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기도하며/영성나눔

트로트 CCM 가수, 구자억 목사 - 갓피플 커버스토리

축복의통로 2014. 10. 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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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에 젊은 목사가 출연해 큰 화제가 됐다. 프로그램은 케이블 음악방송 Mnet의 ‘트로트엑스’(Trot X), 이른바 성인가요로도 불리는 트로트를 다양한 가수들이 노래하는 경연장이다. 어떤 선입견에서나 통념(?) 때문이든, ‘그런 곳’에 목사님이 가수로 등장하리란 상상일랑 그 누가 해보았으랴.

주인공은 바로 ‘세계 최초 하나님의 뽕짝가수’를 자처하는 구자억 목사(35세).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나온 뒤 2013년 부천 대장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25사단 상승교회에 군목으로 파송된, 엄연한 목사 맞다. 동시에 정규 앨범 3장, 싱글 앨범 5장을 낸 6년 차 트로트 CCM(현대 기독교 대중음악) 가수이기도 하다. (갓피플에서 ‘구전도사’를 검색하면 그의 자작곡 전부를 들을 수 있다.)

그런 그가 더구나 양복도 아닌 녹색 추리닝 차림에다 ‘할렐루야’를 등에 써 붙이고 여성도(女聖徒) 둘까지 빨간색 추리닝 입은 백댄서(할렐루야 시스터즈)로 대동을 하니, 이건 영락없이 동네 백수 청년들의 친목회 형상 아닌가. 




하지만 그것조차 ‘놀랄 일’의 서막에 불과했다. 핵심은 그가 등장과 동시에 춤을 추며 과감히 불러 당당히 대중 방송을 탄 자작(自作) CCM ‘참말이여’다. 가사는 이러하다.

“아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것는디 / 하나님 인간이 되셔 이 땅에 오셨다고 / 아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것는디 / 하나님 날 대신해서 대신 죽어 주셨다고 // 이리저리 사방팔방 둘러봐도 / 어디가 예쁜 구석 있어서 /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 그 목숨을 내준단 말이여 // 근디 참말이여 성경에 써 있든디 / 하나님 인간이 되셔 이 땅에 오셨다고 / 진짜 참말이여 성경에 써 있든디 / 하나님 날 대신해서 대신 죽어주셨다고…”

비록 철자법을 조금 무시한 사투리풍이긴 하나, 누가 보더라도 기독교 핵심 복음을 증거하는 내용 아닌가 말이다. 사실 이 노랫말 때문에 원래 방송국에선 (그의 출연을) ‘주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추리닝 차림으로 재미있게 해보겠다고 제안하여 결국 방송을 탈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여하튼 출렁이는 강물 위를 유유히 가는 배처럼 댄스트로트 리듬과 흥겨운 멜로디를 ‘참말이여’가 타고 흐를 때, 화면은 놀라면서도 즐거워하는 심사위원과 방청객들을 자주 비춰주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심사위원들의 낙점을 하나도 받지 못해 그는 탈락하게 된다. 개그맨 박명수의 요청으로 방송을 위한 축복기도를 무대에서 한 다음 개인기 요청을 받아 몇 곡을 이어 불렀는데, 유명한 가요에 가사만 살짝 바꾼 것들이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사랑하는 예수님과 영원히 살고 싶어”(남진 ‘님과 함께’). 
“어쩌다 마주친 주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뒤바꿔버렸네”(송골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믿음이 약해서 전도를 못했네 내 옆에 앉은 김 집사 짜라자짜자짜”(들고양이들 ‘마음 
약해서’).

그날 방송은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다행히 ‘엑스타임’ 추가 기회에 가수 태진아의 낙점을 받아 본선에 진출, 몇 달에 걸친 방송에 참가한 그는 마침내 3위로 마감을 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이제 본격적인 트로트 가수로 데뷔할 줄 알았다. 실제로 방송국과 기획사들의 손길이 잇닿았다. 마침 보궐선거 때라 선거로고송 사용 요청도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제안을 겸허히 거절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일종의 선언문을 담담하게 남겼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늘 해오던 대로, 아골 골짝 빈들이나 초가삼간 크나 작으나 가리지 않고 불러주시는 대로, 다시 전국을 순회하며 찬양집회를 다니고 있는 중이다. 

그를 만나 묻고 싶었다. 한때 세상도 폄하했던 장르가 트로트인데, 그래서 찬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 있는 트로트로 왜 찬양을 하게 된 것인가? 목사로서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일반 방송에는 왜 도전했는가? 

