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아직도 살아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어디에? 어째서?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F W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홍신문화사·145∼146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C S 루이스는 현세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존재의 깊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관심하다. 오직 어떻게 해야 성공할 것인지 고민할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인생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인생이고, 둘째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서 답을 찾으며 헤매는 인생입니다. 니체는 영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어디에, 어째서 사는지 모른다면 살아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 해답을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초인의 힘’으로 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초인도 거인도 없습니다. 죄성이 가득한 괴물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구원할 만한 초인의 가능성조차도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영원의 삶에 다다를 수 있을 뿐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4100&code=23111512&sid1=fai&sid2=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