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가톨릭은 하나의 거대한 권력 기구였습니다. 700여개의 교구를 거느린 교황은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보니 중세 가톨릭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이 심각했습니다.
예컨대 교황 요한 12세(955∼963년)는 부패한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죄를 범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성당을 헐고 새롭게 건축을 할 때 성당 마루 밑에서 발굴되던 영아의 유골들은 당시 성직자들의 도덕성을 보여줍니다.
유명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하우다의 성당 신부와 가정부 사이에 출생한 사생아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성(性)인 맥태거트(MacTaggart)는 ‘사제의 아들’이란 뜻이며, 맥냅(MacNabb)은 ‘수도원장의 아들’이란 뜻에 기원했습니다. 1447∼1517년 어간의 교황들은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나온 경구가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전인적인 구원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그러나 성직자의 삶과 인격에서 배어 나온 메시지와 목양이 그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게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뜻 깊은 해가 저물어갑니다. ‘나는 성도들에게 디딤돌이 되는 목회자인가, 걸림돌이 되는 목회자인가.’ 진지한 고민이 가슴속에 일어나는 아침입니다.
글=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60772&code=23111512&sid1=fai&sid2=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