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슬픔, 한 그리스도인의 뜨거움, 한 선교사의 치열함으로 가득한 이야기 4월 26일 성공이 아닌 섬김의 삶이 찾아옵니다
◇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서서평) 선교사는 최근 그의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1912년부터 광주기독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셰핑 선교사는 간호사역과 교육, 전도에 힘썼다. 성경 지식에 해박해 ‘성경 말씀이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고 말할 정도로 말씀을 사랑했다. 틈만 나면 성경을 읽었고 “많이 읽을수록 성경 스스로 증거한다”는 말을 남겼다. 몸이 아파도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했던 셰핑 선교사는 말씀을 아는 것뿐 아니라 그대로 살았다.
그는 광주 직업여성과 불쌍한 걸식인, 한센병자들의 대모로 살았다. 고아 14명을 양자로 키웠다. 여성을 위한 활동에도 뛰어들어 광주 남문밖교회(양림교회와 제일교회의 전신) 부인 봉사활동을 위해 ‘부인조력회’를 조직했다. 조력회는 여성들의 헌금으로 좀도리 쌀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후일 한국교회 성미제도의 효시가 됐다.
셰핑 선교사는 초기 파송됐을 때부터 소화기계 한국풍토병으로 알려진 스푸르에 걸려 고생했으며 1934년 54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는 풍토병과 영양실조가 이유였다. 그는 쌀뒤주에 밀가루 2홉만 남겼고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는 데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녀의 장례는 광주 최초의 시민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