글 : 이한민 | 도성윤

노래 잘한단 소리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겠어요.
전혀요. 기타 치는 건 좋아해서 전공할까도 생각했어요. 대학생 때 군대 다녀와 음악(기타) 하려고 1년간 학교를 쉴 정도였죠. 그런데 기타가 생각보다 제겐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음악은 나를 표현하는 건데, 벽에 부딪힌 거죠. 열심히 하면 하긴 하겠는데, 기타를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복학해서 한동안 신학 공부만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학교 축제 때 노래자랑 상금이 5만 원이라며, 나가서 상금 받아 치킨 사라고 후배가 부추겨 나갔는데, 노래를 불렀을 때 사람들이 호응하고 열광하는 걸 느낀 거예요. 그 여운이 일주일을 가더라고요. 노래의 맛을 그때 알았어요. 

기타는 가사를 표현할 순 없지만 노래는 내가 곡을 쓰고 가사로 표현할 수 있으니 좋더라고요. 그래서 노래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보컬 아카데미에 등록했어요. 그때 전도사 한 달 사례비가 40만원인데 18만원은 기숙사비 내고 20만원을 과감히 학원비로 투자했죠.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요. 

찬양사역은 원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다가 축제를 통해 마음의 결단을 한 거죠.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 뭔가 하지 않으면 음악과 영원히 멀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처음부터 트로트를 배운 건가요?
좋은 노래 선생님을 만났는데 저에겐 리듬앤블루스가 어울린다고 하셨어요. 휘성 같은 R&B 가수들의 노래를 선생님이 많이 시키셨는데, 어떤 특정 장르를 좋아해서 배웠다기보다는 한 2년간 노래를 배우면서 어떻게 숨을 쉬고 목을 사용해야 하는지, 노래의 기본기를 익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예요. 제게는 정말 값진 시간이었죠. 트로트는 아주 나중 이야기죠.


가요를 찬양으로 바꿔 부른 게 많더라고요.
선생님이 숙제로 가요 부르기를 매번 내주시는데 그게 마음이 편치 않아요. 사랑과 이별 노래, ‘제발 내 곁에 돌아와줘’ 하는 노래를 왜 불러야 할까. 노래는 내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는 건데 감정을 담고 싶어도 담기지가 않는 거예요. 그때도 내겐 예수님밖에 없었거든요.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를 바라보며) 지금은 아내도 있지만(웃음). 사람들이 사랑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교회 나가고 예수님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노래 숙제의 가사를 바꿔 부르곤 했어요. 

어느 날, 학교 샤워실에서 샤워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걸 누가 옆에서 들었나봐요.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주님을) 뵙고 싶다’로 바꿔 부르고 있었거든요. 그걸 들은 분이 은혜를 받았나 봐요. 자기네 교회 집회에 오기로 한 분이 펑크를 냈다고, 말하자면 전문 용어로 ‘공연 땜방’인데요, 처음 섭외가 들어온 거예요. 그렇게 우연처럼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됐죠. 

보통 교회에서 친구초청축제라고 불러놓고는 찬송가나 CCM만 불러서 정작 초대된 친구들을 왕따시키잖아요. 하지만 제 노래는 다 아는 거니
까, 강수지의 ‘보랏빛향기’를 ‘보혈빛향기’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불 맞은 것처럼’, 바이브의 ‘술이야’는 ‘말씀이야’로 부르니까 다 같이 부르는 거죠. 학교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또 교단 학교니까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친구초청잔치 전문은 구 전도사라는 소문이 돌고, 그렇게 사역을 시작했어요. 20대 후반일 땐데 교회서 부르면 어디든 가고 청소년 집회에서 말씀도 전하고요.

그러다 트로트 할 생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루는 청소년 집회에서 제 순서 마치고 가려는 길에 정말 우연히 여자 집사님, 권사님들 하시는 말을 듣게 됐어요. 수련회 가면 식당 봉사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그 분들이셨어요. 제 순서 다음에 찬양 밴드가 아주 신나는 곡을 연주해서 아이들이 펄펄 뛰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걸 부러운 눈으로 보고 계시다가 이러시는 거예요. 

“우리도 저렇게 신나게 찬양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왠지 모르게 찡했어요. 돌아오는 내내 잊혀지지 않는 거예요. 교회 문화가 너무 젊은 세대에게만 집중됐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 어른들의 희생으로 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는데 이상하게도 교회 현장은 어른들을 위한 문화가 없다는 거죠. 안 그래도 내가 다른 가수의 노래를 바꿔 부르기만 하기보다 내 노래로 음반을 내볼까 고민하던 참에, 록발라드 같은 일반 CCM은 나 말고도 할 사람 많으니까 나는 저분들을 위해 트로트 찬양을 만들어보자 생각했어요. 


어른들은 교회 다니시나 안 다니시나 트로트는 다 좋아하시니까. 그래서 2009년에 첫 앨범으로 ‘주님밖에 없어요’ ‘꽉’ 같은 곡을 냈죠. 기존 찬송가도 트로트로 편곡해서 수록하고요. 

