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마라나타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9.27 10:1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예수님의 재림은 십자가의 구속만큼이나 기독교의 중요한 신앙입니다. 과거의 십자가는 무한한 은혜로 여기고 생각만으로도 뭉클하면서 미래의 재림에 대해 불안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오신다면’이란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오늘 오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러십니까’라고 물으면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준비를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겠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준비를 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행을 잘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행을 믿는 율법적 신앙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단어가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십자가 복음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 역시 은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대와 감격의 대상입니다. 우리 모두의 입에 ‘마라나타’가 기쁨으로 고백되기를 원합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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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천국과 지옥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9.20 10:26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교회에서 천국과 지옥 이야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면서 처음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성경에서 ‘지옥’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하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성경에 ‘천국’이란 단어가 38번 나오는데 36번을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지옥’은 13회 중 11번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의 입에서 천국과 지옥이란 단어가 사라졌습니다. 신학교 시절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이 ‘죄, 회개, 지옥’에 대해 설교하면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니 그런 단어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란 단어가 교회에서 사라지는 것은 곧 목사와 성도의 뇌리에서 이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사는 목회성공이, 성도는 인생성공이 최우선 목적이 되고 하나님은 그것을 도와주는 ‘램프의 요정’처럼 된다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복음은 천국과 지옥을 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목사는 이를 설교하고, 교인들 안에서 천국과 지옥 이야기가 회복돼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많이 모으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것을 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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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인사말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명절 인사말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9.13 09:3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내일부터 닷새간의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흩어졌던 가족들과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정말 관심이 많아 묻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이 있었다면 평소에 연락해서 물었겠지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하는 인사말일 뿐입니다. “언제 취직하냐, 언제 결혼하냐, 공부는 잘하냐, 이번에 몇 등 했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인사말이므로 대답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인사말을 듣는 사람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손위 어른들이면 무례하게 반응할 수도 없어서 그저 상처로 남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인사말이 듣기 싫어서 가족모임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이번 명절에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 뭐냐”고 물어봐 주면 어떨까요? 단순히 장래희망을 묻는 게 아닙니다. 그냥 “네 소원이 뭐냐”고 하면 “아, 그렇구나”하고 끝납니다. 하지만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이란 단서가 붙으면 질문한 사람과 질문 받은 사람의 관계가 전제됩니다. 책임 있는 질문이라 막 던질 수도 없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질문 받는 사람에게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수 있습니다. 질문 받는 사람은 평소와 다른 접근방식에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는 인사말을 통해 가족과 친지 간의 관계가 더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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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이는 세상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다르게 보이는 세상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9.06 10:33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이 그림에서 뭐가 보입니까. 고개를 돌린 여인이 보인다는 분도 있고, 고개를 숙인 노파가 보인다는 분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만 보였지만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면, 보지 못했던 그림이 보입니다. 그림은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볼 때 재미있지만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가나안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40일간의 정탐을 마친 사람들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보았지만 정반대의 보고를 합니다. 열 사람은 “우리가 메뚜기 같다”고 했고, 두 사람은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열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일곱 족속보다 훨씬 강력했던 애굽을 몰락시키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우리도 육신을 가진 인간인지라 처음엔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주셨는지 기억하고,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행해주셨는지를 기억할 때 곧 우리의 시각은 교정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도는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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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사역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다음세대 사역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8.30 10:2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언제부턴가 ‘다음세대’는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대변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다음세대 사역을 한다고 하면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청소년부를 위한 집회를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주일학교는 반토막이 났고 청소년 복음화율은 4% 미만입니다.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아무리 개선하고, 청소년 집회를 참신하게 기획한다고 하지만 그 관심과 시각은 교회 안에 들어온 다음세대를 향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성격을 백 마리 양이 있는 주인이 울타리 안의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것에 비유하셨고,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 아홉 명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한 것을 더 기뻐한다 하셨습니다. 한국교회 상황을 비유하면 울타리 바깥의 양 아흔 마리를 두고 울타리 안에 있는 열 마리에게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걸 먹이고, 새로운 운동을 시키지만 그중 다섯 마리도 곧 울타리를 넘어갑니다. 

