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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가가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를 부탁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대왕의 이마에는 추한 상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대왕의 상처를 그대로 화폭에 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왕이 자랑스러움에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그리지 않는다면 그 초상화는 진실한 것이 되지 못하므로 화가의 신망은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화가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대왕이 이마에 손을 대고 쉬는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타인의 상처를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가려줄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9장에 술 취한 노아의 허물에 대한 세 아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함이 아버지의 부끄러운 광경을 보고 그것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어 드렸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를 덮어주지 못한 함의 아들은 복을 잃었고, 덮어준 사람 셈의 후손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선조가 되었고, 야벳은 창대해졌습니다. 덮어주는 자가 복을 받고 덮어주는 것이 복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아버지를 덮어주는 것도 복이 되었습니다. 내가 잘 되는 길은 남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감사할 일들은 드러내고 부끄러운 것들은 감춰주는 복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김철규 목사(서귀포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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