9번 [합창]
무려 30년이 걸린 대작 앞에서 많은 사람들의 갈채는 그 끝을 몰랐다. 1824년 5월 7일 쾨른투나투어 극장, 연주가 끝나고 베토벤은 가만히 연주자들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는 청중들의 열광적인 박수 갈채가 보내지고 있었지만 이미 귀머거리가 된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알토의 독창자 웅가르가 그런 그의 옷자락을 당겨 청중에게 향하게 하였다. 끝이 없는 박수 갈채에 그는 조용히 답레하였다.
합창교향곡은 시인 쉴러의 작품 <환희의 송가>에 영감을 얻어 창작한 작품이다. 1793년 베토벤의 친구이자 법률교수인 루트비히 피세니히가 쉴러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본에서 장래가 유망한 작곡가 청년있습니다. 이 청년은 위대한 것이나 숭고한 것에 아주 심취해 있습니다. 그리고 쉴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이려고 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이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무려 3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이 교향곡의 중점은 4악장 <환희의 송가>라고 불리워진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이 부분을 부각시키기 위해 교향곡의 형식을 파괴하는 시도도 서슴치 않았다. 보통의 교향곡은 2악장은 조용하면서 잔잔하게 3악장은 빠르면서 강하게 그 형식을 구성하는데 반하여 이 교향곡은 2악장과 3항식의 순서가 바뀐 것처럼 2악장은 빠르면서 강하게 하지만 3악장은 조용하게 선율이 흐른다. 그러면서 작품의 통일성을 위하여 4악장에 서 1, 2, 3악장의 주요 주제를 도입부에서 구현하고 있다. 암흑에서 환희로의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이 교향곡은 합창부분에서 성가를 넣는 당시 큰 모험을 하였다. 합창이 오케스트라에 종속되지 않고,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합창에 종속됨이 없이 성악과 기악의 어울림은 작품의 일체감을 만들어내었으며, 제목 그대로 <환희의 송가>를 만들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