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x250
2013 K리그 MVP 김신욱에 아름다운 신앙고백입니다.
골닷컴 기사 함께 올립니다.
[골닷컴] 정재훈 기자 = 본인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영광보다 팀의 성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2013년 K리그 클래식 그리고 한국 축구의 주인공은 김신욱이다.
김신욱이 K리그 클래식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자신의 키만큼 높이 섰다. 김신욱은 3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2013 현대 오일뱅크 K리그 대상'에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올 한 해의 주인공은 김신욱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렸다.김신욱은 포항 2관왕(FA컵, 정규리그)의 주역이자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이명주를 압도적인 표 차로 제쳤다. 김신욱은 기자단 투표 인원 113명 중 무려 90명의 지지를 받았다. 한 시즌 동안 전국을 누비며 취재를 한 기자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선수가 김신욱이라는 뜻이다. 정규리그 준우승팀에서 MVP로 선정된 선수는 안정환(당시 부산), 김은중(당시 제주)에 이어 김신욱이 3번째다.
축구 팬들의 선택도 다르지 않았다. 김신욱은 축구팬이 직접 뽑은 2013년 최고의 K리거 '아디다스 올인 팬타스틱 플레이어'에 선정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지난달 27일부터 12월 1일 자정까지 K리그 홈페이지와 공식 SNS를 통해 일반 팬들을 대상으로 벌인 투표에서 김신욱은 총점 2,503점을 얻어 1위에 올랐다. 데얀과 치열한 경합이 있었지만 축구팬들의 선택은 김신욱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김신욱은 2013년 K리그 클래식 베스트일레븐 포워드 부분에서 데얀과 함께 최전방 공격수로 뽑혔다. 3관왕이다. 고무열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마 김신욱이 자격조건만 갖췄다면 영플레이어상까지 휩쓸었을 것이다. 어쨌든 올 시즌 36경기에 출전해 19골과 6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한 김신욱에 대한 적절한 보상인 셈이다.
3관왕의 영예는 김신욱에게 더욱 특별하다. 3일 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12월 1일 오후 김신욱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피땀 흘려 일궈낸 일 년 농사가 단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전주에서는 데얀이 골을 터트리며 득점왕 타이틀을 가져갔고 소속팀 울산은 추가 시간을 버티지 못해 무너지고 말았다.
허탈했다. 김신욱은 자신이 뛰었어도 승부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그 경기에서 울산에 김신욱이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신욱은 "최종전에서 패해 우승을 하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그보다 훨씬 슬픈 일은 동료들과 함께 경기하지 못한 점이다"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개인 타이틀 욕심이 없음을 항상 강조했으나 똑같이 19골을 넣고 경기 수가 많아서 생애 첫 득점왕 타이틀을 쟁취하지 못한 점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신욱은 손에 넣고 쥐기만 하면 되는 우승컵 그리고 득점왕을 놓치며 모든 것을 잃는듯했다. 하지만 그동안 흘린 땀의 값어치는 배신하지 않았다. 비록 우승컵만큼은 아니겠지만 "개인상 수상의 영광을 김호곤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돌리겠다"라는 자신의 이야기처럼 3관왕의 영예를 함께 누리면 어느 정도 위로가 될 것이다.
키만 큰 수비수에서 땜빵 공격수로 보직을 변경한 지 5년 만에 김신욱은 당당히 주인공이 됐다. 이 정도면 인생 역전, 각본 없는 드라마다.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력이다. 그동안 남몰래 흘린 땀과 눈물이 뒷받침됐기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었다.
그의 노력은 이미 축구계에 정평이 나 있다. 김신욱은 항상 연구하고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공격수로서 경력이 부족하기에 닮고 싶은 선수 혹은 확실한 장점이 있는 선수의 경기를 분석하고 분석하고 또 분석한다. 물론 독실한 기독교 신자답게 기도도 빼놓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대표팀에서의 입지 변화다. 김신욱은 지난 7월 2013 EAFF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그는 헤딩만 잘하는 공격수였다. (물론 K리그에서는 발도 잘 구사했지만 대표팀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후반전 교체 출전이 그에게 주어진 기회의 전부였고 확실하게 그 기회를 잡지도 못했다.
당시 홍 감독은 "김신욱만 경기에 들어가면 선수들이 김신욱의 머리를 보고 패스해서 경기가 단순해진다"라며 "이는 내가 원하는 축구가 아니다"라고 밝히며 김신욱의 대표팀 발탁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는 게 홍 감독이 내준 숙제였다.
모범생 김신욱이 숙제를 안 할 리가 있을까. 단지 했다는 데 의미를 두지 않고 김신욱은 완벽하게 풀었다. 한동안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던 김신욱은 K리그 클래식에서 묵묵히 활약했다. 잠시 부침의 시간을 겪기도 했지만 김신욱은 10월에는 3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등 울산의 연승을 이끌었다. 원톱 공격수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던 홍 감독은 김신욱에게 과제를 제출할 기회를 줬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홍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김신욱은 스위스, 러시아전을 통해 한국 대표팀의 원톱이 될 수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제공권은 체격 조건이 좋은 유럽 선수들을 상대하면서도 압도했고 부드러운 연계 플레이로 '발'도 강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전방 압박과 2선 공격수들과의 호흡도 만족스러웠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김신욱이 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흔히 쓴다. 틀린 말이다. 위기는 위기고 기회는 기회다. 하지만 바로 잡을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자 노력한다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김신욱이 그렇다.
김신욱은 별 볼 일 없는 수비수에서 헤딩 잘하는 공격수가 됐다. 헤딩만 잘하는 공격수에서 골을 잘 넣는 공격수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골만 잘 넣는 공격수가 아닌 발도 잘 쓰고 많이 뛰고 연계 플레이까지 뛰어난 K리그 클래식에 그리고 한국 축구에 없어서는 안 될 공격수로 성장했다. 아픔은 김신욱에게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울산은 최종전에서 우승을 놓쳤고 김신욱은 득점왕도 뺏겼다. 아픔이다. 하지만 이 아픔이 김신욱에게 또 다른 성장의 자양분이다.
그리 느리지도 않고 그리 빠르지도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한 김신욱은 마침내 2013년 주인공이 됐다. 단지 김신욱이 3관왕을 차지했다고 주인공이라는 뜻은 아니다. 울산과 포항의 K리그 클래식 최종전을 티비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당시 중계 카메라는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김신욱을 카메라 앵글에 수차례나 잡았다. 포항의 신화용 골키퍼보다 더 많은 원샷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울산이 골을 허용하자 김신욱의 허탈한 표정을 전국의 축구 시청자들에게 내보내기도 했다. 마치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중계 기술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즐거워했다.
김신욱이 2013년 K리그 클래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