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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식목사 4

[겨자씨] 비가 첫눈으로 바뀌는 길에서

눈은 어둠을 밝히는 불꽃처럼 내려옵니다.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첫눈이 되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헤드랜턴을 켜고 떠나는 숲으로의 첫눈 여행입니다. 비가 내리는 것 같아 우산을 들고 나왔지만 우산이 우산(憂産·근심을 만들어냄)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스틱처럼 의지할 수 있기에 이 밤에 들어가는 숲길에도 외롭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니 저녁부터 내린 비가 고여 있는 곳에는 눈이 쌓이지 않습니다. 빗물을 다 흘려보낸 곳에만 눈이 쌓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아! 인생도 마찬가진가 봅니다. 가진 것을 자꾸만 내어주고 나눠주고 그냥 흘려보내주는 영혼에는 하늘이 늘 새로운 것으로 쌓아주나 봅니다. 눈이 내리는 밤에는 숲에서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하늘이 맞닿은 언덕이 더 좋습니다. 바람이 있는 언덕이지만 눈..

[겨자씨] 겨울로 가는 숲에서

부드러운 순모 목도리에 코를 묻고 두터운 코듀로이 바지에 손을 넣고 찾아간 겨울로 가는 숲에서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의 비릿한 내음이 맞이합니다. 그래서 겨울로 들어가는 숲에는 외로움보다는 앞서간 마음을 헤아리는 깊은 사색이 파도소리처럼 영혼을 깨웁니다. 겨울 숲이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파도소리로 마음을 데워주는 겨울바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열린 하늘이 바다와 같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만들어 내는 길을 따라 겨울로 들어가며 듣는 숲의 소리는 마음을 찰싹이는 바다처럼 평안케 합니다. 하늘은 어디에 있던지 그리움을 파스텔 색깔로 그려줍니다. 겨울 숲에서는 모두가 지난여름의 무성한 나뭇잎을 벗어버리고 가을의 결실들을 내려놓고 하늘 앞에 서 있기에 바다처럼 깨끗하고 평안한가 봅니다. 아! 그러고 ..

[겨자씨] 가을이 비 되어 내리는 날

가을이 비 되어 내립니다. 겨울로 떠나가는 마음이 미안했던지 조용히 내립니다.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안타까움이 소리 없이 비를 타고 전해옵니다. 숲은 가을과 비와 하늘로 하나 되어 갑니다. 빗방울 맺혀가는 손바닥에 시린 마음이 번지며 떠나야 하는 이와 보내야 하는 이가 함께 화해를 청합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내음이 빗방울 떨어진 낙엽 사이에서 피어납니다. 봄에 숲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피어나지만 가을은 나뭇가지에 내린 빗방울로 피어납니다. 가을비 맞은 영혼도 함께 익어가고 싶어 심호흡합니다. 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가을비에 젖어 빛나고 있습니다. 하늘이 비 되어 내리는 날에는 바람 따라 떠나간 나뭇잎의 빈자리를 가을비가 채워줍니다. 여름날 가려졌던 모든 것을 다 벗어버리고 앙상한 가지..

[겨자씨] 하늘로 채워지는 마음

‘솨’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고개를 들어 봅니다. 늘 머무는 곳이지만 며칠 사이 아름다운 단풍이 진 자리로 더욱 맑아진 하늘이 반갑게 얼굴을 내밉니다. 지난여름 숲 그늘에선 몇 번 고개를 돌려야 눈을 맞출 수 있었던 하늘이 이제는 고개만 들어도 마주합니다. 가을은 하늘이 열리는 계절인가 봅니다. ‘솨’ 숲을 지나는 가을바람에 파란 하늘을 향해 가녀린 나뭇가지 끝에 달린 단풍잎이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바람은 데려가려고 하고 가지 끝 작은 단풍잎은 아직도 바람을 따라갈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바람이 올 때마다 단풍잎은 햇살로 반짝이며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습니다. 아! 나뭇잎들도 떨어지는 순서가 있나 봅니다. 단풍든 나뭇잎들은 아랫가지에서부터 떨어지고 하늘이 가까운 높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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