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기도하며/영성나눔

“칭찬과 중보기도가 저를 주님께로 이끌었어요” - 갓피플4월호 안선영 Cover Story

축복의통로 2013. 4.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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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가는 연예인과 그 가족이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대세 같다. 지난해 방송된 ‘남자의 자격 가족합창단’ 편이 한 사례라면, ‘붕어빵’, ‘아빠! 어디 가’처럼 스타와 가족이 고정 출연하는 ‘가족 예능’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미지와 연기라는 옷을 입은 연예인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가족까지 참여하는 진솔한 풍경이 정(情)이 그리운 시대에 공감을 주기 때문 아닐까 싶은데…. 그런 풍경 가운데 즐거운 방송인 안선영이 있다.
‘남자의 자격’에 어머니 심정은 씨와 출연해 ‘널리 유쾌하게 어머니를 알린’ 안선영은 지난 3월 13일 첫 방송된 ‘모녀기타’(TV조선)에서 어머니와 함께 고정 출연을 시작했다. 

현재 안선영에게 유일한 직계가족인 심정은 씨는 외동딸이 네 살 때 남편을 먼저 보냈다. 유아기의 선영은 엄마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러 나가면, 외사촌 언니 오빠들마저 학교 간 동안은 집 부근 교회 마당 놀이터에서 혼자 놀곤 하였다. 부산의 양정제일교회였다고 기억한다. 하루는, 아마도 교회 유치부 선생님이었을 텐데, “너 참 예쁘네! 교회 오면 초코파이 주고 노래도 춤도 가르쳐줄게” 하며 놀고 있던 선영을 불러주었다. 선영은 말씀암송도, 찬양도 율동도 잘하기가 남과 달랐다. 선생님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어쩌면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칭찬이 오늘의 안선영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회 선생님들, 칭찬 많이 하시라!

외가가 온통 ‘독실한’ 불교 일색인 집에서 자란 안선영은 그렇게 해서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 ‘교회오빠’ 같은 남자아이들이 집으로 전화 한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교회 출석을 엄히 금할 때까지는…. 선영은 그 후로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살 수밖에 없었다. 삶에 바빴고, 방송에 바빠서였다. 요즘은 더 바빠지고 있지만, 그래도 주님을 새롭게 만나니, 삶이 정말 즐거운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는 안선영이다. “딸 따라 교회 와서 사윗감 골라보면 되잖아!” 하는 타협안(?)을 포함한 ‘투쟁’ 끝에 교회 나온 엄마가 “할렐루야 아멘” 할 때 합장하는 습관이 아직 남아 있긴 하여도, 안선영은 즐겁다. 보는 우리도 즐겁다.


글 이한민 / 사진 도성윤



안선영은 일찌감치, 수석으로 들어간 경성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시절에 부 산의 연극 무대(신의 아그네스 중 닥터 마샤 리빙스턴 역)에 섰고, 뮤지컬배우를 꿈꾸며 영국 왕립연극학교 준비반으로 언어연수를 갔었다. 지금도 영 어공부를 꾸준히 한다지만, ‘남자의자격’ 가족합창단 편에서 아프리카 지라니 합창단의 통역을 맡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영국 유학중에 IMF가 터지며 어머니 사업이 기울자 급거 귀국, 아나운서와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며 방송계에 입문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 DJ를 했고, 이제는 예능은 물론 TV드라마 연기에까지 폭을 넓히며 종횡무진 활동 중이다. 그리고 얼마 전, 교회 다닌다는 소문이 들렸다. 남산에 개척한 드림의교회(이상화 목사)에서 성경공부를 하며, 결손가정돕기 자선바자회와 서울역 노숙자 밥퍼 봉사도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초신자인 어머니를 배려해 원래 다니던 온누리교회 열린예배에 참석중이라는데, 방송인 출신의 설교자 조정민 목사도 부산 출신이라 부산 토박이 어머니가 좋아하신다고 귀띔 했다.


