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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욱 목사 4

기능적 존재, 관계적 존재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요셉은 히브리인을 천대하는 애굽 사회에서 바로왕 다음가는 총리로 살았습니다. 그는 바로가 지어준 ‘사브낫 바네아’라는 이름을 가졌고, 바로가 내려준 옷을 입고, 버금수레를 탔습니다. 그러나 고향과 가족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요셉은 20년 만에 형들을 만나 자신을 드러냅니다. “나는 요셉입니다. 형들의 동생입니다.” 애굽 총리로 살아가는 요셉에게 이것은 부정적인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애굽 총리로서 기능적 존재도 중요하지만 히브리인 야곱의 아들이요, 열두 형제 중의 한 명인 관계적 존재의 중요성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타인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건강한 존재감을 갖도록 창조됐습니다...

기도의 경쟁자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상가 교회당에서 부교역자로 지내던 시절, 새벽기도회나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교회 문을 잠그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에 나가야 하니 그때까지 기도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여전히 기도하는 분이 있으면 다시 앉아 인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도하고 일어설 때면 마지막까지 기도했다는 묘한 쾌감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금요기도회 때 기도할 것이 남아서 개인 기도를 위한 음악이 끝난 후에도 낮은 음성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음악이 끝나면 성도들이 기도를 마치고 일어섭니다. 몇몇 분의 나지막한 기도소리가 들리다 곧 적막이 흘렀습니다. 다들 기도를 마쳤나 싶어 저도 일어서려는데 어둠 속 저편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누군지 봐뒀다 나중..

열매 - 강신욱 목사(남서울평촌교회)

지난주 겨자씨 첫 글이 나간 후 교회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자신을 기억할지 모르겠다며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35년 전 주일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선생님” 부르며 통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어려서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분을 교회로 전도한 것이 저의 선친이었다는 것입니다. 선친의 독실한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아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귀향해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셨고, 믿음의 후손을 보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신앙을 최우선으로 두고 생활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복음을 전해준 선친과 주위 분들의 은혜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선친은 세상 재미를 버리고 늘 경건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아들로서 때론 그 모습이 답답하게..

겨자씨와 시간 - 강신욱 목사(남서울평촌교회)

어린 시절 읽으려고 펼친 신문이 이미 너덜너덜해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친 선친께서 조간신문을 먼저 읽고 가위로 기사를 잘라 스크랩하신 것입니다. 초등학생이 방학숙제라도 하듯 정성스럽게 신문을 오리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제 눈에 선합니다. 선친의 손때 묻은 책을 뒤적이다 누렇게 바랜 신문 조각이 곱게 끼워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바로 국민일보 ‘겨자씨’였습니다. 선친에게 ‘겨자씨’는 짧지만 긴 생각의 여운을 남기고 신앙적 도전을 던져주는 귀한 글이었습니다. 과연 제가 그런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염려가 듭니다. 이어 천국에 계신 선친께서 기뻐하시리란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했습니다. 시간은 참 묘합니다. 실체가 없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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