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하나님과 공동체가 만나는 거룩한 사건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교회의 위기로 나타났고, 교회의 위기는 다시 예배의 위기가 되었다. 교회가 사회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자 예배에 대한 경외심도 사라지고 있다. 기독교인조차 예배에 시들하다. 목회자는 예배에 빠지지 않기를 권하지만 교인들은 예배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진다. 오늘날 다시 한번 예배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만나다
예배는 ‘하나님과 공동체의 만남’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예배다. 개인이 혼자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배’가 아니다. 각 신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예배에 참여하며,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우리는 예배를 ‘드린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하나님에게 ‘일방적’으로 드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뭔가를’ 바치고,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예배자의 ‘만남’이 일어난다. 만남은 사건이다.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기에 거룩하다.
예배는 인위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배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에 이끌려 구체화되었다(행 2장). 초대교회 이후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적인 체험이 반복되면서 예배가 일정한 내용을 가지게 되었다. 예배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로 내용이 구성된다.
즉 말씀선포, 성만찬, 신앙고백과 기도, 찬양, 성도의 교제이다(행 2:46∼47 등). ‘선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고 결단한다. ‘성찬’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과 성도의 사귐이 일어나며,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죄에 대한 고백이 ‘기도’로 드려진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찬양’으로 표현된다. ‘성도의 교제’는 신자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나누는 교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선포되고, 성찬이 행해지며, 용서에 대한 확신, 회심, 축제와 같은 환희, 거듭남에 대한 체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소망이 감격적으로 넘쳐나는 것이 예배다. 예배의 시간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의해 일반 시간과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주5일제가 되면서 주말이 바빠졌다. 일요일이 부담이 되는 시대다. 예배를 반드시 일요일에 드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또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언제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보겠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 초대교회는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였고, 이 모임이 ‘예배’였다(행 2:42). 사도행전에 기록된 ‘그 주간의 첫날’은 일요일이다. 신약에 나타난 초기 교회는 일요일에 모여서 성찬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행 20:7a). 또 초대교회가 언제 예배를 드렸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 있다. 초기 기독교 문서 중에 ‘바나바의 편지’, ‘디다케’,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증문’ 등에서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던 기록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기독교 공동체가 처음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초대교회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었다. 이 날은 승리의 날이며, 옛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날이었다. 일요일은 부활과 승리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요일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날이라는 의미로 ‘주의 날(Lord's Day)’로 불렀다.
지금도 기독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을 줄여 ‘주일(主日)’이라 부른다. 즉 주일은 월력으로는 첫째 날이 되는 일요일이며, 의미는 예수님의 부활을 지시하는 ‘주의 날’이다. 그 후 기독교는 일요일을 새 안식일로 정하여 ‘주일’로 지키고 있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듯 일요일에 드리는 예배에 안식일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형식의 변화와 생활예배
각 시대는 예배에서 하나님과 가장 잘 교제할 수 있는 형식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인이 전통적인 예배 형식에 지쳐 있다. 형식주의는 예배를 경직되게 한다. 예배의 형식에 따라 예배의 감동이 달라진다. 100년 전 사용된 형식이 현대에 맞을 수 없다. 이 시대와 ‘대화성’을 가질 수 있는 형식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예배의 내용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훼손되지 않는 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몇 가지 예배 형식의 변화를 제시해본다. 성찬중심 예배, 고백중심 예배,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 실천과 봉사중심 예배 등을 개발할 수 있다. 또 연극·영상·음악·미술이 중심이 되거나 특히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한 형태가 필요하다. 교인들이 예배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거리에서 하는 예배나 행위예배 등 전위적 형식도 시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활예배’를 제안한다. 교인들이 매일 교회에 모일 수는 없다. 직장, 같은 지역 사람,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 친구끼리 모여 드리는 모든 종류의 예배를 ‘생활예배’라 부를 수 있다. 생활예배는 형식을 정형화하지 않고 탄력적으로 할 수 있다. 케이크를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는 형태도 좋다.
교회는 생활예배를 권장해야 한다. 교회가 교인들을 자신이 속한 교회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일요일에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으로는 한계가 왔다. 지역교회는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생활예배를 지원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생활예배가 활성화되면 삶과 예배의 괴리를 메울 수 있다. 생활예배의 성공이 교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