제가 처음 낸 앨범이고 또 첫 트로트 CCM인데, 반응이 궁금해 어떤 댓글을 남겼을까 하고 살펴봤죠. 그랬더니 맨 처음 달린 댓글이 이거예요. “이건 아니잖아.” 나는 이런 마음으로 냈는데 사람들은 그 깊은 마음까진 못 보시는구나 하는 (섭섭한) 생각은 있었어요.

트로트 찬양, 호불호가 너무 선명하지요? 별일을 다 겪어봤겠어요.
2009년 아는 목사님이 초청해주셔서 처음 사역했을 때 성도님들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내게 주신 길은 이 길이구나 싶어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트로트로 사역을 다녔는데, 안 좋아하는 분도 있고 오해하시는 분도 계세요. 하루 종일 차 타고 지방 먼 곳에 내려갔는데 어디 거룩한 예배당에 뽕짝 가지고 들어오느냐고 장로님이 막으셔서 본당도 못 보고 돌아온 적도 있어요. 

한번은 어떤 권사님이 오라시기에 그 교회 앞까지 갔더니 관광버스에 저를 바로 태우시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버스 안엔 여전도회 회원들이 타고 계셨고, 전도회장인 그 권사님이 직권으로 저를 초대하신 거였어요. 덕분에 ‘관광버스 사역’도 해봤잖아요. 또 한번은 오라 해서 갔더니 잔칫집이더라고요. 그냥 뽕짝가수인 줄만 아셨나 봐요.

그래도 어디서 확신을 얻었냐 하면,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트로트를 무척이나 좋아하신다는 거예요.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권사님, 장로님들이 춤을 추실 때, 정말 이게 필요하셔서 나라는 사람을 들어쓰시는구나 알게 됐어요.

이후 음반을 계속 내셨는데, 트로트만 하신 건가요?
2집, 3집, 그 사이 2.5집으로 다음세대(청소년)를 위한 음반도 계속 냈고요. 저는 원래 록음악을 좋아해서 내 음악을 청소년에게도 나누고 싶어서요. 작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낸 게 3집이에요. 고전적인 트로트죠. 1집이 세미트로트라면 2집은 댄스트로트, 겪어보니 어른들은 역시 고전트로트를 가장 좋아하신다는 걸 알게 되어서요. ‘참말이여’가 3집 수록곡이죠, 주로 그런 전도용 노래들을 담았습니다. 

제 노래는 모두 자작곡들입니다. 교회에서 음악을 접하면서 찬양을 해온 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 같고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수능 앞두고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도 기타를 치고 찬양을 해야 잠을 잘 정도였어요. 그런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찬양을 좋아한다’와 ‘하나님을 좋아한다’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죠. 목사님은 어느 쪽인가요?
사실 예전에는 모호했어요. 말로는 제가 하나님 좋아서 찬양했다고 해도 그건 천국 가봐야 알 것 같고(웃음). 요즘에는 당연히 하나님을 더 좋아해서 노래를 하는 거죠. 


신학을 하게 된 계기는? 하나님이 좋아서(같이 웃으며)?
계기는 따로 없었고, 친할머니가 저를 어려서부터 무릎에 앉혀놓고 주의 종이 될 것이라고 서원하셨기 때문이에요.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건 군대 가서도 경험했지만 사실 신학교 기도동아리 들어가 자주 수련회 가서 기도하니까 뜨거워지더라고요. 우리가 자족적인, 내 만족을 위한 신앙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말하자면 내게 좋으면 좋은 교회라는 식의 신앙인 건데, 하지만 진정한 신앙이란 나의 만족과 기쁨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대학 초년기에 하나님을 만나면서 많이 느꼈던 거죠.

군대 가서 군종병이 된 건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군대 가기 전 한 달간 작정기도 하며 군종병 되기를 바랐는데 안 들어주셨어요. 게다가 제일 힘든 최전방 강원도 인제 박격포 부대에 간 거예요. 버림받았다 싶고 서운한 마음 가운데 상병이 됐는데 제 위로 아무도 없어요. 이젠 편하게 지내겠다 싶은데 연대 교회 목사님이 불쑥 오시더니 절더러 군종 하라시네요. 선임 군종이 제대했다고. 기도하는데 그냥 제 얼굴이 자꾸 떠오르시더래요. 제가 신학교 다니는 것도 모르셨으면서. 그때 솔직히 하나님이 무섭더라고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긴 하는구나(웃음)! 

지금도 군목이시잖아요.
한 7년간 전도사로 사역한 교회의 파송인데요, 감리교회는 안수 받을 때 단독 개척을 하든지 기관 배치를 받든지 해야 하는데 저는 조금 더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군대 교회 소속을 택했던 거죠. 파주 적성에 있는데 매주 갑니다. 

