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저 새가 무슨 새라고 했지.” “몇 번이나 대답해야 아시겠어요. 까치요, 까치라고요.” 이어령 선생의 책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시공미디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고요한 가을날 까치 한 마리가 뜰로 날아왔습니다. 치매기가 있는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뭐지.” “까치요.” 아버지는 조금 후 다시 묻습니다. “얘야, 저 새가 뭐지.” “까치라니까요.” 아버지는 창밖을 보시더니 또 묻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라고 했지.” “몇 번이나 대답해야 아시겠어요. 까치요, 까치라고요.” 그때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안타까운 듯 말씀하셨습니다.
“아범아, 너는 어렸을 때 저게 무슨 새냐고 100번도 더 물었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까치란다, 까치란다.’ 100번도 넘게 대답하시면서 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 그래서 네가 말을 배울 수 있었단다.”
그래요. 자식놈은 귀찮아하지만 아버지는 100번도 1000번도 대답하시면서 우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일본의 하이쿠(俳句) 시인 이시가와 다쿠보쿠의 ‘어머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장난삼아 어머니를 업어보고 그 너무나 가벼움에 울며 세 걸음도 걷지 못하네.” 어머니 대신에 아버지를 업어 보아도 그렇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 6:2)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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