 가족합창단 할 때, 호스피스병동에 위문 공연 간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거기가 목사님이 대표인 기독교 호스피스 병원이잖아요. 가서 보면서 저는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오늘 내일 하시는 분들이 거 기 계셨는데,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하시는 거예요.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게 감사하고, 석양이 붉게 타며 지는 모습이 감사하다는 거죠. 그거야 말 로 값으로 치를 수 없는, 세상 어떤 그림보다 값진 그림이잖아요. 그 말씀 듣고 엄청 울었어요. 그 분들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그런 걸 모르고 살았던 제가 부끄러워서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제가 최근에 신앙을 다시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기적이고 작은 인간 이다 보니까요, 그 방송에 출연해서 내가 무얼 얻는다는 생각보다 엄마를 위해 희생한다는 자만심이 컸던 것 같아요. 

방송에서 보시는 것처럼 제가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이랑 말하는 거 싫어해요. 카메라 불 켜지면 일처럼, 솔직히 일이니까 하 는 거죠. 배우 주상욱 씨랑 러브 라인 설정하고 엄마 캐릭터 만들어주고 내 몫 다하면, 말하자면 방송분량 채우고 나면 뒤에 빠져서 쉬고 있는 것이죠. 그 방송도 일처럼 했던 거예요. 그런데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일반인을 만나게 되잖아요. 

특히 작년에 합창단 했던 분들 가운데 배우 차태현 씨 부모님 같은 신실한 크리스천이 참 많았어요. 김혜은 씨 부부라든지, 이광기 씨, 이아현 씨 같은 크리스천 연예인도 많았고요. 그러다보니 뜻밖에 그 합창단 하면서 엄마가 교회와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슬비 젖듯이 영향을 받게 되셨어요. 지금도 그때 합창단원끼리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는데요, 엄마에게 믿음이 심어지는 데 도움이 되시는 것 같아요. 처음 교회 가자 할 때는 저랑 싸우기까지 했었거든요. 저희 집안에서는 제가 (교회 나간 건) 처음이에요. (믿음의) 씨앗인 거죠.

성경 통독하고 신앙 지식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신앙과 종교의 기본은 사랑,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옛날엔 엄마한테 누가 불우이웃 성금 내라고 그러면 “내가 불우이웃인데 누구한테 주라 카노”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젠 남에게 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 기뻐지도록 마음이 바뀌신 것 같아요.


신앙의 불을 다시 붙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혼자 열린예배 같은 데는 다니고 있었어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영국에 유학 갔기 때문에 한인교회는 다니지 않고 (영어 배울 생각으로) 영어예배 갔던 게, 한국에 돌아와 좀 자유스러운 분위기인 온누리교회 영어예배에 가게 된 계기였어요. 

원래 엄마가 저를 위해 108배 할 정도로 열심 있는 불교신자였거든요. 외가가 다 그렇고. 집안에 누구 돌아가시면 절에 다 모시고 친척 어른 중에 보살님으로 불리는 분도 계시니까. 하지만 장사 다니셔야 하고 누가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 제가 주일에 교회 가고 몇박몇일 교회수련회 간다고 해도 오히려 잘 됐다며 어릴 때는 상관 안 하시더니, 그래서 중학교 때까진 교회 성가대도 했는데, 고등학교 입시생이 되니까 교회에서 남자들이 “이번 주는 와 안 오노” 전화도 하니까 싫으셨나 봐요. 야단맞고 못 가게 됐어요. 

