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기도하며/영성나눔

순수함은 인간이 지닌 소중한 ‘아름다움’이다.(영성나눔)

축복의통로 2012. 11. 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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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교수의 ‘날마다 말씀따라 새롭게’(31)

▲권혁승 교수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순수함은 인간이 지진 소중한 ‘아름다움’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눈 속을 들여다 본적이 있는가? 아무 티도 없이 해맑은 갓난아기의 눈 속은 유리처럼 맑고 잔잔한 호수와도 같다.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순수함의 ‘아름다움’이다. 그런 아이가 성장하면서 순수함은 흔들리고 흩어진다. 키만큼 내면의 욕심도 더불어 자라면서 세속의 추한 그림자가 호수처럼 맑은 눈 속으로 드리워진다. 결국 아이의 순수함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퇴색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반적 삶의 모습이다. 태어날 때 선물로 받은 순수함을 지속시킬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사람에게는 순수함을 지켜줄 또 다른 생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새 생명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거듭난 거룩한 삶이다. 요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성결을 강조하면서 거룩함의 본질로 ‘동기의 순수성’을 주장하였다.

중생을 통한 거룩한 삶은 유지하는 길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동행’을 히브리어로 ‘히트할렉크’라고 하는데, ‘산책하다’라는 뜻이다. 목적지를 향하여 급히 걷거나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는 보폭으로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즐기는 교제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아담이 범죄 한 후 하나님이 두려워 아내와 함께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담과 함께 에덴동산을 거닐고 싶어 하셨다. 범죄의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어 있던 아담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산책 초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창 3:8).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아담이 낳은 셋의 후손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이 에녹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여기에서 ‘동행하다’는 히브리어 ‘히트할렉크’이다. 에녹의 경건한 삶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즐거운 보폭이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산책을 이어간 인물은 노아이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온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 하나님과의 동행은 ‘온전함’과 병행한다. ‘온전’은 히브리어로 ‘탐밈’인데, 완벽보다는 ‘순수함’을 의미한다. 순수함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위한 전제조건이면서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얻어지는 결과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보다 적극적으로 거룩한 산책에 초청한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내 앞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은 아담을 떠올리고, “완전하라‘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이나 노아의 순수한 모습과 중첩된다. 더 이상 숨지 말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하며, 산책하듯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순수함의 ’아름다움‘을 지키라는 명령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강조하신 ”마음이 청결한 자“(마 5:8)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며 온전함을 누리는 사람이다. 그래야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순수와 진실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짝이며 ‘아름다움’을 떠받쳐주는 두 기둥이다. 순수가 기본바탕의 본질이라면, 진실은 순수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순수는 소박해야 제 맛이고, 진실은 진지함이 제 격이다. 진지함이 빠진 소박은 천박할 수 있듯이, 진실이 빠진 순수함은 무의미하다. ‘진실’은 히브리어로 ‘에무나’이다. 이 단어는 ‘정직’ 혹은 ‘신실’을 내포하지만, 근본적 의미는 ‘신뢰’이다. 일회성의 신뢰가 아니라 어떤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직함’이다. 순수가 그런 신뢰성 위에 설 때, 더 없이 큰 ‘아름다움’이 된다.

요즘같이 불신이 팽배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 백성인 우리들이 보여주어야 할 ‘아름다움’은 중생의 참 생명에서 우러나오는 동기의 순수성,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질되지 않는 진실의 신뢰성이다.

*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 구약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바른 신앙과 건강한 삶의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날마다 말씀따라 새롭게’를 제목으로 한 수필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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