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四旬節, The Lent)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렌트(Lent)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란 뜻을 갖는 명칭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한다. 이는 부활 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하여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절기이다.
한편 40이란 수는 예수께서 40일동안 광야에서 시험받으심, 40일간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금식,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 생활, 예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 등과 같이 성경에 여러 번 고난과 갱신의 상징적 기간으로 등장한다.
이에 고난 주간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의 구속을 위해 수난을 당하신 사건에 담긴 구속사적의의를 살펴보며 자신의 신앙을 재 각성하고자 비교적 긴 40일간의 절제 기간을 갖는 것이 바로 사순절이다.
1. 시기
사순절(四旬節)은 대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부활절 전 40일간의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을 말한다. 이는 부활 주일부터 거슬러 올라 가기 시작하여 주일을 뺀 40일 간의 기간이며, 특별히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는 날은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이라 불린다.
사순절 기간이 40일로 처음 결정된 것은 A.D,325년 니케아 회의(council of Nicea)에서였다. 따라서 교회 역사 가운데는 꼭 40일이 아닌 기간 동안 사순절의 의미를 갖는 절기가 지켜지는 경우도 많았다. 과거 동로마 교회에서는 부활절 준비 기간으로 7주를 지키되 토요일은 제외하고 일요일도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신 '성 주일'만을 포함해 36일을 이 기간으로 지켰었다. 서로마 교회도 6주간을 지키되 주일을 제외한 36일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정했다. 이러한 관습은 니케아 회의 후에도 게속되어 얼마 동안은 오늘날과 같은 40일간의 절기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후 7세기 무렵 서로마 교회가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의 첫 주일까지의 4일을 포함하면서부터 오늘날과 동일한 40일간의 사순절을 철저히 지키게 되었다. 또한 이 기간 대표적인 행사로 지켜졌던 자신의 죄와 그리스도의 대속을 생각하며 금식하는 것도 사순절 기간 내내 행해진 것이 아니라 2,3일 동안만 행해 봅駭?
한편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부터 시작되는데, 이 날은 재의 수요일, 성회 수요일, 속죄일 등으로 불리워진다.
2. 유래
사순절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준비하며,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가진 금식을 행하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유월절 전에 금식을 행했는데, 초대 교회 성도들도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라는 차원에서 구약의 유월절 만찬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님께서 제공하신 성찬식에 잎서 금식을 행했던 것이다. 또한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절에는 새로 영접되는 성도의 성례식이 있게 되는데, 세례 예비자들은 이때 세례와 입교(入敎)를 받기 위하여 두 주간의 준비기를 두고 금식과 기도로 신령한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부활절에 있을 세례식을 준비하는 세례 예비자들은 물론 이미 성도로 영접된 사람들 모두 금식과 기도 생활에 힘썼다.
사순절 행사로서의 금식은 수세기 동안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사순절의 식사로는 저녁 전에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으며, 물고기와 고기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8세기 이후로 가면서 이 규정은 많이 완화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금식 기도 대신에 절식 기도가 행해졌으며 ,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 되었고, 저녁 시간에도 간단한 식사인 콜레이션(collation)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연극, 무용, 연애 소설 읽는 것과 같은 오락 해위는 여전히 금지되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 생활 등도 자제되었다. 대신 자선과 예배 참석, 기도 등이 권장되었다.
한편 어떤 곳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3일 정도의 '사육제'(canival)가 거행되었었다. 이 사육제는 원래 '육이여'(carni), '안녕'(vale)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교적인 영향을 받은 이 축제의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는 사순절과는 대조적으로 술과 고기를 먹었으며, 가장 행렬 등의 인간의 쾌락 본능을 자극하는 행사들이 행해졌다. 그러다가 1517년 종교 개혁이후 종교 개혁자들은 형직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교회의 의식 철차들을 폐지했는데, 이때 사순절에 관계된 많은 의식들도 간소화 내지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회개의 시기로 지켰던 중세 교회의 사상은 받아들여 공동기도문 중 사순절 기도문의 주제를 회개로 삼는 등, 계속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있다.
