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득도(得道), 즉 깨달음을 얻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문자 그대로 일체 만물의 근본이 무엇임을 보고 알았다는 뜻이다(중략).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때를 가장 위험한 때로 간주한다.”
이재철 저(著) ‘참으로 신실하게’(홍성사, 21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득도의 단계는 이른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을 보는 단계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의 다른 면을 보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의 깨달음에 들어선 것을 가지고, 마치 모든 도를 완성한 듯 착각할 수 있기에 가장 위험한 단계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초기 수도자들은 사막에서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막에서 수도자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극적으로 신비한 체험을 할 때, 마귀가 살며시 다가와 속삭입니다.
“굉장한 깨달음이야! 이 길로 사람들에게로 어서 달려가 그 신비한 경험을 나누고, 무지한 그들을 깨우쳐야지!” 사명감을 고취하는 듯한 말 같지만 실상은 인정과 박수를 받으라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나는 깨우친 성자이고 너는 무지한 백성이라는 교만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제대로 깨우치면 산을 산으로 보면서 겸손합니다. 얼치기로 깨우치면 강은 강이 아니라고 하면서 교만해집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82717&code=23111512&sid1=fai&sid2=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