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기도하며/내가사랑한조선

여메례 이야기 - 조선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의 양녀

축복의통로 2016. 1. 28. 10:45
300x250




이 글에 공감하시면 아래 MY공감 하트를 눌러 주세요. ^^


1.성장배경,보구여관에 근무

여메레는 1872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남편의 성을 따 황메례 혹은 양메례로도 불렀다. 메례는 그가 1889년 세례를 받을 때 선교사에게 받은 이름 "메리"의 한자명이다.

그는 마산에서 여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가정환경을 밝힐 자세한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어려서 그를 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톤(M.F.Scranton)부인의 양딸로 보내졌다. 스크랜톤 부인은 그를 자기가 설립한 이화학당에 입학시켜 신교육을 받게 하였다. 그가 이화학당에서 수학한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스크랜톤 부인은 그를 "이화학당 초기 학생의 한 사람" 으로 기록하고 있어 1886-99년 사이에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크랜톤 부인의 집에 기거하며 공부하면서 상동교회에 출석하였고 정동에 있는 여성병원 보구여관에 홀 부인의 조수로 근무하였다. 여메례는 특히 영어회화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1899년 전후로 해서 그는 황씨성을 가진 사람과 결혼했다. 이때부터 그는 여메례에서 황메례로 성을 바꾸었다. 그러나 결혼한지 3개월만에 그의 남편은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런데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사망하여 그는 과부가 되었다. 신혼 3개월 만에 과부가 된 황메례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보구여관의 전도부인으로 선교사업에 몰두하였며 뛰어난 영어회화 실력으로 광무황제 앞에 들어가 어전통역을 하기도 했다.

출처 : http://kcm.co.kr/person/person_k048.html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