3. 풍습
(1) 종려나무의 재로 이마에 십자가 그리기
종려나무를 태운 재 혹은 숯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풍습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에 행해지던 풍습이다. 이때 사용되는 재는 지난해 종려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를 태워 만든 것으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대속의 죽음으로 이끌었던 인간의 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렸다. 이는 또한 아름다운 풀과 꽃이 잠깐 후면 마르고 시들 듯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도 잠시 잠깐 후면 사라지고, 한 줌의 흙에서 왔던 우리도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엄숙한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우리의 삶의 자세를 정비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금식 기도
금식은 사순절의 가장 중요한 관습이었다. 시기와 장소에 따라 금식의 기간과 그 엄격성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속 사역을 기리고 하늘 나라의 백성됨을 감사하며 그 백성된 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돌이키게 하는 금식 기도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행해졌었다. 오늘날 행해지는 금식 기도는 엄격했던 초기의 형태에서 많이 변형되어 절식(節食) 기도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2. 유래참조).
(3) 구제와 선행 베풀기
사순절에는 범죄한 인류를 위해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와 자선이 행해졌다. 특히 사순절에 행해지는 금식 기도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의 동참, 불의한 자신에 대한 회개 뿐만 아니라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과 가난을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실천에 있음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랑을 본받아 이를 실천함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라 할 것이다.
4. 주요 행사
(1) 금식 기도
사순절은 자기 근신과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의 마음 자세를 살피고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재정비하는 영적 훈련의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갖은 핍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피흘리심으로 인해 그들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진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에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난을 기억하며 금식 기도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고 무리한 금식은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도 있으므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절식 형태의 금식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어린이들이 금식 기간에 식사와 군것질 등을 절제해 모은 돈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하면 교육적인 면에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명이 사순절 기간 동안 기도의 순서를 정해 놓고 돌아가면서 금식 기도하는 기도회 형식의 모임을 가지고, 서로의 경험과 받은 은혜를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구성원들간의 유대를 강화시켜 나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2) 사순절 주일 예배
사순절 절기 안에는 6번의 주일이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사순절의 각 주일에는 단계와 특색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순절의 첫째 주일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사단에게 시험받으셨음을 생각하며 지낸다(마 4:1-10).
사순절 둘째 주일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마 4:11).
사순절의 셋째 주일은 빛과 어둠의 대립 즉, 빛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어둠의 세력인 사단과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말씀(요 1:1-18)을 생갹하며 예배를 드린다.
사순절의 넷째 주일은 사순절 중간에 끼어 있어 '사순절중절' 또는 '휴양 주일'(休養週日)이라고 불린다. 이 주일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위한 고난과 사단과의 싸움 등을 다루는 사순절의 다른 주일과는 달리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것으로 말씀을 삼는다(마 14:13-21).
사순절 다섯째 주일은 고난 주일이라고도 하는데, 이 주일의 명칭은 주님이 자신에게 임할 고난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셨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때는 가룟 유다에게 팔리어 고난받으셨던 주님에 대해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마 20:18,19).
사순절 여섯째 주일, 즉 종려 주일(Palm Sunday)에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군중들에 관계된 말씀을 본다(마 21:1-11). 종려 주일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종려 주일'과 '고난주간'을 참조하라.
(3) 사순절 달력 작성
그리스도의 수난 과정을 담은 사순절 달력은 가정 예배시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어진다. 사순절 달력은 40일간의 사순절 기간과 그 기간에 포함된 6번의 주일을 포함하여 만드는데, 달력 안에 각 날에 관련된 성경 구절과 찬송, 그리고 묵상 주제 등을 기입한다. 사순절 달력은 교회에서 주관하여 만들 수도 있고 가정에 어린 자녀가 있을 경우 부모가 자녀와 함께 만들 수도 있다. 어린 자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순절 달력의 그날 그날의 주제를 그림으로 그려 넣기도 한다.
(4) 무언극
무언극(無言劇)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얼굴 표정만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의 한 형태이다. 사순절은 요란한 행사보다 조용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간이므로 사순절 관련 말씀을 무언극 형식으로 꾸며 이를 통한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언극은 행동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 주제가 쉽게 전달될 수 있는 소재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무언극에 출현하는 배우도 명확하고 큰 몸동작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주제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효과음과 음악을 사용하면 극의 깊이와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순절 무언극의 소재로는 사단에게 유혹받으시는 예수님(마 4:1-11), 백성들에게 배척당하시는 예수님(눅 9:51-56) 등의 이야기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주일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을(마 28:1-10) 소재로도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부활절 예배 자료로도 사용된다.
