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제게 많이 질문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세상 문화와 자녀양육에 대한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흔히 가지고 노는 팽이나 카드, 보는 책(포켓몬스터, 메탈블레이드 등 거의 대부분의 일본 캐릭터 장난감)을 정리해야 하는지, 정리하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물어보십니다. 찾다보면 아이들 양말에까지 있으니까요. 아이들과 함께 정리를 하다보면 ‘진짜 이걸 다 버려야 하나?’ 하며 엄마가 더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왕 마음먹고 시작했다면 깨끗이 정리할 것을 권하지요. 자녀들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면 다른 아이들과 세상 문화와 철저히 분리시켜도 괜찮다고 봅니다. 분리가 장애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몹쓸 것에 물들어서 아이들이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애들은 다 있는데 우리 아이가 소외되지는 않을까, 심심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면 아이들의 놀이문화에 대해서 엄마가 기도하며 좀 더 고민해보기를 권합니다. 얼마든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릴 때 남들 다 있는 디지몬 카드 같은 것을 한 번도 못 가져봤습니다. 그러나 동네에 나가서 놀 때면 아이들이 그런 카드 따위는 놔두고 우리 애들을 따라 뛰어 노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가 진짜의 가치를 알고 누리면 가짜들은 빛을 잃고 맙니다.
또한 TV 시청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는데 TV를 보는 행동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남의 집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영에 악영향을 미치는 영상과 메시지들이 대부분인 것은 확실하기에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TV를 볼 수 있는 자유는 있으나 그 자유를 누리다가 나와 아이들이 세상이 전하는 메시지에 조종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죠.
부모의 책임과 관심과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이 쌓이거나 심하게 피곤해서 쉬고 싶을 때 TV(요즘은 스마트폰)처럼 편리하고 효과 좋은 베이비시터(baby-sitter)도 없겠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TV를 오래 보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고 몸 전체의 리듬과 순환을 깨는 일입니다. 우리 집에 TV가 없어서 그 영향이나 증상들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명절에 친척 댁에 방문하게 되면 오랜만에 TV를 보니 허겁지겁 끝도 없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우선 아이들의 눈이 굉장히 피곤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두통도 호소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될 수 있으면 TV에서 떼어놓고, 같이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줍니다. 이렇게 못할 정도로 피곤하고 지치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차라리 아이와 누워서 같이 잠을 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TV만 보려고 한다면 TV 외에 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아이에게 가르쳐주려는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엄마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형제가 서로 깨가 쏟아지게 재밌게 놀 수 있도록 엄마가 해줄 역할은 없을까요? 아이가 혼자라면 엄마의 수고가 더 필요하겠지만, 엄마와 재밌게 실컷 놀아본 아이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습니다.
아이가 심심해하는 걸 못 보는 엄마들이 있는데 그럴 것 없습니다. 심심하다는 것, 참 소중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심심해서 혼자 빈둥빈둥하는 시
간이 아이에게 꼭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심심하다고 하면 엄마가 즉각 달려와서 이것저것 놀아주고 상대해주면 좋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요?
때로 엄마는 어떤 일에 열중하고 아이 혼자 시간을 보내게 해보세요. 이 순간 아이들은 십중팔구 TV를 요구하겠지만 차라리 음악을 트세요.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됩니다. 조용한 집에서 엄마는 자기의 일에 열중하고 혹은 열중하는 척하며 관찰을 하고, 아이는 이리저리 빈둥대다가 책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책에 나온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장난감이나 인형을 들고 혼자서 소리 내며 놀기도 하고, 혼자 선생님이 됐다가 학생이 됐다가 역할 놀이도 하고, 또 졸리면 잠을 자기도 하는 거지요.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불쌍해서 못 보겠다는 엄마들이 가끔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불쌍합니까? 저는 오히려 심심할 새가 없는 아이가 불쌍하게 보입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하루 가운데 이런저런 색깔의 날들이 많지만 어떤 날에는 엄마랑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되겠지요. 그러다 제 하고 싶은 걸 찾아내서 거기에 열중해보는 날들도 지내보면 아무리 개구쟁이 아들이라도 엄마의 분위기와 취향을 이해하고 따르는 센스쟁이 아들로 자랄 겁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TV, 수많은 장난감, 여기저기 가서 배우는 학원, 더 나아가서 하루 종일 읽어주는 책, 하루 종일 들려주는 영어테이프 … 이런 것들을 좀 치워보자는 말이었습니다. 24시간 돌아가는 컴퓨터가 아닌 이상 고요한 가운데 시계바늘 돌아가는 소리, 엄마가 살림을 하는 갖가지 소리를 들으며, 햇빛도 쬐고, 바람도 쐬고, 뒹굴뒹굴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겠죠.
그러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피아노에 올라앉아 뚱땅거릴 수도 있고, 책을 뽑아들고 읽을 수도 있고,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레고를 쏟아놓고 조립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기도 하겠죠. 이 빈둥거림 속에서 번개처럼 아이의 뇌리를 스치는 그 뭔가에 대한 호감도를 관찰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큰아들이랑 놀았습니다. 그러다 제 시간이 필요할 때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시간을 갖는 거죠. 처음에는 금방 엄마에게 오지만 나중에는 점점 길어져서 2시간도 넘게 혼자서 이것저것 침 흘려가며 열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