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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를 지도했을 때 일입니다. 아끼는 자매 둘이 심하게 다퉜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놈들이 더 위해주고 사랑하기는커녕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워?’ 단단히 혼찌검을 내줄 요량으로 단번에 한 놈씩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혼을 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녀석은 서러운 울음을 터뜨려버립니다. 사전에 준비해간 멘트는 순간 다 사라지고 ‘많이 속상하지’하며 위로모드로 급전환합니다. ‘전도사님, 글쎄 그 친구가 그럴 줄 몰랐어요.…’ 눈물이 마를 때까지 상한 속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사연을 다 들어준 후에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며 마무리합니다. 물론 녀석과 다툰 다른 청년을 찾아가서도 그대로 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가 어찌 안보이겠습니까. ‘너는 이게 문제야. 반드시 고쳐라’는 말처럼 쉬운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 입고 아픈 마음에 진실로 공감하고 동의할 따름입니다. 누구 편을 들 수 없는, 끔찍하게 사랑하는 제자들이니까요. 하지만 스승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무심한 제자는 자꾸 진실의 전부를 요구합니다. ‘제겐 잘못이 없어요. 모두 저 친구 잘못이에요.’
아뿔싸, 목사가 돼보니 어른 성도들도 매 한가지인 거 있죠. 오늘도 저는 절반의 진실만 말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목사의 일상을 살아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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