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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기도하며/겨자씨 1564

학철부어의 사랑 - 겨자씨

학철부어(芭扱K魚).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 안에 놓인 붕어란 뜻입니다. 장자의 외물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매우 다급하고 곤궁한 상황을 말합니다. 장자가 생활이 너무 곤궁해 위나라 문후를 찾아갔습니다. 장자의 사연을 듣고 문후는 “좋소, 얼마 후 봉토에서 수확물이 올라오면 금 삼백을 빌려주겠소”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장자가 비유로 말했습니다. “어제 오는 길에서 누가 부르기에 주위를 살펴보니 수레바퀴 자리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붕어가 하는 말이 ‘내 신세가 다급하니 한 됫박의 물이라도 부어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좀 기다리면 서강의 강물을 끌어다주겠소’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붕어가 화를 내며 ‘지금 당장 숨이 막힐 지경인데, 나중에 강물을 끌어다주겠다니 차라리 나를 건어물전에서..

순간의 분노가 큰 화를 부릅니다 - 겨자씨

경춘고속도로를 운전해서 가다보면 ‘깜빡 졸음-번쩍 저승’이라는 졸음운전 경고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순간의 졸음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순간의 분노가 죽음을 부르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외줄에 매달린 채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 외벽을 도색하고 있던 노동자를 아파트 주민이 시끄럽다며,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옥상으로 올라가 줄을 끊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또 인터넷을 수리하기 위해 들른 기사를 살해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순간의 분노가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졸음운전과 분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깜빡 졸음이 번쩍 저승으로 이어지듯, 순간 분노는 끔찍한 화로 이어집니다. 졸음운전의 위험성 만큼이나..

앎 - 겨자씨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현학적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입니다. 빈틈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중략)…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 EBS지식채널이 만든 책 ‘지식e(북하우스·12∼13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어떤 지식을 가진 ‘소유적 지식’의 사람과 무엇을 진정으로 아는 ‘존재적 지식’의 사람은 다릅니다. 머리의 힘으로 아는 지식이 있고, 마음의 힘으로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머리의 지식에 오만과 이기심이 보태지면 무지함만 못합니다. 하나님께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했다고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이때의 지식은 체험적 지식, 존재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마치 ..

한 사람이 지닌 믿음의 힘 - 겨자씨

크리스천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곧 예수 대속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구원받은 믿음’, 또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임마누엘 믿음’ 그리고 시련과 환난 중에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경험하는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대표적인 한 사람을 들자면 얀 후스(1372∼1415)가 있습니다. 그는 체코에서 칼뱅이나 루터보다 100년 먼저 종교개혁을 시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체코대학 교수요 학장이었던 그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를 지적하다가 교황에 의해 파문당했고 콘스탄츠공의회로부터 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혁의 동지들과 교회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모든 이들이여, 진리로 담대하라!” 이런 후스의 믿음은..

축복의 부메랑 - 겨자씨

부메랑은 목표물을 향해 던지면 회전해 날아가다 목표물에 안 맞으면 다시 던진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원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에버리진이 사용하던 무기였습니다. 예전에 그들은 이걸로 사냥하고 적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스포츠기구로 사용되곤 합니다. 부메랑은 남을 공격하다가 그게 되돌아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제 줄로 제 몸을 묶는 자승자박(自繩自縛)과 같습니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스스로를 속박해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2)고 경고합니다. 오늘날 일부 인사들이 신랄하게 남을 비판했던 자신의 말과 글의 부메랑에 맞아 고통을 겪는 걸 보게 됩니다. 이런 고통에 빠..

균형감 있는 역사인식 - 겨자씨

1950년 6·25전쟁 때 아군의 최후 보루였던 낙동강전선 다부동 전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백선엽 장군이 현장에 도착하니 대대장이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너무 굶고 지쳤습니다. 물도 없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때 백 장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잘 싸웠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부산 앞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후퇴하면 나를 쏴라.” 그러고는 앉아있던 병사들을 뚫고 달려갔습니다. 그의 뒤에서 함성이 들렸습니다. “사단장님, 이제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렇게 국군은 전략적 요충지를 지켜냈습니다. 대구를 지키던 유재흥 장군은 ‘대구를 포기하고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연합군의..

길냥이의 사랑법 - 겨자씨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침마다 우리 부부는 맘 착한 노부부를 마주칩니다. 예쁜 사발에 정성스레 버무려진 밥을 담아 배고픈 ‘길냥이’들을 먹입니다. 혹여 길냥이 천국이 될까 걱정이 됐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딱 3마리뿐입니다. 아마도 자기들 밥그릇 빼앗길까봐 다른 고양이들에게 소문을 내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 아내는 본래 고양이를 싫어했습니다. 요물 같다는 둥, 털이 많이 빠진다는 둥 얼마나 싫어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새벽마다 노부부의 발자국 소리만 들으면 ‘냐옹∼’하며 반갑게 달려오는 길냥이들이 신기했나봅니다. 어느 날인가 아내는 고양이를 우연히 불러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냐옹?’하며 반응을 보인 겁니다. 아내가 더 친근하게 불렀더니 아니 이 녀석이 아내 곁에 다가와 아양을 떠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 겨자씨

비행기를 타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게 무거운 물체가 하늘 위로 날아가는 것이 신비롭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비행기에도 좌우의 분명한 균형이 있습니다. 비행기와 물고기의 모양은 정말 비슷합니다. 물고기가 바다 속을 헤엄치는 것이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이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물고기도, 비행기도 균형이 확실하게 잡혔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우리 얼굴을 보십시오. 두 개가 있는 것은 양쪽으로 분명한 균형이 잡혀져 있고, 하나만 있는 것은 가운데로 모여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는 분명한 균형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거기에도 균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주변엔 균형이 깨지는 것을 볼 수..

하나님이 주신 선물 - 겨자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째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의 뜻을 알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입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입니다. 그분의 성령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임마누엘 동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 임마누엘을 알면서도 일상이 분주해 늘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설교와 기도, 찬양 중에 ‘아멘’ 하면서도 예배당 문만 나서면 그 사실을 금세 까먹고 마는 것이지요. 언젠가 책에서 ‘약속’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너는 불가능한 것을 스스로 가능하게 할 필요가 없다/ 네 가능성을 넘어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못 살았다고 속상해 할 필요가 없다..

성령의 창조적 소수 - 겨자씨

이훈범의 책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에는 ‘날라리 벌’ 얘기가 나옵니다. 봄 여름 많은 꽃이 필 때 꿀벌들이 함께 행동하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벌들은 집단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 지역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읍니다. 하지만 일부 날라리 벌은 집단을 이탈해 따로 꽃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얼핏 보면 집단의 방해꾼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평소 꿀 채집방식이 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은 벌집단에게 새로운 살길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새 물이 들어와야 물이 살아납니다. 사회공동체에 새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새 물을 성경에선 창조적 소수라고 합니다. 노아시대 대부분의 백성들이 성적 타락과 폭력의 죄악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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