군대 친구들은 제가 노벨상을 타와도 별로 관심 없을 걸요. 뭐 무슨 방송에 나왔나보다 하고 그냥 똑같아요. 제가 남자이기 때문이죠. 이번에 트로트 엑스 3등을 하고 내심 장병 친구들이 좀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예배 인도하러 갔더니 다들 하는 말이 이래요. “홍진영(가수, 여자 심사위원) 예쁘죠? 전화번호 알아요? 친해요?” 1등 하면 상금으로 걸스데이, 소녀시대 섭외해서 위문공연 추진해보겠다고 호언했거든요. 1등 못했으니 천하의 역적이 된 거죠. 나라를 구한다 해도 제가 남자인 이상…. 에휴(웃음). 

그래도 방송하신 보람이 있으실 텐데.
교인이시지만 저를 안 좋게 보시는 분들도 조금 계시더라고요. 하지만 제 방송 보시고 떠나 있던 교회를 다시 다닐 마음이 생겼다 하시거나, 불신자이신데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는 분들의 고백도 많이 들어 힘이 나더라고요.

엉뚱한 질문을 하죠. 트로트 엑스엔 왜 나간 겁니까?
저는 크리스천이 모든 걸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교회 안에 세상 사람에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장 좋은 복음이 있지만 그것 말고도 사랑, 평화, 기쁨, 승리 같은 좋은 가치가 얼마나 많아요. 누구는 건강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그걸 말하고 음식을 잘 만들면 레시피를 소개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이 좋은 것도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종교 편향은 안 된다는 세상 장벽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쌓은 문화의 담 때문에 예수님이 가진 매력을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세상 방송국이 저를 왜 방송에 내보냈을까요? 제가 목사이지만 과감히 가운을 벗어던지고 백수 추리닝을 입고 웃긴 안무로 춤을 추고 세상 사람조차 조금 낮춰 보는 트로트로 노래했을 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코드가 된다고 본 거예요. 하물며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잖아요. 그깟 추리닝 입고 트로트 하나 불렀다는 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일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 일에 불과하나요? 

우리들은 거룩이라는 말을 오해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들 하는데, 그건 예수님 생각과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으려고만 오신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려주러 오신 거예요. 예수님의 소통 방법은 빛이신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시고 인간의 끝자락까지 낮아지신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도 더 낮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사실 목사가 됐을 때 이젠 더 이상 트로트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안수하신 목사님이 권면의 말씀으로 “목사 됐으니 더 낮아지고 섬기라” 하시는데, 그 말씀을 저는 트로트 사역을 계속 더 잘하란 말씀으로 받았어요. 

그리고 트로트 엑스 나간 진짜 이유는, 하루는 제가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지라, 도전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나서 느낀 게 있어서예요. 정작 그러는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도전하는 게 전혀 없었죠. 그때 마침 후배가 장난으로 트로트 엑스 참가 홍보영상을 보여줬고, 저는 그걸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도전장으로 생각했어요. 


마지막 질문, 이왕 세상에서 유명해졌는데 원래 자리로 돌아온 이유는?
저는 제가 한 이 도전을 후배 사역자들이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울타리 안에만 있고 세상과 담을 쌓아서는 안 되거든요. 동시에 저를 부르신 자리가 있다는 걸 저는 압니다. 이 일을 경험하면서 더 확신하게 된 것인데요, 콜라보레이션 하면서 만난 세상적인 가수들도 한번은 교회 가봤더라고요. 그런데 그들이 다 지금은 왜 교회 다니지 않는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싶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이 교회 머무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아는 어떤 친구는 타투(문신)를 좋아하는데 교회 갔다가 마귀 취급 받고 쫓겨났대요. 국악 하는 자매 하나는 교회에서 굿 하냐며 쫓겨났고요. 예수님은 받아주시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받아주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요? 그런 사람들 다 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이 필요하겠다, 그런 사람들을 섬길 목사가 필요하겠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는 교회를 하면 작은 소극장을 하고 싶거든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는 공연을 하는 거예요. 예배도 드리고 공연도 하고, 그게 세상을 향한 섬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음새가 되고 싶어요. 교회 봉사는 대개 자족적이죠. 교회가 교회 안만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아서요. 교회 밖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 사이의 이음새가 되는 목회를 하고픈 겁니다. 

트로트 엑스 경험이 앞으로 제가 어떻게 목회해야 할지에 대해 귀한 교훈을 주었어요. ‘참말이여’ 노랫말처럼 저는 참말 같은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많이 부탁드려요. 


구자억 목사 페이스 : www.facebook.com/PastorKu

공식 홈페이지 : www.trotcc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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