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우울증.’ 얼핏 보면 모순적인 표현이다. 우울증을 불신앙이나 죄의 지표로 보는 경향이 높아서다. 그럼에도 정신의학이나 상담전문가들은 목회자에게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울증도 감기처럼 ‘고칠 수 있는 질병’이다. 매주 설교를 하는 목회자의 우울증은 이들의 가정뿐 아니라 교회 성도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일상생활의 사소한 고민조차 직분의 특성상 주변에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 목회자들. 이들이 우울증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면의 우울한 감정, 터놓고 표현하라
목회자가 겪는 스트레스나 고민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를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목회자들이 영적 지도자의 권위 때문에 일반 상담기관에 상담을 의뢰하기 주저한다고 했다. 일부 교단·선교단체에도 상담기구가 있지만 쉽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사역의 약점을 외부에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목회자들의 이런 태도가 우울증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주서택 내적치유연구원장은 “상담한 목회자 가운데 우울증으로 자살 직전까지 간 이들이 적잖다”며 “목회와 대인관계·가정불화로 지쳤음에도 목사라는 신분 때문에 매주 강단에 서야 한다는 강박이 이들을 더 깊은 우울증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불신앙’이란 성도들의 인식도 목회자의 입을 막는 한 요인이다. 이무석 전남대 의대 명예교수는 “흔히 목회자가 우울하다 하면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한다고 여긴다. 이런 인식이 목회자에게 스트레스를 줘 우울증을 더 키우게 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에 걸린 목회자라면 내면의 감정을 끄집어내거나 휴식기를 가져 분노와 우울의 감정을 조절하라고 제안했다. 최귀석 한국가정치유상담연구원장은 우울증 자가 치료의 한 방법으로 ‘눈물’을 꼽았다. 최 원장은 “시편 32편 3절에 ‘입을 열지 않을 때 뼈가 쇠했다’는 말씀이 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하나님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도 우울함을 없애는 한 방법”이라 했다. 주 원장은 목회현장을 떠나 휴식시간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그는 “우울증은 내면의 상처이므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경을 바꿔 충분한 휴식을 하는 게 영적 재충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져라
경기도 시흥시의 A(47) 목사는 최근 설교단에 오르기가 두렵다. 얼마 전 그를 찾아온 남동생 때문이다. 그의 동생은 A 목사가 부모에게 유산을 더 받는 게 억울하다며 평소에도 전화를 걸어 화를 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A 목사의 교회에 남동생이 찾아왔다. 주일 오전 예배를 인도하던 A 목사에게 남동생은 교회 집기를 내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일 이후 A 목사는 공연히 가슴이 뛰고 밤잠을 못 이루는 증세를 겪었다. 설교뿐 아니라 성도들 앞에서 입을 떼는 것조차 힘겨웠다. 성도들의 시선이 두려워서다. 동생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목사가 성도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에게 두고두고 상처가 됐다. 결국 A목사는 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 교수는 A 목사의 상태를 ‘과도한 자학에서 나온 우울증’이라 진단했다. 그는 “집안문제는 누구나 있다. 하지만 목사이기에 성도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라며 “도덕성 등 스스로에 대한 요구기준이 너무 높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그런데 목회자 가운데 이런 강박이 심한 이들이 적잖다. 과도한 자학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것’ ‘목회와 삶의 균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재는 목회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처벌자’로 믿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목회자 본인이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을 경험해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목회자 가정 상담가 장해주 해가연 소장은 ‘성직자’로서의 역할과 자신을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장 소장은 “목회자 역할에만 치중하면 삶과 목회가 혼동돼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우울증이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자신의 삶 또한 인정할 때 목회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울증 깊어졌다면 전문기관 찾아가야
이 교수는 불면증과 이유 없는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 증상이 동반될 때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러한 증상이 심할 경우 정신과 전문의의 심리상담과 약물치료가 병행돼야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심각한 우울증의 경우 병원이나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는 게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 소장 역시 약물치료와 상담을 함께 하는 것이 우울증이 심할 경우 효과적이라 말했다. 그는 “우울증 치료 목적이 단기간 회복에만 있어선 안 된다. 이 아픔으로 자신뿐 아니라 성도와 가정도 건강해 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치료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 우울감 등 감정 조절 및 영성회복 또한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주 원장은 “목회자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스스로 영성을 회복하기 어렵다면 교단이나 사역원에서 진행하는 목회자 탈진과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출처 :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gCode=0000&sCode=0000&arcid=0008136135&code=23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