이제 교회는 다음세대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합니다. 교회 안의 아이들만 ‘우리의 다음세대’가 아니라 그 아이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이 ‘우리의 다음세대’입니다. 교회 밖 아이들에게도 십자가 복음은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이해하려 하고, 찾아가서 살아있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다음세대 사역’일 것입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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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존재, 관계적 존재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기능적 존재, 관계적 존재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8.23 10:0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요셉은 히브리인을 천대하는 애굽 사회에서 바로왕 다음가는 총리로 살았습니다. 그는 바로가 지어준 ‘사브낫 바네아’라는 이름을 가졌고, 바로가 내려준 옷을 입고, 버금수레를 탔습니다. 그러나 고향과 가족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요셉은 20년 만에 형들을 만나 자신을 드러냅니다. “나는 요셉입니다. 형들의 동생입니다.” 애굽 총리로 살아가는 요셉에게 이것은 부정적인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애굽 총리로서 기능적 존재도 중요하지만 히브리인 야곱의 아들이요, 열두 형제 중의 한 명인 관계적 존재의 중요성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타인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건강한 존재감을 갖도록 창조됐습니다. 부러울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그 기능적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관계적 존재를 찾아 자리를 내려놓는 것을 봅니다. 

관계적 존재는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기능적 존재만을 요구하는 각박한 사회에서 우리는 관계적 존재의 소중함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아빠와 엄마 대신, 돈 벌어오는 사람과 학업 컨설턴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능적 만남이 아닌 관계적 만남을 회복할 때 우리의 가정과 사회는 건강해질 것입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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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감사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기도와 감사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8.16 08:52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얼마 전 고교 동창생 SNS 밴드에 ‘더위 중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지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목사인 것을 아는 비신자 동창이 ‘기도해서 비 좀 내리게 하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친구는 무신론자로서 평소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댓글이 어떤 의미인지 와 닿았습니다. 저는 수련회에 가서 기도하겠다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수련회 중에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요즘 폭염 때문에 힘들어하고, 건강을 해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뉴스를 통해 독거노인이나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더위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 땅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대지의 열기를 식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한 제게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성도의 기도를 비신자 친구에게 보여줄 기회였습니다. 

지난주일 오후 수련회 장소에는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청년들은 열기를 식혀주는 비를 맞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를 내려주시기를 기도했던 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게 됩니다. 기도한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 사람은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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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경쟁자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기도의 경쟁자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7.26 10:1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상가 교회당에서 부교역자로 지내던 시절, 새벽기도회나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교회 문을 잠그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에 나가야 하니 그때까지 기도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여전히 기도하는 분이 있으면 다시 앉아 인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도하고 일어설 때면 마지막까지 기도했다는 묘한 쾌감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금요기도회 때 기도할 것이 남아서 개인 기도를 위한 음악이 끝난 후에도 낮은 음성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음악이 끝나면 성도들이 기도를 마치고 일어섭니다. 몇몇 분의 나지막한 기도소리가 들리다 곧 적막이 흘렀습니다. 다들 기도를 마쳤나 싶어 저도 일어서려는데 어둠 속 저편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누군지 봐뒀다 나중에 따로 기도제목을 묻기 위해 그분이 일어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일어나려는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오래 기도하는 기특한 사람이 누군가 보려고 다가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찬양팀이 악기 정리 후 세워놓은 기타 케이스였던 것입니다. 

제가 기도가 부족하니 하나님께서 기타 케이스와 경쟁시켜서라도 더 기도하게 하신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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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것, 내 것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하나님의 것, 내 것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7.19 10:25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2004년 초 개인기도 시간에 대뜸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중에 개척해서 설립예배 준비까지 다 마쳤는데 하루 전날 다른 사람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내줄 수 있겠느냐?” 저는 성장하며 두 교회의 개척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기도와 수고를 목격했습니다. 설립예배의 감격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 없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두 달간 개인 기도시간은 눈만 감았을 뿐, 기도의 문이 닫힌 시간이었습니다. 숨 막히는 답답함에 펑펑 울며 “하나님의 교회이니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항복했습니다. 

