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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수녀 - 이해인 (지식인의 서재)

축복의통로 2013. 1. 1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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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노래하는 맑은 시로 심금을 울리는 이해인 수녀. 2008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뒤로는 외부와의 만남을 절제하고 있습니다. JTBC가 4년째 암 투병중인 이해인 수녀를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기쁨을 충전해주는 공간, 서재

나에게 서재는 마법의 성과 같아요. 내가 즐겁게 취미생활 할 수 있는 놀이터도 되고, 어떤 시상이 떠올랐을 때 글을 쓰는 작업실도 되고, 좋은 책을 찾아서 읽는 독서실이며, 지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기도 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마법의 성 같은 장소이죠. 저는 수녀원에서 문서선교라는 소임을 하기 때문에 그 혜택으로 (수녀원에) 이렇게 큰 방과 책이 있는 서재를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서재라는 공간은 나에게 기쁨을 재충전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곳이에요. 문서 선교를 하고 있지만 ‘문서선교실’이라는 이름은 딱딱하다고 해서 ‘해인글방’이라는 부드러운 이름을 붙이고 거기서 주로 글 쓰고 있어요.

마음이 담긴 소중한 편지 문학

70~80년대만 해도 사람들이 손 편지를 많이 썼어요. 책을 보고 독후감도 적어 보내기도 하고, 영혼의 외침이나, 메아리를 담은 편지의 표현들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버리기가 아깝더라고요.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30년을 모아오다 보니 이제는 많은 자료가 되어 편지 문학 이라는 장르로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떻게 할건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버리지는 못하고 그래서 (사진과 같이) 다 분류를 했어요. 노란 색은 장애를 가진 분들, 원고지 딱지를 붙인 분들은 문인들, 하얀색 종이를 붙인 분들은 수녀, 신부, 성직자들, 그 다음에 하늘색으로 딱지를 붙인 봉투에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 요즘 모든 것을 다 이메일로만 하고 손 편지를 안 쓰니까 이러한 편지들이 굉장히 귀한 자료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보관을 하고 있어요.

시와 함께하는 따뜻한 만남

어린 시절에는 <소공녀>, <소공자>, <안데르센 동화> 같은 것을 많이 읽고, 언니 오빠들이 김소월이나 윤동주의 시를 외우는 것을 들었어요. 오늘날은 유명해진 분들이 시를 많이 투고하셨던 <학원>같은 문학잡지도 보면서 나도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전 5시 반에 시작하는 아침기도부터 공동으로 보내는 하루 일과가 틀 안에 짜여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 시간이 넉넉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일요일이나 휴일, 자유시간, 또는 아침 먹고 한 시간, 점심 먹고 한 시간 정도 틈틈이 책을 보거나 밤에 주로 책을 보고 있어요. 예전에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많이 읽었지만, 요즘은 너무 무겁고 분량이 많은 것을 읽는 것은 건강 때문에 힘이 들더라고요. 시집은 계속 많이 발간되고 짤막짤막해서 읽기 좋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에도 읽고 잠들기 전에도 읽고 있어요. 시집의 좋은 내용은 표시해두었다가 노트에 옮겨 적거나 복사를 해서 좋은 손님들이 오면 하나씩 나누어주고 있어요. 함께 차를 마시면서 시를 읽고 그러면 마음이 풍요롭고 따뜻한 만남이 되더라고요. 책 속에 있는 글자들이 만남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는 것이죠.

아픔 속에서 경험한 글의 치유 능력

가까운 분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추모의 글이라고 할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신한 기도문을 엮으면서, 위로를 대신 받았어요. 내가 아픔을 경험하고, 슬픔을 위로하는 치유의 추모시를 쓰면서 편지도 많이 오게 되고 독자들도 부쩍 늘어난 것 같아요. 몸이나 마음이 아픈 분들이 정신적으로 위로를 받고 싶어서 많이 기대오는 것을 느껴요. 그러한 것들도 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내 아픔을 통해서 아픈 사람과 벗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참 고마운 일이겠구나 생각을 하죠. 내가 아플 때의 경험을 노래한 것,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슬픈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을 독자들이 자신하게 하는 말인 것처럼 공감하는 것을 보면서 글의 힘, 글의 치유 능력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었어요. 내가 더욱 겸손하게 글을 써야겠구나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어떻게 논의하나 싶어서 포에트리테라피(시치유) 워크숍에도 일부러 참석도 했어요. 글의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되니까 정말 기쁘더라고요.

