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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성경의 표현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하며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됩니다.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비난이나 생각지도 못했던 배신을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부당한 의심이나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참기 어려운 상황을 참아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에게 참음을 요구하는 구체적 대상은 맞닥뜨려진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이 야기한 마음의 분노인 것도 잘 알 것입니다. 즉,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할 때, 무엇을 오래 참으라는 것인가 하면 바로 자신의 치솟아 오르는 감정인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확 솟아오르는 격렬한 감정을 오래 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쉬웠다면 이 세상에는 살인이나 폭력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어려운 것은, 사랑이 감정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랑을 마음이 자연스레 흘러 간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마음 끌리는 대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욕입니다.
참된 사랑은 언제나 인간의 본성을 거스릅니다. ‘사람들 속에 사랑이 있으니 그것을 북돋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무지가 낳은 순진한 발상입니다. 인간 안에는 아무리 뒤져 봐야 죄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통해서만 거룩한 삶이 성취되듯이, 사랑도 자기 안에 솟아난 악한 감정을 누르는 오래 참음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도모하려면, 늘 육적인 자아를 억누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감정도 영혼의 통제 하에서 적절히 억눌러지지 않으면 더러운 정욕으로 흐르게 되고, 서운한 마음도 통제되지 않으면 미워하는 감정으로 발전하고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살인의 감정으로까지 흘러가고 맙니다. 우리는 거룩한 억압 없이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없는 매우 강력하고 특별한 통제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 김남준 목사의 고린도전서 13장 묵상 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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