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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도종환의 시 ‘여백’의 한 구절입니다.
동양의 미학을 ‘여백의 미’라고 합니다. 선을 중요시하는 동양화에선 면이 비어 있습니다. 큰 화폭 위에 매화의 한 가지나 난초 잎 하나를 그린 동양화. 붓을 안 댄 흰 여백은 감상하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여백 속으로 들어가 하늘이 되기도 물이 되기도 합니다. 여백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틈이 없는 사람에겐 이웃의 눈물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넉넉한 무명천같이 여백이 있는 사람은 이웃과 잘 소통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여백은 내가 다 나서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것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내 손을 떠난 이 빈 공간은 바로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을 인정하고 기다리며 바라보는 것. 이런 ‘신앙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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