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집사인 김모(44·여)씨에게 2011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김씨는 그해 남편을 잃었다. 사업실패로 좌절한 남편은 그가 잠든 사이 욕실에서 목을 맸다. 남편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에게도 자살 충동이 밀려왔다. 김씨는 5년 전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그는 매일 자살을 꿈꿨다. 다량의 수면제를 삼키기도 하고 발코니에서 몸을 던지려고도 했다. 예기치 않은 친구와 교회 성도의 방문으로 자살 계획은 무산됐지만 우울증은 계속됐다. 그랬기에 그는 우울증 약으로 근근이 버티던 자신이 아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항상 제 옆에서 지켜주던 사람이었는데…. 남편을 지켜주지 못한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김씨는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이후 그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남매를 돌볼 수도 없었으며, 결국 스스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이 깊어져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15.6%는 평생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며, 최근 1년간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이 10만8000명에 이른다. 자살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우울증은 이 조사에서 2001년에 비해 1.5배 이상 증가했으며 남녀 모두 증가 추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자 수도 크게 늘었다. 통계청 사망 원인에 따르면 자살자는 2001년 6911명에서 2011년 1만5906명으로 10년 새 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신앙인도 예외가 아니다. 신앙을 가진 이들 역시 고혈압, 당뇨병 등 일반 질병처럼 우울증을 앓을 수 있으며 증세가 심해질 경우 자살 의도가 높아질 수 있다. 전우택 연세의대 정신과 교수는 “자살은 원칙적으로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우울증은 신앙을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며 “따라서 신앙인이 우울해졌다는 것이 곧 신앙이 없다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울증과 자살은 극복할 방법이 없는 불치병일까.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극복한 이들과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경우 자살은 예방할 수 있으며 정신과 치료와 상담뿐 아니라 신앙으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극동방송 진행자이자 우울증치료음악회인 ‘라이프트리워십’을 이끄는 유정현(41) 전도사는 우울증을 오히려 축복이자 인생의 전환점으로 정의했다. 유 전도사는 서울대 성악과 재학 시절 음악으로 최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우울증에 걸려 매일 자살을 떠올렸으나, 이를 말씀과 신앙으로 극복했다.
“병원에서 약도 받고, 저와 비슷한 아픔이 있는 이들과 편지로 교류하며 우울증을 치료했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미래를 불안해하던 제게 온누리교회 새벽예배에서 접한 요셉의 꿈에 대한 말씀은 한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이후 40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2002년 예수전도단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우울감에서 완전히 해방됐습니다. 제게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 내 꿈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요.”
택시기사 박광수(69)씨 역시 신앙으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극복한 경우다.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벤처투자로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였던 2002년, 주식 투자에 중독된 김씨는 핸들도 잡지 않고 매일 증권사 시세판을 보며 ‘대박’을 꿈꿨다. 하지만 이듬해 투자 실패로 1억원 가까이 날리면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찾아왔고 아내와 불화가 깊어졌다.
“주식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되자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났습니다. 매일 가족에게 전할 유서를 품고 다니며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죽을 날만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부녀회장의 권유로 아내와 교회에 갔다. 교회에서 처음 예배를 접했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한번 믿어볼까…’란 생각이 박씨의 가치관과 인생 우선순위를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생각했는데 교회에서 예수님을 알게 된 이후로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 없이도 살 수 있구나’란 마음이 들더군요. ‘돈이 뭔데 죽어야 하나’란 생각도 들고. 단순하지만 그래서 자살 충동을 이겼어요. 신앙이 없었다면 죽었을 거예요.”
하지만 유 전도사는 신앙이 있음에도 우울증을 겪을 경우 ‘기도하면 다 낫는다’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다’는 식의 말은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울증은 일종의 질병이기 때문에 신앙을 빌미로 치료의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전 교수 역시 신앙적으로 야단쳐서는 우울증을 극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신앙으로 길러진 내면적인 힘이 자살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신앙인이라면 무조건 우울함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이를 계기로 신앙·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삼으라”고 조언했다.
또 전문가들은 자살 예방을 위해 교회가 사회의 ‘상담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자살을 금기가 아닌 힘들 때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는 현상이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자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공동체가 절실하다. 교회가 힘들어하는 이들의 친구가 돼 자살의 유혹의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영경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