5. 관련 성경 자료
(1) 그리스도 구속 사역의 예표
유월절 어린양(출 12:5; 요 1:29)
희생 제물(출 24:6-8)
속죄제로 인한 생명의 속함(출 30:10,15,16)
속죄일(레 16:30)
(2) 구속의 목적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갈 3:13)
우리를 불법에서 구속하시기 위함(딛 2:14)
새 언약을 세우시기 위함(시 111:9)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기 위함(롬 3:24)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함(롬 5:1-5)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기 위함(엡 1:14)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사 44:23)
우리를 주의 처소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출 15:13)
(3)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
① 성부의 사역
미리 예비해 놓으심(눅 2:30,31)
일정한 시기까지 감추어 놓으심(고전 2:7)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심(롬 8:32)
② 성자의 사역
친히 인간이 되심(히 2:14)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심(살전 5:10)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심(벧전 1:20)
속죄 제물이 되심(사 53:10)
인간을 대신하여 피 흘리심(막 14:24)
단한번의 드리심으로 구속 사역을 이루심(히 9:24-28)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롬 8:15)
③ 성령의 사역
구속의 진리를 예언함(요 16:13)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준비함(눅 1:35)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성도에게 적용함(고전 12:3)
교회를 설립함(행 2:1-4)
교회를 지키심(히 10:15)
(4) 구속 전에 인간의 상태
죄인이었음(롬 5:8)
그리스도 밖의 사람이었음(엡 2:12)
마음으로 주와 원수였음(골 1:21)
(5) 구속의 결과
영생을 얻음(요 3:16)
평안을 얻음(요 14:27)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갈 3:28)
정죄받지 않음(롬 8:1,14)
성령을 받음(롬 8:2)
능력을 얻음(빌 4:13)
(6) 구속을 입은 성도의 의무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드리는 생활을 함(엡 5:20)
성령과 동행해야 함(요 14:16)
소망 가운데 거함(골 1:5)
진리에 따라 살아감(요삼 1:3,4)
선한 생활에 힘씀(살전 2:12)
하나님께 간구하기에 힘씀(약 1:5)
(7) 절제해야 할 것
언어(딤후 2:16)
음식(잠 25:16)
과다한 오락(눅 21:34)
잠과 성생활(잠 6:9; 고전 7:1)
(8) 경건하게 되는 방법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딤후 3:14-17)
기도 생활에 충실함(딤전 2:1,2)
부모가 경건하게 양육함(삼상 1:11)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함(딤전 4:7)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림(딤후 2:16)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함(딛 2:11-14)
(9) 경건한 자의 결과
범사에 유익함(딤전 4:8)
시험에서 구원받음(벧후 2:9)
번영함(잠 3:9,10)
멸망에서 구원 얻음(벧후 2:5)
하늘의 상급 얻음(계 14:13)
(10) 금식에 수반해야 할 것
기도와 죄의 고백(느 9:1,2)
울며 애통함(욜 2:12)
겸비함(신 9:18)
말씀 묵상(렘 36:6)
(11) 금식의 참된 목적
회개하기 위함(시 69:10)
기도의 상달을 위함(사 58:4)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기 위함(욘 3:5,10)
육신을 영에 복종시키기 위함(고전 9:25-27)
건강과 병의 치유를 위함(사 58:8)
하나님의 인도를 위함(마 7:21)
특별한 능력을 얻기 위함(마 7:21)
시험을 이기기 위함(마 4:1-11)
(12) 바른 금식의 8대 원칙
겸비한 자세로 함(신 9:18)
죄의 고백을 반드시 수반함(삼상 7:6)
울며 애통하며 하나님을 기억함(슥 7:5-7)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음(스 8:23)
말씀을 상고하며 함(느 9:3)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하지 않음(마 6:16)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믿으며 함(마 6:1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함(사 58:6)
(13) 하나님의 사죄 및 용서의 특징
인자를 무한히 베푸심(출 34:7)
노하기를 더디 하심(민 14:18)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심(시 32:3-5)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심(시 78:38)
사유하기를 즐겨하심(시 86:5)
죄과를 멀리 옮기심(시 103:12-14)
죄를 주의 등 뒤로 던지심(사 38:17)
죄를 기억치 않으심(렘 31:34)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심(요일 1:9)
6. 사순절 기념 예배 자료
시험당하신 예수님(마 4:1-11)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 공생애를 시작하심에 앞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주님께서 인간과 동일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당하신 이러한 시험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러 형태로 항상 존재 합니다. 주님이 당하신 시험의 유형에 대해 살펴봄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죄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① 물질로 유혹했습니다(3절) -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물질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단은 이러한 약점을 알고 성도를 유혹합니다. 이에 주님은 나그네로 잠깐 머무는 이 세상에서의 필요를 채우는 것보다, 하나님께로 온 영적 양식을 취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요 6:27). 자녀가 무엇이 필요한지 그 부모가 알듯이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자녀된 성도의 필요를 모르시겠습니까? 따라서 성도는 물질로 인해 받는 시험을 주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4절).