그랬는데, 유학 다녀와서 신앙에 갈증이 생기게 됐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힘들면 교회 가서 기도한다거나, 필요한 성경구절을 찾아본다거나 해야 하는데, 모태신앙인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그런 게 와 닿지 않았어요. 이걸 누군가 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데, 없었던 거예요. 사실 방송계만큼 유혹 많고 신앙 지키기 어려운 세상이 따로 없는데, 주변을 가만히 보면 10년 이상 방송도 잘 하시고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신앙심이 깊으세요. 이성미 집사님이 그렇고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요,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제가 작년 봄까지 한 3년간 매일 4시마다 SBS ‘안선영의 라디오가 좋다’를 진행했거든요. 거기 나온 게스트 여덟 분 중에 일곱 분이 모태신앙, 거의 다 크리스천인 거예요. 그 중엔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 간 가수 에스더(본명 한에스더)도 있었거든요. 방송하면서 알게 모르게 제가 영향을 받았었나 봐요. 신앙이 더 깊어져야겠다는 막연한 갈증이 있던 상황이었는데, 하루는 방송 도중에 “아무개 가수 무슨 노래 듣겠습니다” 해놓고 노래 나가는 사이에 에스더에게 별 심각하지 않은 느낌으로 제가 이랬어요. “에스더야, 너 요즘 남산에 무슨 개척교회 나간다면서? 목사님이 말씀 좋다며? 나 심도 깊게 성경공부 하고 싶은데, 거기 데려다주면 안 될까”

노래는 끝나 가는데 에스더가 그냥 아무 소리 않고 펑펑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머, 얘 왜 이래” 말리니까, 생방송이니까 간신히 참더니 이러더라고요.

“언니 위해 100일 특별새벽기도 했거든. 오늘이 100일째였거든!”
알고 봤더니요, 게스트들끼리 짜고 저를 위해, 제 신앙심에 불이 붙도록 같이 중보기도하고 있었다고 해요. 너무 감사하지 않아요? 연예인은 대개 고집이 세서 누가 어디 가자고 그래도 잘 안 가요.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니까 속으로 늘 갈증은 있어도 쑥스럽기도 하고, 어디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거든요. 그래서 주변에서 저한테 교회 가자고 말하고 싶어도 말 못하고 있었던 건데, 저 스스로 가겠다고 그랬으니….




돌아오는 시간이 많이 걸린 건, 그동안 바빴던 것도 한 이유였겠죠.

늘 바빴죠. 하지만 커플끼리도 사랑한다면 아무리 바빠도 문자 할 시간은 있을 거잖아요. 
언제든 눈 감고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나…” 하고 기도하면 되는데, 너무 힘들고 어렵고 팍팍하게 살다보니까, 더구나 나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도 없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도 막연했어요. 하나님께 어떻게 대화할지 몰랐던 거죠. 네 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데, 그래도 엄마는 기죽는 딸로 키우고 싶지 않으셨나 봐요. 외삼촌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계셨는데, 아빠도 거기 같이 있다고 하셨어요. 거짓말이란 건 초등학생 때 알았는데, 외삼촌이 외제 운동화, 외제 장난감 사서 아빠 이름으로 보내주니까 그런 줄만 알았죠. 
그 덕분에 제가 그늘 없는 성격이 된 것 같아요.


보면 언제나 즐겁고 밝아보여서, 그런 그늘을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살던 부산 양정 집의 옆집, 앞집, 뒷집에 어머니 형제가 모여 살았어요. 숙모와 사촌동생은 같이 살았고, 밥도 머리 들이대고 같이 먹었어요. 방학이면 양산에서 젖소 목장 하는 이모 집에 갔는데, 소죽 끓이는 가마솥에 물 끓여 번갈아 목욕도 했어요. 여름엔 개구리, 잠자리 잘 잡고 우물가에서 빨래하고, 겨울에 언 저수지에서 썰매 타고, 그냥 ‘촌년’이었죠. 개학하면 돌아와 사촌언니 세 명이랑 한 방에서 자기도 하고 같이 목욕탕 가고, 그래서 다행히 씩씩하게 큰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인데, 돌이켜보면 제 인생을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돌보시고 인도해주셨던 것 같아요.

엄마가 생활력이 좋으셔서 방문판매하다가 나중에 화장품 가게도 여러 개 하셨는데, 제가 어릴 때 누구에게도 못 맡길 날이 가끔 있었어요. 그러면 저를 데리고 이웃 부자 동네 가는데, 저는 그런 동네 사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태어나서 처음 본 욕실 있는 화장실도 기웃거리고, 엄마가 아줌마들 얼굴에 로션 발라주는 사이 그 집 아이 하고 잘 놀아주면 칭찬 받곤 했어요. 

