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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의 5분 - 도스토예프스키

축복의통로 2015. 7. 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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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활동[편집]

1861년 형과 함께 잡지 《시대》를 발간하고, 《학대받는 사람들》, 《죽음의 집 기록》을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듬해 발행 금지를 당하였다. 1864년형과 함께 새로운 잡지 《세기》를 창간하였으나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 1866년 걸작 《죄와 벌》을 완성하였다. 1867년부터 외국, 특히 드레스덴에 거주하면서 《백치》, 《악령》 등을 쓰고 귀국하였다. 1874년 《미성년》을 발표하여 큰 돈을 벌어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베리아 유배 시절에 악화된 지병인 간질[1] 과 취미로 즐기던 도박 등이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한 요소들로 간질과 도박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도박은 그의 인생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하여 마감에 쫓기는 나날을 보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죄와 벌》, 《도박꾼》 등은 불러주는대로 받아적는 구술 필기의 형태로 작성되었다. 속기사였던 안나 스니트키나는 훗날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소설 이외의 저서로는 《작가의 일기》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잡지 《시민》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담당했던 문예란[2] 에 게재했던 것으로, 문예 지평[3], 정치·사회평론, 에세이, 단편 소설, 강연 원고[4], 종교론[5] 등을 포함하고 있어 훗날 도스토옙스키 연구에 귀중한 문헌 자료가 되었다.

1880년 그의 최후의 걸작인 장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하였다. 그 즈음에는 이미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눈이 어두워져 있었고 도스토옙스키가 침대 누워 구술한 것을 아내 안나가 속기하여 작품을 완성했다.[6]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81년 1월 28일에 폐동맥 파열로 인하여 가족의 간호를 뒤로하고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임종 직전 아내에게 시베리아 형무소에 있었던 시절 지니고 있었던 성경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같은 날 밤 11시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죽었다.[7] 유해는 같은 달 31일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사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1%9C%EB%8F%84%EB%A5%B4_%EB%8F%84%EC%8A%A4%ED%86%A0%EC%98%99%EC%8A%A4%ED%82%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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