② 세상 영광으로 유혹했습니다(5,6절) - 사단은 오늘도 우리에게 현실과 조금만 타협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기와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6:24). 이처럼 세상의 영광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과는 양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벧전 1:24).
③ 세상 권세로 유혹했습니다(8,9절) - 사단이 보여 주는 세상의 권세는 너무나 위대하게 보입니다. 사단은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이러한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증거처럼 영광과 존귀와 경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늘 백성으로 영원한 권세를 가진 자로서 어찌 그것을 하찮은 세상의 권세와 바꿀 수 있겠습니까?(계 2:25,26)
주님은 이 모든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람인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승리는 이미 사단을 이기신 주님을 의지할 때만 가능합니다. 항상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의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빌 4:13).
마라의 교훈(출 15:22-26)
마라란 '쓴물'이란 뜻으로 광야 여정 중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난 오아시스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물은 너무 써서 아무리 목마른 백성이라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마라에 이르게 하셨을까요. 백성을 마라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인생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① 마라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 사람이 사는 인생은 고행(苦行)이라 할 만큼 우리의 인생에는 마라와 같은 시련과 고난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시련은 세상 사람의 삶 속에는 물론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의 삶 속에도 존재합니다.
②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 됩니다(25절) - 하나님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마라의 쓴물을 맛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또다른 축복을 맛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마라의 쓴물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③ 마라의 극복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26절) -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 되기에 앞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무릎꿇고 기도했을 때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간단히 바꾸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우리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모든 문제는 이렇게 쉽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고난을 극복하신 후에 온전한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주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과정입니다. 그의 뜻 안에서 온전히 연단되어 축복의 단물을 마시는 우리가 됩시다(벧전 1:7).
고난의 유익(롬 8:17)
사람들에게 있어 고난은 반갑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난의 유익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고난은 우리에게 화가 아닌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럼 고난이 인생들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고후 12:9) -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지만 마음이 굳어져 버린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도,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고난은 이러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며 그러한 연약함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케 합니다.
② 하나님을 의뢰하게 됩니다(고후 1:9) - 인간은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인데도 교만하여 스스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고난은 이러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게 하여 절대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바라고 의뢰하게 합니다.
③ 장차 올 영광을 생각케 합니다(롬 8:17) - 성도는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위로하심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께 받은 위로는 이땅에서의 삶은 나그네의 삶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에게는 영원한 본향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는 성도에게 있어 고난은 슬픔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광에의 참여인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에 비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고난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됩시다.
고난을 기뻐한 바울(고전 15:31; 갈 6:17; 골 1:24)
각 교회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는 고난받으셨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도 바울의 눈물어린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 길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고난의 길이라도 기뻐하며 나아갔습니다. 바울의 신앙 고백을 통해 동일한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 봅시다.
① 나는 날마다 죽었노라(고전 15:31) - 바울은 매일의 삶 속에서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을 위해 우리의 죄악된 성품과 세상적인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②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 바울은 예수의 흔적, 즉 진리의 증거함으로 오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며 그를 온전히 좇아가는 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③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신에 채우노라(골 1:24) -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도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그러한 바울에게 주님은 넘치는 사랑과 위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난은 그에게는 차라리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혹 우리는 주님의 길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그 고난의 길은 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영광이나 바울의 영광이 고난 뒤에 온 것임을 기억하며 고난을 이기는 자가 됩시다(벧전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