하루는 어떤 집 아이가 잘 놀다 먼저 제 얼굴을 할퀴기에 싸웠는데, 그 자리에선 나만 혼내는 거예요. 억울해서 엉엉 울고 그 집을 나오는데, 엄마가 “선영이 니가 잘한 기다. 괘안타 마. 지지 마라!” 하시던 게 잊히지가 않아요. 

우리가 사는 동네는 가난했어도 유니폼 입는 유치원 다니는 애는 저뿐이었고, 부촌에 방문판매 다니면서 좋은 옷 구해 입히셨어요. 지나놓고 생각하니 좀도둑도 많고 우범지대였는데, 그런 데서 어떻게 무사하게 컸는지 몰라요. 돈 없고 백 없는 제가 부산 KBS 어린이 프로그램 MC가 되고, 인터넷방송 아나운서 시험 합격해 서울로 오고, 대학 후배와 콤비로 MBC 개그맨 시험에 같이 봤다가 후배는 떨어지고 저는 어떻게 붙었는지…. 마침 그 해에 박미선, 이경실 선배님을 이을 여자 MC 감을 뽑으라는 지침이 있었다네요. 다들 튀는 복장인데 저만 정장 입고 백지연 앵커 성대모사를 했었거든요. 나는 내가 열심히 살아서 된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고, 그러니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 싶은 거지요.



받은 은혜를 어떤 감사로 표현하십니까?

방송 시작한 지 만 10년이 넘었는데요, 
험난한 연예계에서 그동안 한 주도 쉬지 않고 일이 들어오는 게 신기하고, 주변에서 기도 많이 해주셔서 다시 신앙 갖게 된 것, 다 감사하지요. 교회 나가면서 서울역 노숙자 배식봉사 다니고 ‘문미엔’ 모임에서 분당에 봉사도 나갔어요. 노숙자에게 배식할 때 목사님이 가르쳐주셨어요. “이분들은 짐승이 아니고 상처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오히려 공격받을까 두려워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 마시고 사랑의 손길로 밥을 퍼주고 ‘맛있게 드세요. 축복합니다!’ 말해주세요”라고. 같이 봉사를 가신 분들이 제가 연예인이라고 그런 일 못 할 줄 아셨나 봐요. 제가 어릴 때 동네에서 거지 많이 봤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두려워하면 안 되는 거 알거든요. 밥 더 달라 떼써도 “안 돼요. 드시고 다시 오세요!”라고 당당하게 말 걸면 오히려 좋아하세요. 그 밤에 축복송 불러드리고 밥 드린 것뿐인데, 알코올 중독자가 삶의 의지를 찾겠다고 일어나실 땐 감동이었어요.

저도 아빠 없이 자랐지만, 지금도 결손가정에서 자라면서 재능이 있어도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미술 하고 싶고 음악 하고 싶은 아이들 후원하려고 바자회를 네 번 정도 했어요. 아는 기업체 찾아가 상품 협찬도 받고, “내 결혼식 왔다 생각하고 와서 도와줘” 그러면 주변에서 와서 재능기부하고 물건도 사주고 그래요. 바자회 끝나면 꼭 쌍코피 터지고 앓아눕곤 했는데, 그 성취감이란 방송 100개 할 때보다 나아요.



바라는 기도제목이 있다면

사람들은 말하죠. “네가 뭔데 나서냐? 그런다고 세상이 변하냐” 저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십자가를 지고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줘요. “나도 아빠 얼굴 사진으로밖에 못 봤지만, 소녀시대와 같이 방송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잖아. 너도 누군가와 함께 멋진 일을 할 수 있어!” 희망을 말해줄 수 있거든요. 그런 멘토가 되고 싶고요.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드라마나 다른 일들을 하고 있지만, 다시 DJ를 하게 된다면 좀더 중심이 바로 선 상태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말씀의 향기를 내면서 친근한 방송인으로 오래 활동하고 싶고요. 저로 인해 모든 가족이 하나님 만나기를 기도하죠. 엄마가 믿음이 더 바르게 깊어지셨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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