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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은 괜찮지만 삼류는 안 된다. ‘등’은 순위나 등급 또는 경쟁을 나타내고 ‘류’는 위치나 부류의 질적 가치를 나타낸다. 결국 삼류란 질의 문제로 ‘질이 형편없다, 그럴 가치가 없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시인 정호승의 시집 ‘정호승의 새벽편지’ 중 한 구절입니다. 일등이 꼭 일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일등이지만 삼류 같은 사람이 있고 삼등이라도 일류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삼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삼류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삼등을 축복하십니다. 꼴찌에게도 박수와 갈채를 보내십니다. 그러나 삼류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을 보면 일등처럼 보이지만 삼류 인생을 산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늘 일등이 되려 했고 일등처럼 보였지만 그 심령은 주님마저 부인하는 ‘삼류 교만 덩어리’였습니다. 반면 꼴찌같이 보이던 세리와 창기, 귀신 들린 자들은 주님의 은혜를 입고 응답했습니다. 이들은 일류 심령이 됐습니다. 예수의 사도들은 학벌도, 사회적 지위도 없는 삼등 같았습니다. 그러나 일류 제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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