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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소리가 없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네(此時無聲勝有聲).”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비파행’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배경이 없으면 꽃이 풍경으로 피어나지 못하듯 말 또한 침묵의 배경이 없으면 깊이와 향기가 없습니다. 가장 깊은 진실, 푸른 창조는 침묵 속에 존재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파직당한 뒤 원균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해 궤멸합니다. 선조 임금은 대안이 없자 이순신을 다시 복권시킵니다. 연전연승하던 자신을 고문하고 명예를 짓밟아 놓았지만 다시 전쟁터로 나가라고 합니다. 이순신도 사람인데, 증오와 적개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침묵합니다. 그의 난중일기에는 군관 병사와 마을의 노인, 심지어 한경 돌쇠 해돌 자모종 등 노복들의 이름들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억울함은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오히려 조국을 사랑하는 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 침묵을 바탕으로 명량에서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가장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서도 잠잠한 양처럼 침묵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의 말없는 비우심,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는 예수님의 침묵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한재욱 서울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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