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도움을 청하는 수십 통의 서신이 온다. 대부분 담당부서에서 겉봉만 보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겉봉을 개봉하지도 않은 채 버려진 우편물을 발견했다. 그 안의 내용은 절절했다. 사모가 폐암으로 오늘 생명이 끝날는지 내일 생명이 끝이 날는지 모르는 위기에 있다고 한다. 수술비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도움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 절박하고 애절한 편지를 본 이상 한참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얼마의 돈을 보낼까. 아니면 위로의 편지를 보낼까. 아니면 내일 새벽에 온 교우들과 함께 기도를 드릴까.’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래도 얼마의 수술비를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여 담당 부서장에게 개봉한 편지와 함께 “예산이 허락되면 재고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메모지를 붙여서 주었다. 이 일 이후 깜박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나서 담당부서에 확인해 보았다. 답은 기계적이었다. 이런 사연을 다 들어주자면 우리교회 예산을 다 끌어다 써도 모자란다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나의 영혼을 망치로 치는 소리가 있었다. ‘난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하였나’라는 것이다. 이젠 그리스도인들이 돈보다 기도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나부터 말이다. 기도는 죽은 자도 살게 한다. 그렇다면 ‘기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다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기도보다 더 큰 능력이 돈이라 생각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쯤 될까.
윤대영 목사(부천 처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