며칠 뒤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평생 부목사를 할 수 있겠느냐.” 저는 “담임목사 시키실 거면서 왜 이런 질문을 하십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또 눈만 감은 시간이 흘렀고, 이번에도 펑펑 울며 “하나님의 종인데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아뢰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했던 저에게 교회를 마치 내 것처럼 여기는 욕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직 아무것도 된 것이 없는데도 내가 마치 다 된 것처럼 여기고 아까워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도 모르게 자리 잡았던 못된 것을 발견하고 포기하게 하셨습니다. 내려놓을 때 참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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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야기, 내 이야기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하나님의 이야기, 내 이야기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7.12 09:51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48년 국민당이 집권한 후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했습니다.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백인에게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교육 건강 등을 배려하고 우선권을 줬으나 흑인에게는 기본권을 주기는커녕 강제이주와 감금 고문 등이 이어졌습니다. 1994년 27년간 투옥됐던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을 때, 그는 백인에게 보복하지 않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위원회를 통해 2만 명 넘는 사람들이 3500페이지 분량의 인권침해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아픈 과거를 드러내고 국민이 공유해 진실과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야기하고 함께 진실된 역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개인적인 치유와 공동체적 회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지신 예수님은 오히려 인간들로부터 멸시받고 버림받으셨습니다(사 53장).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을 심판하시지 않고 “같이 이야기하자”고 청하셨습니다(사 1:18). 역사는 ‘history’입니다. ‘His+story’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만 회복되고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회개와 기도, 나눔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때 하나님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는 내 이야기가 된 하나님의 이야기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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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Posted at 2016.07.05 10:28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년 52주 주일마다 우리 자녀들은 교회당에 모입니다. 일주일 168시간 중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 교회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게다가 고3이 되면 중직자 자녀들도 교회가 아니라 학원으로 갑니다. 제가 어린 시절 다녔던 주일학교 오후예배와 어린이 수요예배는 어느덧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1주일 1시간 신앙교육으로 자녀들이 건강한 기독교인으로 자라기를 기대하는 건 뿌리지도 않고 거두려는 과한 욕심일 것입니다.
 
예전엔 대학에 가면 교회를 떠난다고 했는데, 요즘은 중학교에 가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현재 중·고교 복음화율이 3% 내외라고 합니다. 이는 선교학적으로 볼 때 선교사가 파송돼야 하는 ‘미전도종족’에 해당됩니다. 제가 사는 안양시 관내 16개 고등학교의 찬양팀과 성가대 동아리도 10년 새 모두 사라졌습니다.

7∼8월 여름 두 달 동안 교회마다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위해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개최합니다. 주일학교 1년 사역의 절반이라 할 정도로 비중이 큽니다. 자녀들을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보내 주십시오. 큰 은혜를 받지 않더라도 우선순위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사는 이 사회와 학교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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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난과 거짓 고난 - 강신욱 목사<남서울평촌교회>참 고난과 거짓 고난 - 강신욱 목사<남서울평촌교회>

Posted at 2016.03.22 10:44 | Posted in 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요즘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은 게임을 합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자기도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다 자존심이 상한 아이는 부모에게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릅니다. 소신 있는 부모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이는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점검해 보길 원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과연 성도의 고난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이로부터 벗어나길 바란다는 간구를 올릴 만한 것일까요? 아마 대부분은 위의 사례처럼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일 것입니다. 누구는 진학하고, 누구는 취직하는데 자신은 못해 속상합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이들이 부럽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질투심과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고난으로 여깁니다. 또 스스로 뒤집어 쓴 욕심의 굴레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 하는 성도의 고난이라 생각합니다. 


시편은 고난을 당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준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고난이라 여기는 것을 통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요. 성도의 고난이 아니면서 고난인 척하는 거짓 고난을 벗어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이기에 받는 참 고난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강신욱 목사<남서울평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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