슬픔을 달래줄 수 있는 소박한 노래를 쓰고파

나의 시집을 많은 독자들이 읽어 주면서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독자로 남아있고 싶어요. 앞으로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되거든요. 그 동안 내 시의 주제로 굉장히 소소한 일상을 담아왔지만, 제 문학을 나눠보자면 2007년도 암 투병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프기 전에 생각하고 표현했던 것과 아프고 나서의 인생관이 달라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시대의 아프고 슬픈 사람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소박한 노래들을 더 많이 쓰고 싶어요. 또 도전해보지 않은 동화 같은 장르도 써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요, 가능하다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삶을 시로 한번 정리해볼까도 생각해요. 자전적인 것을 소설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10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습을 시로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내 인생의 책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 보물창고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여중 시절에 제일 먼저 읽은 책이에요. 72년도에 출간된 500원짜리 책을 헌책방에서 다시 구해서 읽었는데, 윤동주 시인이 단 한 권의 시집만 내고 젊어서 세상을 떠나서 애틋한 그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고, 특히 <서시>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는 구절에서 내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결정적인 울림을 받았어요. 많은 국민들이 이 시집을 좋아하지만, 항상 갖고 다니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굉장히 마음을 맑고 평화롭게 해주는 우리의 모든 첫사랑 같은 그런 시집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라는 제목 자체가 주는 여운도 굉장히 깊고 맑기 때문에 좋아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기탄잘리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김병익 | 민음사
    중학교 때 문예반에서 읽게 되었던 타고르의 <기탄잘리> 신께 바치는 노래예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기도의 시를 나도 써보고 싶다는 갈망을 일깨워줬어요. 1994년도에 인도에 가서 타고르가 세운 학교도 가보고, 타고르가 입었던 옷도 만들어보고, 그 분이 연주했던 악기도 만져보면서 영혼의 위대함 같은 것을 다시 만나게 되었죠. 그런 경험들 때문에 감회가 더 깊어지고 내 종교적인 심성을 깊이 깨우쳐주는 책입니다. 타고르의 <기타잘리>나 <인생론> 같은 책은 번역본으로 보는 것이긴 하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을 거룩하게 해주는 우리 안에 있는 종교적인 거룩한 심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고르에는 못 미치지만 내가 쓰는 기도시가 사람들한테 작은 영향을 주게 되면, 나도 조금이나마 타고르 시인을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내가 수도자로서 시인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탄잘리
  • 바다의 선물
    앤 머로 린드버그 | 신상웅 | 범우사
    린드버그라는 사람이 쓴 <바다의 선물>이라는 책이 있어요. 바닷가에 가서 작가가 해변에서 예닐곱 개의 조개 껍질을 놓고 묵상하는 그런 이야기에요. 내가 있는 수녀원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가 나에게 참 많은 영성을 심어주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되면 <바다의 선물>을 읽기도 하고 바다에 대한 시를 많이 쓰게 되는데, 이 책이 조개 껍질 하나에서도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조개 껍질이라서 지금 이 방에 이렇게 조개 껍질이 많잖아요. 바다에 직접 나가지 않고도 바다에 사는 것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어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처럼 나에게는 고전과 같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 책입니다.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바다의 선물>입니다.
    바다의 선물
  • 논어
    공자 | 서문당
    우리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고전은 잘 읽지 않게 되는데, 내가 1982년에서 1985년까지 서강대학원 종교학과 다니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사서삼경을 배우게 되면서 특별히 <논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논어의 그리스도적 이해 같은 것들을 강의를 들었고요. 어떻게 하면 향기로운 인품을 가꿀 수 있는가 라는 것을 배우는데 있어 <논어>보다 더 좋은 책은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이 시끄럽고 부대끼고 조용하지 못할 때 성서와 병행해서 <논어>의 한 구절을 보면 마음의 평정심을 찾게 되어서, 덕의 길로 나아가고 인품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거든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논어를 어려워하지 말고, <논어> 문고판이라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수녀원에서 20~30년 전에는 <논어> 문고판을 가지고 예비수녀님들과 같이 좋은 구절을 읽는 시간을 가졌었어요. 너무나 짧지만 깊이 있는 진리가 담긴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논어>는 자주자주 머리맡에 두고 보는 그런 책이에요. 겨울이 되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 전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 는 구절이 특히 생각이 나요.
    논어
  •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 김영사
    우리 수녀원에서 한때 돌아가면서 많이 읽었던 책 중에 하나가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예요. 요즘은 글로벌 시대라고 하잖아요. 수녀원 안에만 있으니까 세상 소식에 어두울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여러 나라를 다니는 것처럼 여러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고, 종교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우리가 조금 더 객관적인 안목을 갖게 되고, 더 넓은 안목으로 다른 전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딱딱한 역사책을 읽으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힘들지만 만화 그림책이니까 읽기 쉽고, 읽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더라고요. 많은 국민들이 이 책을 읽었겠지만, 제목처럼 '먼나라 이웃나라'를 가깝게 느끼는 그런 계기가 되는 것 같아서 주변에 소개도 많이 하고 싶고 기회가 되면 또 읽고 싶은 그런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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